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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 가을을 걷다 - 강길·들길·옛길 06

녹두장군 恨과 피울음 올가을에도 검붉게 물들었나

내장산 전봉준길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녹두장군 恨과 피울음 올가을에도 검붉게 물들었나

녹두장군 恨과 피울음 올가을에도 검붉게 물들었나

내장산국립공원 초입에서 내장사에 이르는 길은 ‘단풍터널’로 불릴 만큼 가을단풍이 아름답다.

매혹적인 자태로 우리의 시선을 붙잡는 고려청자는 도공들의 땀과 눈물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한(恨)의 결정체다. 아름다움 뒤에 숨겨진 슬픔, 그것이 고려청자가 내뿜는 비장미가 아닐까. 내장산은 고려청자와 같은 산이다. 내장산의 검붉은 단풍은 눈을 멀게 할 만큼 고혹적이지만 산은 좌절한 혁명가의 피울음을 품고 있다.

소백산맥에서 갈라져 나와 노령산맥의 자락을 타고 호남평야에서 우뚝 솟은 내장산(內藏山)은 호남 지방의 5대 명산(지리산·월출산·천원산·방장산) 중 하나이며, 분홍빛 가을단풍이 아름다워 조선 팔경의 하나로 꼽힌다. 10월 26일 찾아간 내장산은 짙푸른 옷을 벗고 가을 옷으로 갈아입는 중이었다. 이곳의 단풍은 10월 말에서 11월 중순 절정을 이룬다. 단풍잎이 얇고 작아서 ‘애기단풍’이란 애칭을 얻었다.

분홍빛으로 타오르는 애기단풍

오전 9시 단단히 옷깃을 여미고 내장산국립공원 입구에 들어섰다. “아직 단풍이 들려면 1~2주 기다려야 한다”는 주민들의 말마따나 본격적인 단풍 구경이 시작되기 전이어서 산은 호젓했다.

이 일대는 내장산국립공원으로 묶여 있지만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내장사를 에워싸고 있는 내장산과 백양사를 품은 백암산, 그리고 입암산성이 자리한 입암산이다. 이 세 구역 어느 쪽에서 출발해도 무방하다. 일반적으로 산꾼들은 내장사에서 출발해 까치봉(717m)~순창새재~상왕봉(741m)~백양사로 이어지는 ‘내장사~백양사’ 코스를 선호한다. 단풍이 만개한 날에 이 코스를 따라 걸으면 정상 곳곳에서 하늘을 뒤덮은 단풍바다를 볼 수 있다. 빠른 걸음으로 걸어도 예닐곱 시간은 족히 걸린다. 초보자에겐 무리다.



일주문에서 백련암, 원적암, 내장사에 이르는 길 또한 아름답다. 일명 ‘단풍터널’이라고도 하는 이 구간은 단풍이 절정을 이루면서 자연스레 아치 형태의 터널이 만들어진다. 이곳을 왕래하는 단풍열차가 있다.

입구에서부터 20여 분 걸어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힐 때쯤이면 갈림길이 나온다. 길 그대로 10여 분 더 올라가면 바로 내장사 입구지만 왼쪽으로 빠져 케이블카를 타는 것도 묘미다. 케이블카 이동거리는 700여m에 불과하지만 내장산의 절경을 한눈에 볼 수 있어 많은 사람이 찾는다. 그러나 케이블카를 선택했을 경우 다시 내장사로 돌아가는 데 40여 분이 소요되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내장사는 1300여 년 전 백제 제30대 무왕 37년(636)에 영은사란 이름으로 창건됐다. 부처의 진신사리가 봉안된 진신사리탑이 인상적이지만 절의 규모는 소박하다. 진입로 양편에는 108그루의 단풍나무가 심어져 있는데 불교에서 말하는 108번뇌를 상징한다. 내장사를 나오면 평탄한 길이 이어진다. 이대로만 걷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이내 난관에 부딪혔다. 까치봉을 향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는 초입에서 먼저 온 일행도 표지판을 보며 망설였다. 산세가 가파른 탓이다. 까치봉은 내장산 서쪽 중심부에 솟아 있는 2개의 바위봉우리로, 그 형상이 까치가 날개를 펴고 있는 모습과 같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내장산은 기암괴석이 많은 산세가 금강산과 비슷하다고 해서 ‘호남의 금강산’이라 불린다. 계곡의 구불구불한 길들이 흡사 양의 창자 같다고 해 ‘내장(內藏)’이란 이름이 붙었을 정도로 심산유곡이다. 이름만큼이나 산을 오르기가 만만치 않았다. 구불구불한 길이 1.26km에 달한다. 평지라면 한달음에 달려가겠건만 산길은 쉽지 않다. 이쯤이면 정상일 것 같은데 올라가보면 또다시 새로운 길이 펼쳐진다.

