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현금 부족으로 심각한 경제난을 겪고 있는 북한이 체코 정부에 갚아야 할 빚을 현금 대신 인삼으로 갚겠다고 통보해 관심을 모았다. 외신에 따르면, 북한이 체코에 갚아야 할 부채 1000만 달러 중 50만 달러를 그에 상응하는 인삼으로 갚겠다고 제안한 것. 50만 달러어치면 인삼 약 20t이다. 냉전시대에는 공산권 국가 간에 현물을 이용한 국제교역이 성행했다. 체코 정부는 북한의 제의를 긍정적으로 검토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체코는 북한으로부터 한 해에 인삼 1.4t 정도를 수입하는데, 20t이면 체코 건강식품 시장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유럽에서도 고려인삼을 중요한 천연 건강식품으로 애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인삼은 귀중한 동양의 보물 ‘루이 14세’
인삼이 서양에 알려진 것은 16세기경. 1299년 출간된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은 중국, 아시아, 중동의 풍물과 문화를 담고 있지만 인삼에 대한 언급은 없다. 이때까지만 해도 동양의 신비한 약초 인삼은 서양에 알려지지 않았다. 인삼이 유럽에 전파된 최초의 기록은 1575년 러시아인 신부 마르친 마르치니우스가 중국에서 얻은 인삼을 ‘신비한 풀’로 서술한 데서 비롯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렇게 전해진 동양의 신비한 풀 인삼은 입소문을 타고 유럽 상류층에 전해졌다. 태국 왕국의 사신이 프랑스 루이 14세(재위 1613~1715년)에게 헌상했다는 문헌으로 보건대, 인삼은 굉장히 귀하게 여겨졌던 것 같다. ‘태양왕’이라는 별칭을 얻은 루이 14세는 프랑스를 유럽 최강국으로 만든 전제군주로, 당시 동양에서도 앞다퉈 많은 선물을 보냈는데 그중 인삼은 ‘동양의 보물’로 인식됐다.
서양에 알려진 인삼이 중국을 경유해 중국의 귀한 약재로 전파됐다면, 고려인삼은 17세기 초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직원들이 본국에 보내는 정세 보고서를 통해 처음 알려졌다. 일본에 파견돼 있던 동인도회사의 쿠커르 바커르 무역관장이 조선의 특산물로 “쌀, 구리, 인삼”을 꼽으면서 “조선 해안의 한 모서리 유역에서 일본인들과 교역하고 있다”고 기록해놓았다. 이는 조선 중기 부산에서 성행하던 일본 쓰시마 도주들과의 인삼 교역을 서술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에도 간간히 서신이나 여행기 형태로 유럽에 전해지던 인삼은 1711년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인삼은 정열적 창작의 원천 ‘루소’ ‘고리키’
이렇게 서양에 전해진 인삼은 대중화되지 못했지만, 상류층 사이에선 동양의 보물로 인식돼 귀한 선물로 오갔다. 철학자이자 문필가인 루소(1716~1778년)와 관련된 인삼 에피소드는 당시 인삼이 얼마나 귀했는지를 말해준다. 루소의 활동 시기는 선교사 자르투가 본국에 동양의 인삼을 알려 유럽 상류층 사이에서는 그 신비한 약초가 어느 정도 알려졌던 때이다.
루소의 제자이자 문인이던 베르나르댕 드 생피에르는 1772년 블루본 섬에서 가져온 커피 원두 한 포대를 루소에게 선물로 보냈다. 블루본산 커피는 그 당시 매우 귀한 선물이었다. 고지식한 성격의 루소는 “제자에게 값비싼 선물을 받을 수 없다”며 그것을 돌려주려고 했다. 그러자 생피에르는 루소에게 커피를 돌려줄 것이 아니라 “선생님도 저에게 선물을 주시면 되지 않습니까”라며 넘어가려고 했다. 그때 루소가 생피에르에게 보낸 답례품이 인삼 한 뿌리였다. 세계적인 사상가 루소의 꼿꼿한 선비정신을 동양의 인삼이 지켜준 것이었다.
