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60

2010.11.01

홍명보 매직 “金 나와라 뚝딱!”

아시안게임 ‘24년 노 골드’ 한풀이 시작 … 우승컵 들어올리기 혼신의 도전

  • 신진우 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기자 niceshin@donga.com

    입력2010-11-01 11: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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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명보 매직 “金 나와라 뚝딱!”

    홍명보가 24년간 노 골드에 머무른 ‘아시안게임 징크스’를 깰 수 있을지 주목된다. 올림픽 축구대표팀 훈련을 지켜보는 홍명보 감독.

    #1. 1994년 10월 13일 일본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준결승을 앞두고 태극전사들의 표정엔 자신감이 넘쳤다. 홍명보, 서정원, 고정운, 황선홍, 유상철, 하석주 등 역대 최고라 해도 손색이 없는 호화 멤버. 8강전에서 숙적 일본을 혈투 끝에 3대 2로 제압, 사기가 하늘을 찔렀다. 하지만 결과는 0대 1 패배. 한 수 아래로 평가했던 우즈베키스탄을 상대로 전·후반 내내 일방적인 공격을 퍼부었지만 골문은 열리지 않았고, 상대의 한 방에 무릎을 꿇었다.

    #2. 2006년 12월 12일 카타르 도하. 대표팀의 기세는 무서웠다. 박주영, 염기훈, 이천수 등 막강 화력을 앞세워 아시안게임 조별리그 3경기에서 6득점 무실점을 기록했고 8강전에선 북한을 3대 0으로 제압하며 상승세를 탔다. 그러나 이번엔 준결승에서 이라크에 0대 1로 발목이 잡혔다. 사기가 꺾인 대표팀은 3, 4위전에서 이란에도 0대 1로 패하며 노메달 수모를 안고 귀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아시안게임 징크스’ 삭제 각오

    아시아 무대는 좁다. 적어도 축구에서만큼은 그렇다. 한국축구는 월드컵 7회 연속 본선 진출,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 창조,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월드컵 사상 첫 원정 대회 16강 진출에 성공하며 세계 강호들을 상대로도 자신감을 얻었다. 하지만 아시안게임으로 눈을 돌리면 얘기가 달라진다. 1970년과 1978년 공동 우승, 1986년 서울 대회 금메달 이후 금맥이 뚝 끊겼다. 1990년 베이징 대회 땐 준결승에서 이란에 일격을 당했고, 1998년 태국 대회 땐 8강전에서 홈팀 태국에 무릎을 꿇었다. 월드컵 4강 신화 창조 직후 기세등등했던 2002년 부산 대회 때도 홈의 이점을 살리지 못하고 준결승에서 이란에 승부차기 끝에 덜미를 잡혔다.

    11월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선 그 징크스를 털어낼 수 있을까. ‘월드 스타’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남자 축구대표팀이 시험대에 올랐다. 10월 18일 파주 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에 소집돼 훈련을 시작한 대표팀의 목표는 당연히 우승. 홍 감독은 “이번 대회를 계기로 ‘아시안게임 징크스’란 단어를 한국축구 사전에서 완전히 지우겠다”며 당찬 각오를 밝혔다.



    힘차게 출사표를 던졌지만 이번에도 정상 등극은 만만찮다. 먼저 우승에 대한 부담감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참가 선수 나이가 23세 이하로 제한되는 아시안게임에선 금메달을 따면 선수들에게 병역면제 혜택이 주어진다. 홍 감독은 “병역면제 당근이 오히려 부담으로 작용해 독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그는 이러한 부담감을 덜어주기 위해 심리전문가 도움까지 요청했다. 황선홍 부산 아이파크 감독은 “선수들이 어린 만큼 먼저 실점하면 부담이 더욱 커진다. 1994년 우즈베키스탄과의 준결승 당시에도 실점한 뒤 서두르다 몸이 경직돼 경기를 망쳤다”고 전했다.

    ‘아시아 최고’라는 타이틀 역시 선수들에겐 부담이다. 한준희 KBS해설위원은 “팬들은 아시아 팀을 상대로 하는 경기는 당연히 승리할 거라 확신한다. ‘도전자’가 아닌 ‘챔피언’ 타이틀을 등에 지고 무거운 벨트를 몸에 두른 채 경기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성인 대표팀이 나서는 아시안컵에서의 거듭되는 부진도 이러한 부담감이 크게 작용한 탓”이라고 덧붙였다.