오아시스를 찾듯 50여 분을 올라간 끝에야 까치봉에 다다랐다. 까치봉은 상왕봉에 이어 내장산의 제2봉으로 백암산을 연결하는 주봉이다. 내장산의 9봉우리가 까치봉을 중심으로 동쪽을 향해 이어지면서 말굽형을 이루고 있다. 비록 정상에서 까치는 찾을 수 없었지만 산등성이가 파도치듯 밀려오는 모습에 절로 감탄이 나왔다.

사람들은 단풍이 아름답게 든 내장산을 최고로 치지만, 아름다움은 시각을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냄새로도, 맛으로도, 소리로도 아름다움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단풍을 볼 수 없어 아쉬움이 남는다면 잠시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조용히 눈을 감아보자. 그리고 귀를 쫑긋 세워보자. 그동안 칼날같이 살을 에어내며 휘몰아쳐 성가시기만 했던 바람이 어느새 친구처럼 다가온다.

“으으으… 솨… 솨.”

먼저 바람이 귓가에 다가와 속삭였다. “날씨도 추운데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이 많았다”며 “잘 도착했다는 소식을 서울에 전해주겠다”더니 이내 멀어졌다. 비단 바람만이 아니다. 나무들이 우는 소리를 들어본 적 있는가? 바람이 나무에 부딪혀 사방으로 퍼져나갈 때 새로운 언어가 만들어진다. 우는 소리라고 했지만 웃음소리일지도 모른다. 아니, 시시껄렁한 잡담소리라고 해도 좋다. 순간 영화 ‘와호장룡’의 한 장면이 오버랩됐다. 바람 가르는 소리와 나뭇잎 하나하나의 떨림을 담아냈던 대나무숲 결투 장면이 고스란히 이곳에서 재현됐다.

녹두장군 恨과 피울음 올가을에도 검붉게 물들었나

호수에 비친 내장산 단풍.

좌절로 끝난 역사의 아픔

내장산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순창새재에서 출발해 백암산 상왕봉을 거쳐 사자봉에 이르는 2시간 남짓 길은 역사의 아픔이 담겨 있다. 이 길에는 민초들의 나라를 꿈꾸며 혁명을 일으켰지만 끝내 좌절로 끝난 녹두장군 전봉준(1855~1895)의 한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동학농민군은 1894년 3월과 9월 두 차례에 걸쳐 봉기했다. 1차 봉기에서 ‘제폭구민, 보국안민(조선 조정의 학정에 대항해 백성을 구하며 나라를 보호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한다)’을 내세웠던 이들은 불과 여섯 달 뒤에 일어난 2차 봉기에선 ‘척양척왜(외세를 몰아내자)’를 외쳤다. 청일전쟁이 일어나기 바로 이틀 전인 1894년 7월 23일, 무장한 일본군이 고종이 거처하던 경북궁을 습격한 일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불이 붙은 2차 봉기는 전국으로 번져나갔다. 동학농민군의 세력이 커지자 일본군과의 한판 대결이 불가피했다. 2차 봉기 당시 농민군은 약 60만 명으로, 일본군 2000여 명과 조선관군 2800명을 압도했다. 그럼에도 농민군은 연전연패했다. 처음부터 싸움이 되지 않았다. 당시 일본군은 무라타 소총과 스나이더 소총으로 무장했다. 사정거리가 500보를 넘는 데다 손잡이를 통해 탄알을 넣기 때문에 여타 총에 비해 단시간 안에 더 많이 쏠 수 있었다.

반면 농민군이 가지고 있던 화승총은 심지에 불을 붙여 타들어가기를 기다려야 했다. 사정거리도 100여 보에 그쳐 토벌군이 100여 보 밖에서 사격하면 농민군은 그저 바라만 볼 뿐 응사할 수 없었다. 이마저도 부족해 대부분의 농민군은 죽창으로 무장했다. 결과는 참혹했다. 그것은 전투가 아니라 차라리 학살에 가까웠다.

1894년 9월 전봉준은 우금치에서 결정적인 패배를 당하고 남쪽으로 몸을 피했다. 흩어진 농민군 1만 명을 모아 전주 모악산 아래 김제 원평에서 다시 한 번 맞붙었다. 결과는 우금치 때와 다르지 않았다. 임산부는 일본군의 총칼에 잔인하게 살해당했고 아들과 함께 있던 한 농민군 아버지는 어린 아들을 안고 절벽에서 뛰어내려야 했다. 수백 명의 시체가 산 위에 널렸다. 인근 마을은 모두 전소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대둔산 근방 마을 주민이 전부 모여 골짜기를 파서 양지바른 곳에 시체를 묻었다. 산 전체가 임자 없는 동학군의 무덤이 된 그곳엔 소나무 숲만 무성하다.