러시아의 문호 막심 고리키(1808~1936년)도 인삼 애용가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고리키와 절친했던 소설가 자먀찐은 고리키가 서거한 직후 망명지인 프랑스 파리에서 그를 회고하는 회상기를 남겼다. 소련 당국에 위험분자로 지목된 자먀찐은 1932년 고리키의 도움으로 프랑스 파리로 망명하는 등 그와 막역한 친분 관계를 유지했다.
자먀찐은 문학에 대한 고리키의 정열을 보고 그 힘의 원천이 무엇인지 궁금해하던 일을 회상하며, 고리키와 인삼에 얽힌 이야기를 전한다. 자먀찐은 줄담배를 피우고 결핵을 앓고 있던 고리키가 하루에 몇 시간밖에 자지 않고도 왕성한 문학 활동을 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고리키는 비밀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자먀찐을 지하 식당으로 데려가 호리병 안에 든 인삼즙을 보여줬다고 한다. 고리키는 “나를 존경하는 어떤 사람이 만주에서 가져다준 인삼”이라고 설명했다.
서양에 고려인삼 가치 설파 ‘선교사 자르투’
중국 베이징에 파견돼 있던 프랑스인 선교사 자르투는 청나라 강희제의 명을 받고 지도 제작을 위해 조선을 답사했다. 자르투는 1709년 조선과 청나라의 국경지역(달단 지역, 만주 지방)을 돌면서 지형 자료를 수집하던 중 처음으로 조선 산삼을 접하게 된다. 그 당시 산삼은 금에 버금갈 만큼 귀했는데 ‘발견하면 중국 황제에게 바쳐지는 진상품’이라는 설명을 들은 바 있는 자르투는 1711년 4월 자신이 직접 그린 산삼 삽화와 함께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본국에 보냈다.
“우리는 조선에서 불과 40리 거리의 ‘칼가라’라는 달단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네 뿌리의 산삼을 산에서 캐 우리에게 가져왔습니다. 중국에서 고귀한 신분의 사람들은 거의 모든 약에 산삼을 배합합니다. (중략) 제가 뿌리의 절반을 날 것으로 먹은 뒤 한 시간이 지나서 맥을 짚어봤더니 맥박이 훨씬 강해진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식욕이 증진됐고, 전보다 훨씬 원기가 좋아졌습니다. 힘도 전에 없이 좋아졌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호전 증세가 휴식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크게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나흘 뒤 저는 무척 지쳐서 말 잔등에 앉아 있기도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이를 눈치 챈 관원이 제게 산삼 한 뿌리를 주었습니다. 저는 곧바로 그 반을 먹었는데 한 시간 뒤 피로가 말끔히 가셨습니다. 그 뒤로는 산삼을 자주 먹습니다. 언제나 같은 효과를 보고 있습니다.”
자르투는 이러한 내용과 산삼을 발견한 지역의 정확한 위도, 경도, 식생 환경을 전하면서 신비의 약초를 꼭 찾을 것을 요청했다. 이 편지는 영국 런던 왕립학회보에 실렸으며, 1716년 캐나다 인디언 마을에 머물던 프랑스인 선교사 라피코는 자르투의 편지를 접하고 인디언들과 인삼을 찾아 헤맸다. 인디언들은 3개월 후 몬트리올 근교에서 산삼을 찾아냈다. 이것이 아메리카 진생의 시원이 됐다. 지금도 북미 지역에서는 야생삼을 관리하고 있으며, 특히 캐나다 퀘벡과 미국 위스콘신 주에서 대규모로 인삼(화기삼)이 재배된다.
세계 정상을 감동시킨 코리아 ‘진생 파워’ ‘교황 바오로 2세’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 ‘일본 황실’
건강 때문에 인삼을 애용한 세계 명사들도 많다. 1999년 초 주 바티칸 교황청 한국대사를 지냈던 배양일 전 대사의 증언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1984년 한국을 방문했을 당시 청와대 경호실 공군연락관이었던 배 전 대사는 교황이 탑승했던 대통령 전용 헬기의 책임자로 교황의 소록도, 광주, 대구, 부산 방문을 수행했다. 공군 중장으로 전역한 후 1999년 교황청 주재 한국대사로 임명되면서 교황 바오로 2세와의 인연이 이어졌다. 배 전 대사는 교황을 알현할 때 1984년 한국 방문 당시의 인연을 밝혔고, 교황은 매우 반가워하며 더욱 친분이 깊어졌다. 배 전 대사는 교황과 인삼의 인연을 이렇게 설명했다.
