주간동아 777

2011.03.07

조양호 위원장의 ‘평창 25시’

2018년 동계올림픽 유치에 모든 역량 쏟아부어…“7월엔 환호성” 글로벌 네트워크 총가동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입력2011-03-07 10: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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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양호 위원장의 ‘평창 25시’

    조양호 위원장은 “비무장지대 근무와 월남 파병으로 어떤 문제든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한다.

    “또 나오셨어. 이번이 몇 번째지?”

    2월 20일 조양호 2018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 위원장(한진그룹 회장·사진)이 인천국제공항 의전실에 나타나자 유치위 직원들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구닐라 린드버그 IOC 조사평가단장 등 14명의 IOC 실사단은 일주일간의 방한을 마치고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대한항공과 외국항공편 등 총 8편의 항공기로 나뉘어 출국했다. 대한항공과 외국항공사의 게이트는 인천공항 양 끝에 있어 두 곳을 오가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이날 조 위원장은 양쪽을 수차례 오가며 보딩게이트 앞까지 IOC 실사단 전원을 일일이 배웅했다.

    이번 실사단의 방한에 그는 항공사 CEO로서의 역량을 톡톡히 발휘했다. 실사단이 타고 온 비행기는 독일의 루프트한자(Lufthansa)항공. 외국항공사 비행기는 탑승동이 본청사에서 멀리 떨어져 입국 수속에 많은 시간이 걸리는 등 불편한 점이 적지 않다. 이때 유치위는 인천공항공사와 협의해 대한항공이 들어오는 본청사로 변경해 의전실까지 이동토록 했다. 실사단의 첫 방문부터 한국에 대한 좋은 인상을 강인하게 심어준 것이다.

    실사단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는 조 위원장의 노력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실사단이 한국을 떠나기 전에는 그들의 활동상을 8쪽짜리 화보집으로 만든어 전달했다. 특히 실사단 개인별로 사진을 찍어 바로 화보 작업을 한 정성으로 실사단으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평창이 달라졌다” 외국 언론서 호평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를 결정하는 제123차 IOC 총회가 불과 넉 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평창, 프랑스 안시, 독일 뮌헨 등의 유치전도 불을 뿜고 있다. 이런 가운데 동계올림픽 유치 3수에 나선 평창이 달라졌다는 호평이 나와 우리의 기대감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미국 스포츠 전문 온라인 매체 ‘스리 와이어 스포츠(3Wire Sports)’는 2월 17일 평창 유치위 활동을 분석한 기사에서 “과거의 평창이 아닌, 지난번 평창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라며 극찬했다. 스리 와이어 스포츠는 IOC 위원을 비롯해 올림픽 유치와 관련된 국제 스포츠계 인사를 주요 독자로 둔 매체다.

    한국은 이전 두 차례의 동계올림픽 유치전에서 국제사회에 ‘긍정’보다는 ‘부정’적 인상을 남겼던 게 사실.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들, 뿌연 담배 연기, 한국어 위주의 의사소통에서 보듯, 한국 유치 활동가들이 전문 지식은 있을지언정 IOC가 중시하는 무형의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유치위가 능숙한 영어로 소통하며 친숙하게 다가서고, 글로벌 인맥을 활용해 지난 두 차례의 유치활동과 판이하게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반응이다.

    많은 이가 ‘달라진 평창’의 가장 큰 원동력으로 조 위원장의 새로운 리더십을 지목하는 것도 그의 적극적 행보 때문이다. 2009년 말 김진선 전 강원도지사와 공동으로 맡았던 유치위원장직을 2010년 6월부터 단독으로 맡게 되자 그는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국가적 대업에 심부름꾼 역할을 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취임 이후에는 두 차례의 실패 경험을 교훈 삼아 외국인 전문 컨설턴트 및 국제 홍보대행사를 적극 활용하도록 했으며, 과거와는 차별화된 이미지 및 메시지를 개발해 전 세계 IOC 위원에게 전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미 조 위원장은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에 ‘다걸기(올인)’를 한 상황이다. 개최가 결정되는 2011년 7월 6일까지 IOC 위원들의 표심을 잡기 위한 해외출장 계획을 모두 짜놓았다. 멕시코에서 한국, 다시 중국으로 이어지는 식의 숨 막히는 일정이 연일 계속된다. 유치활동에 주력하기 위해 본인이 자리를 비우더라도 의사결정이 원활하게 되도록 총괄사장 이하 각 부사장의 책임경영 체제를 본격 가동했다.

