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60

2010.11.01

‘S-21’은 독일판 4대강 사업?

슈투트가르트 중앙역 프로젝트 주민들 거센 반발 … 긴축재정과 맞물려 ‘뜨거운 감자’로

  • 슈투트가르트=안윤기 통신원 friedensstifter@gmail.com

    입력2010-11-01 11: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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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에서 거리집회와 시위하는 모습을 보면 온순하기 짝이 없다. 대중집회는 사전에 신고해야 하며, 정해진 지역과 시간을 어길 수 없다. 수십 명이 피켓을 들고 거리행진을 하는데 수백 명 경찰이 ‘호위’라는 명목으로 ‘포위’를 하고 있으니, 일반 시민에게 시위대의 의사가 제대로 전달될 리도 없다. 이렇게 얌전한 시위 문화가 적어도 21세기 독일 사회에서는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웬만해서는 보기 힘든 대규모 시위가 최근 한 도시에서 벌어지고 있다. 바로 서남부지방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의 주도인 슈투트가르트다. 2010년 2월 공사가 시작된 ‘슈투트가르트21’(이하 ‘S-21’)이란 대형 사업에 반대하는 시위가 끊이지 않더니, 10월 들어서는 어느덧 시위대 규모가 15만 명에 이르게 됐다. 슈투트가르트 총인구가 60만 명이 채 되지 않음을 고려하면, 실로 엄청난 수의 시민이 그 사업에 반대한다는 뜻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셈이다. 시위대 규모가 커지면 과열되기도 쉬운 법이다. 경찰과 시위대가 충돌해 수백 명이 부상했다는 소식이 들리더니, 이젠 경찰이 살수차와 최루탄을 동원해 강경진압을 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한 시민이 물대포에 얼굴을 맞아 한쪽 눈을 실명하고 말았다. 사태를 이 지경까지 몰고 간 이슈인 ‘S-21’은 도대체 무엇을 하려는 사업인 것일까.

    물대포 진압 한쪽 눈 실명까지

    유럽 대도시의 중앙역 구조는 한국과 다르다. 한국의 역에서는 여러 개의 선로와 승강장이 늘어선 가운데 승객들이 이동할 구름다리가 놓여 있어, 승강장 사이를 오가려면 계단이나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해 부지런히 오르내려야 한다. 반면 유럽의 많은 역에서는 계단을 오르내리지 않아도 승강장 사이를 이동할 수 있다. 기찻길 한쪽이 항구처럼 완전히 막혀 있기 때문이다.

    유감스럽게도 환승객에게 편한 역 구조가 철도 교통이나 도시공간 활용 측면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선로가 끝나버리기 때문에 장거리 노선의 중간역으로 쓰기엔 불편함이 많은 것. 특히 기차가 머리부터 들어갔다가 꼬리로 나와야 하는 구조에서는 커브가 큰 선로를 깔아야 하고, 철도 부지도 더 많이 차지한다. 그런데 슈투트가르트 중앙역은 도심 한복판에 자리해 금싸라기 같은 땅이 적절히 활용되지 못한다.



    이런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고자 나온 제안이 S-21 사업이다. 슈투트가르트 공대 게하르트 하이멀 교수가 1988년부터 주도했으며, 독일철도회사(DB)는 1994년 처음으로 이 프로젝트를 공식 발표했다. 중앙역을 완전히 개조해서 기차가 지하로 도심을 관통하게 한다는 것이 사업의 핵심이다. 여기에 슈투트가르트와 울름을 연결하는 이체(ICE) 노선을 신설하고 슈투트가르트 공항을 만드는 것 등이 추가로 들어 있다. 중앙역과 선로를 지하에 만듦으로써 확보하게 된 광대한 대지는 공원과 문화시설로 탈바꿈할 예정이다.

    주목할 것은 이 철도 사업이 단순히 슈투트가르트라는 한 도시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 유럽을 관통하는 초고속철도 연결망을 구축한다는 유럽연합의 구상과도 부합한다. 특히 파리-스트라스부르-슈투트가르트-뮌헨-빈-브라티슬라바를 잇는 이 노선은 동서 유럽을 직결한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S-21 사업은 독일철도회사와 슈투트가르트 시뿐 아니라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정부, 연방정부의 전폭적인 재정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이 안건은 지난해 연방의회를 통과해 올 초부터 공식적으로 공사가 시작됐다. 2020년 완공이 목표다.

    그런데 왜 이렇게 반대의 목소리가 큰 걸까. 우선 사업비용이 문제다. 1995년 48억 마르크로 추산됐던 액수가 2008년에 51억 유로(약 8조 원)로 늘어났다. 대규모 공사가 그렇듯 이 액수가 10년 후엔 어떻게 변할지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녹색당이 피어엑 뢰슬러 교통자문연구소에 맡겨 추정한 예상 소요 사업비는 이보다 훨씬 큰 70억~87억 유로(11조~14조 원)다.