녹두장군 恨과 피울음 올가을에도 검붉게 물들었나

(왼쪽)내장산의 제2봉으로 백암산을 연결하는 주봉인 까치봉. (오른쪽)내장산에는 녹두장군 전봉준의 이루지 못한 꿈이 담겨 있다. 정읍역에 세워진 동학혁명농민군의상.

이루지 못한 녹두장군의 꿈을 따라

재기가 불가능할 상황에 이르자 전봉준은 농민군을 해산하고 내장산국립공원 안에 있는 입암산성으로 몸을 숨겼다. 그의 목엔 ‘군수직과 현상금 1000냥’이 걸렸다. 한곳에 오래 머무를 수 없었던 그는 입암산성을 나와 순창새재~백암산 상왕봉~사자봉을 거쳐 백류암에 스며들었다. 이후 옛 부하였던 전북 순창군 쌍치면 피노리의 김경천 집을 찾아갔다가 그의 밀고로 붙잡혀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했다.

마지막 정상에 오르는 20여 분만 제외하면 상왕봉을 오르기는 그다지 힘들지 않았지만, 유독 걷는 내내 바람과 나무의 울부짖음이 요란했다. 녹두장군의 한을 애도하는 것일까. 좌절한 혁명가에 대한 생각에 마음 한구석이 숙연해졌다.

상왕봉을 지나 30여 분을 가다 보면 백양사로 향하는 내리막길에 접어든다. 크고 작은 돌을 조심조심 밟고 내려오다 보면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산길을 내려와 도로에 도착해도 백양사까지 들어가는 데 족히 30~40분은 걸어야 한다. 이때 주위를 둘러보면 비자나무와 굴거리나무 등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들이 시선을 잡아끈다. 계속되는 걷기에 지칠 때쯤, 1400여 년 전 창건된 백제시대의 고찰이 눈앞에 들어선다.

전남 장성군 북하면에 자리한 백양사는 내장사에 비해 화려하다. 이곳 역시 가을단풍 아름답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럽다. 일주문 밖 주차장에서 쌍계루까지 이어지는 단풍길은 황홀하다. 쌍계루는 백양사의 가장 오래된 건물로, 그 이름은 두 개의 계곡이 누각 앞에서 합해져 하나의 줄기를 이루는 데서 유래했다. 징검다리를 오가는 것이 마냥 즐거운 아이들, 특별한 사랑의 추억을 만들려는 연인들로 이곳은 늘 인기 만점이다. 특히 호수 위에 비친 단풍이 어우러진 백암산 모습은 백미로 꼽힌다.

내장산은 가을단풍을 최고로 치지만 사시사철 볼거리로 가득하다. 봄에는 흐드러지게 핀 철쭉과 벚꽃이 사람들을 유혹하며, 여름철엔 물 좋은 계곡이 최고의 피서지다. 눈꽃이 핀 설경을 보려고 겨울에만 찾는 사람도 적지 않다. 곧 내장산의 가을단풍이 장관을 이룬다. 가을단풍 이면으로 숨겨진 역사의 아픔까지 읽어낼 수 있다면,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의 깊이가 더욱 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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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sic info.

☞ 교통편

승용차 | 서울을 기점으로 경부고속도로 →천안분기점에서 천안논산고속도로 진입, 광주·전주·공주 방면으로 우측 방향 →북공주분기점에서 광주·당진대전고속도로·공주분기점(당진, 서천) 방면으로 직진 →광주·익산 방면으로 직진 →논산분기점에서 호남고속도로 진입(순천 방향) →익산분기점에서 전주·삼례 방면으로 직진 →입암, 장성·정읍체육공원 방면으로 우회전(서부로) →죽림교삼거리 좌회전(천변로) →내장사거리 우측 방향(벚꽃로) →내장산국립공원 도착. 문의 내장산국립공원 사무소(063-538-7875). 전라북도 정읍시 내장동 59-10.

대중교통 | 열차를 타고 정읍역에 내리거나 서울고속버스터미널 또는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정읍행 버스를 타고 내려간 뒤 내장산행 버스 이용.

☞ 코스

내장산국립공원 입구 →내장사 →까치봉 →순창새재 →상왕봉 →백양사, 15~16km.



주간동아 2010.11.01 760호 (p36~39)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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