    대진 일정 또한 걸림돌이다. 11월 8일 조별리그 1차전 상대가 북한이다. 서형욱 MBC해설위원은 “북한은 보통 대회 준비를 오래해 조직력이 좋다. 수비 위주 전술로 나올 북한 페이스에 말릴 경우 첫 경기부터 꼬여 전체적인 대회 호흡까지 잃을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반면 홍명보호(號)의 준비 기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국내파와 해외파 모두 소속팀 사정으로 일정이 엇갈려 실질적으로 손발을 맞출 시간은 5일 남짓. 대표팀 관계자는 “이번 대회처럼 선수들 일정이 맞지 않는 경우는 처음”이라며 “훈련 시간 확보가 일단 최대 관건”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부담감 떨쳐내는 게 1차 과제

    홍명보 매직 “金 나와라 뚝딱!”

    2006년 카타르 도하 알 가라파 축구경기장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준결승에서 한국은 이라크에 0대 1로 패하며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상황이 장밋빛은 아니지만 희망은 있다. 아시안게임에 나서는 남자 축구대표팀의 키워드는 단연 홍명보 감독이다. 선수 시절부터 카리스마와 리더십으로 유명했던 홍 감독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그는 이미 U-20 월드컵에서 치른 감독 데뷔 무대에서 8강 신화를 쓰며 지도자로서 능력도 인정받았다. 조광래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은 “한마디로 믿음직한 큰형님”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도자가 선수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두 가진 조건은 인성과 실력”이라면서 “홍 감독은 이 두 가지를 모두 갖춘 지도자 가운데 한 명”이라고 했다.

    최순호 강원 FC 감독은 ‘히딩크식 카리스마’를 그의 장점으로 꼽았다. 거스 히딩크 전 대표팀 감독처럼 벤치에 앉아만 있어도 선수들을 제어할 수 있는 긍정적인 카리스마가 뿜어져 나온다는 설명. 또 “홍 감독이 선수 시절에 권위적인 카리스마를 주로 앞세웠다면 이제는 부드러운 카리스마까지 갖췄다”면서 “대나무 같은 강직함에 선수들과 소통할 수 있는 유연함이 더해진 셈”이라고 했다.

    대표팀의 끈끈한 조직력도 강점. 박문성 SBS해설위원은 9월 17일 발표된 아시안게임 최종 엔트리에 포함된 20명의 특징으로 ‘팀플레이’를 꼽았다. 팀에 녹아들고 유기적인 플레이를 할 줄 아는 선수들이 중심축이 됐다는 얘기다. 홍 감독 역시 21세 이하 선수 위주로 대표팀을 꾸린 것과 관련해 “2012년 런던올림픽 준비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선수들이 어릴 때부터 꾸준히 손발을 맞춰와 호흡이 좋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핵심 플레이어들에게 거는 기대도 크다. 홍 감독이 꼽은 키 플레이어는 미드필더 구자철(제주 유나이티드). 경기장 안에선 뛰어난 축구 센스와 창의적인 패스로 경기를 조율하고, 경기장 밖에선 온화한 성격으로 선수들 사이 소통의 중심 역할을 해낸다는 설명이다. 차세대 공격수로 각광받는 지동원(전남 드래곤즈) 역시 주목할 선수로 꼽혔다. 와일드카드(24세 이상 선수로 3명까지 가능)로 선발된 박주영(모나코)과 김정우(광주 상무)도 빼놓을 수 없다. 공수의 핵으로 나설 이들은 팀 전체 경기력을 끌어올리는 한편, 어린 선수들이 흥분하지 않도록 균형 잡는 역할까지 훌륭하게 소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10월 29일 오키나와로 전지훈련을 떠난 대표팀은 한 차례 일본 프로팀과 평가전을 치른 뒤, 11월 5일 결전의 땅 중국 광저우에 입성한다. 대표팀은 8일에 북한, 10일에 요르단, 13일에 팔레스타인과 각각 조별리그 1~3차전을 치른다. 이번 대회에선 24개 팀이 4개 팀씩 6개조로 나뉘어 조별리그를 벌인 뒤 각 조 1, 2위 12개 팀과 조 3위 가운데 상위 4개 팀 등 16개 팀이 16강 토너먼트를 통해 우승컵의 주인공을 가린다. 홍명보호가 24년간의 노 골드 징크스를 깨고 아시아 정상으로 우뚝 서는 힘찬 도전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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