    최근 독일은 연방정부, 주정부 할 것 없이 긴축재정 모드다. 늘어만 가는 정부 부채를 줄이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래서 5월 연금과 실업자 수당 등 사회보장의 혜택을 줄이겠다는 발표가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정부가 막대한 돈을 퍼부어가며 이런 거대 사업을 추진한다고 하니,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다. 기존 역 체계가 노후했고 경제적이지 않다는 점은 잘 알지만, 그 정도 불편 때문에 어마어마한 비용을 들여가면서 S-21 사업을 할 필요는 없고, 그 돈은 교육과 복지에 사용해야 한다는 것.

    또 한 가지 중요한 이슈는 환경문제다. 중앙역 진입철로 옆에 자리 잡은 ‘슐로스가르텐’은 슈투트가르트 시민들의 오랜 사랑을 받아온 공원이다. 이곳엔 수백 년 수령의 나무들이 자라고, 희귀 곤충이 살고 있다. 그런데 S-21 사업에 따르면 철로 주변 공원의 상당 부분이 파괴된다. 산맥을 60km나 관통하는 터널로 인한 환경 파괴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따라서 이 사업에 처음부터 반기를 들었던 곳은 녹색당이다. 지금도 정치권에서 각론이 아닌 원론 차원에서 반대하는 건 녹색당이 유일하다. 그런데 현재 슈투트가르트 시민 대다수가 이 사업을 반대하는 입장이어서, 이 지역의 녹색당 지지율은 20% 선을 돌파했다. 처음으로 사민당을 누르고 제1 야당이 된 것. 2011년 봄에 치러질 주의회 선거에서 60여 년간 ‘장기 집권’했던 기민련과 한판 붙어볼 태세다. 물론 ‘S-21 백지화’ 또는 ‘K-21(S-21의 규모와 비용을 크게 절감한 수정안)로 대체’가 핵심 공약이 될 것이다.

    시민들의 정치적 주권 회복?

    ‘S-21’은 독일판 4대강 사업?

    슈투트가르트 중앙역사 전경.(위) S-21 사업의 핵심은 중앙역을 완전히 개조해 기차가 지하로 도심을 관통하게 한다는 것이다. 사진은 조감도.(아래)

    10월 들어 공사반이 슐로스가르텐의 나무 25그루를 베자 시위는 걷잡을 수 없이 격화됐다. S-21 사업을 찬성하는 이들의 집회도 있었지만, 대다수 시민의 의견은 사업 중단이었다. 8월 말 여론조사에 따르면 S-21 사업에 슈투트가르트 시민 67%가 반대했다.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차원의 조사에서는 찬성이 46%, 반대가 43%다. 6만 명 이상이 반대 서명을 했다. 수적 우위를 확신한 사업반대파는 직접민주주의 장치 도입을 주장했으나, 볼프강 슈스터 시장과 시의회에서 이를 거부했다. 행정법원에 고소했지만 이들의 ‘시민결정’ 요구는 기각됐다.

    물론 이미 시작된 공사를 중단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독일철도 사장인 뤼디거 그루베는 “사업을 중단하는 것에만 4억 유로가 든다. 각종 계약파기로 인한 후유증, 국제적 신뢰도 하락 등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정부는 원로 정치인인 하이너 가이슬러를 내세워서 반대 측과의 중재를 시도했다.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교통장관과 독일철도 임직원 등으로 구성된 찬성 측과 녹색당, 환경단체 임원 등으로 이뤄진 반대 측이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양측은 11월 중순까지 매주 금요일 만날 것과 평화적인 방법으로 각 진영의 의견을 표현하자는 데 합의했다.

    과연 이 사업이 어떻게 될지 예견하기 어렵다. 다만 어느 정도 명분 있어 보이는 사업에 왜 이토록 많은 시민이 반대하는지 위정자들은 필히 반성해야 할 것이다. 현재 S-21 사업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요구는 비용과 환경보호 문제를 넘어 ‘시민의 정치적 주권 회복’까지 갔다. 정치권이 시민들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했다면 이런 주장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반대 서명이 몇 만에 이르고, 반대 여론이 우세한데도 정치권이 이토록 거대한 사업을 하필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이 시기에 밀어붙이는지 시민들은 이해하지 못하며 불쾌히 여긴다. 국가적으로, 심지어 유럽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인프라 구축 사업이라 해도 해당 지역 주민들의 이해와 동의 없이 ‘밀어붙이기’ 식으로 하는 것은 곤란하다. 주권은 주민과 시민, 그리고 국민에게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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