    “동계올림픽 유치를 성공시키기 위해 한진그룹의 글로벌 네트워크 등 활용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동원하겠습니다.”

    2009년 9월 유치위원장 취임 일성에서 보듯, 한진그룹도 동계올림픽 유치에 발 벗고 나섰다. 한진그룹의 주력계열사인 대한항공은 보유 항공기 및 비즈니스 제트기를 평창 유치활동에 적극 지원함으로써 세계 IOC 위원과 신속하게 면담할 수 있도록 했다. 또 각국 IOC 위원이 해외출장이나 여행 때 대한항공에 탑승할 경우 한국에 우호적인 인상을 갖게 하는 등 평창 유치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평창 유치에 대한 조 위원장의 열정은 임직원에게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2월 8일 대한항공의 모든 임직원이 참석하는 연례 임원 세미나가 처음으로 평창 알펜시아에서 1박2일 동안 열렸다. 이 세미나에는 미국, 유럽, 중국, 일본 등 세계 각국에 주재하는 해외 임원 9명이 모두 참석하는 등 대한항공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본격 가동했다.

    조 위원장은 선봉장을 자임했다. 그는 항공사 CEO와 한불 최고경영자 클럽 회장, 한국-사우디아라비아 경제협력위원회 위원을 맡으며 형성한 글로벌 인맥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해외 유수 항공사로 구성된 항공동맹체 ‘스카이팀’ 창설 멤버로 쌓은 개인 인맥 및 비즈니스 관계를 활용해 해당 항공사가 속한 국가 IOC 위원의 표심을 얻어낸다는 복안도 가지고 있다. 또한 친분이 두터운 세계 유수 기업의 CEO들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한 자문위원으로 위촉해 유치활동에 도움을 받을 예정이다.

    조양호 위원장의 ‘평창 25시’

    평창이 동계올림픽 유치에 성공할 경우, 알펜시아 스포츠파크 및 스키장은 올림픽의 주무대가 된다.

    대기업 오너라는 권위는 이미 벗어던진 지 오래다. 지난해 2월 IOC 및 국제연맹 관계자들이 캐나다 밴쿠버에 개설한 ‘코리아하우스’ 개관식을 찾았을 때의 일은 두고두고 화제가 되고 있다. 아시아 동계스포츠의 성장과 발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서 평창의 우월성 등에 대해 환담하던 조 위원장이 IOC 위원들에게 맥주를 서빙하며 대화를 이어가 주위를 놀라게 한 것. 하지만 조 위원장은 “항공사 CEO로서 서비스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고객에게 감동을 선사하려면 유연성 있는 마인드가 무엇보다 중요하듯, 세계 스포츠 관계자들을 극진히 대접해 평창에 대해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도록 했습니다.”

    ‘고객 감동 마인드’ 오너 권위도 내려놔

    이런 감동서비스는 IOC 위원과 끈끈한 친분을 쌓는 원동력이 된다. 국제 항공업계에서 전문적인 식견과 폭넓은 활동으로 유명한 조 위원장은 다양한 경험을 통해 얻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IOC 위원들에게 대화를 건넨다. 유창한 영어실력은 기본. 잠시의 대화에도 서로 간의 공통점이 쉽게 도출되고 친숙해진다. 그러다 보니 한 번이라도 조 위원장을 본 IOC 위원은 조 위원장을 ‘프렌드’라 부르며 우호 관계를 맺는다는 후문.

    유치위는 조 위원장의 활약으로 ‘Again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이 재현되길 기대한다. 2007년 4월 인천 아시안게임 유치위는 개최지 결정을 코앞에 두고 아랍에미리트(UAE)로 날아가면서 조 위원장에게 특별 지원을 요청했다. UAE 국가올림픽위원회(NOC) 위원장이 아랍에미리트항공사 회장이어서 조 위원장과 친분이 두터웠기 때문. 유치위의 승부수가 적중해 인천에 아시안게임 유치라는 선물을 안기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평창에도 이런 선물을 안길 수 있을지 남은 넉 달, 그의 행보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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