“당시 교황은 파킨스병과 몇 가지 질병을 앓고 있었다. 한 번은 접견하러 갈 때 홍삼차를 선물로 전해드린 적이 있다. 이후 교황을 모시는 주교가 ‘교황님이 홍삼차를 무척 좋아하신다’고 귀띔했다. 이후 홍삼차 외에 홍삼 뿌리, 홍삼 엑기스 등을 가끔 보내드렸다. 앞서 재임했던 대사들도 가끔 교황께 고려인삼을 선물한 것으로 아는데, 내가 근무할 당시는 많이 쇠약해진 상태라 고려인삼이 더욱 귀하게 쓰였던 것 같다.”
교황 바오로 2세의 홍삼 애용이 입소문으로 번지면서 주 바티칸의 주교들과 로마에 주재하던 많은 나라의 대사들 사이에 고려인삼 열풍이 불었다. 심지어 교황 근위병까지도 홍삼을 구할 방법을 한국대사관에 물어왔다고 한다.
1995년 대통령 재임 중에 암 선고를 받은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은 힘겨운 투병생활을 하고 있었다. 의료진은 3개월 시한부 인생을 선고했다. 대통령 주치의인 필립 드 퀴페르 박사가 고려인삼이 암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한국에서 홍삼을 구해 대통령에게 복용하게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미테랑 대통령은 암을 이기지는 못했지만 시한부 생명을 6개월 이상 연장해 고려인삼의 항암 효과를 유럽에 알렸다.
1998년 일본 주간지 ‘신초(新潮)’ 12월호는 황실 업무를 담당하는 궁내청이 한 건강식품업체를 통해 정자 결핍증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인삼 엑기스를 북한 측에 특별 주문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아키히토 일본 천황은 나루히토, 후미히토 등 2명의 왕자를 뒀지만 장자인 나루히토 황태자가 결혼 6년이 지나도록 아이를 갖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1998년 일본은 천황 계승 문제로 떠들썩했다. 마사코 황태자비의 나이는 30대 중반, 후미히토도 딸만 둘을 낳아 일본 황실에서는 30년 넘게 왕세손을 보지 못해 초조한 상태였다.
황실은 이런 상황에서 북한 측으로부터 고려인삼을 대량 구입했다. 이후 마사코 황태자비는 결혼 12년만인 2001년 12월 1일 딸아이를 출산했다. 후미히토도 2006년 아들을 낳았다. 예로부터 고려인삼의 효능을 높이 인정한 일본에서 인삼이 황실 혈통 잇기에 한몫한 것이다.
환상적인 음악과 몸매의 비밀 ‘스콜피온스’ ‘나오미 캠벨’
세계적인 톱스타들의 고려인삼 사랑도 유별나다. 헤비메탈 팬들을 열광시켰던 독일의 전설적인 록 그룹 스콜피온스는 대표적 인삼 예찬론자. 데뷔 30주년 및 그룹 최초의 언플러그드 앨범 발매 기념으로 2001년 한국에 온 스콜피온스는 공항 기자회견에서 한국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느냐는 질문에 거침없이 “코리아 진생”이라며 “몸이 강해지는 것 같다”고 말해 한국 팬들의 박수를 받았다.
스콜피온스는 ‘스틸 러빙 유(Still loving you)’라는 노래로 유명한 세계적 록 그룹으로, 멤버 중 클라우스 마이네는 “한국에 올 때마다 인삼을 꼭 사서 가는데 그것을 다 먹으면 한국에 돌아와야 한다”는 농담으로 한국에 대한 애정을 과시했다. 1972년 데뷔한 스콜피온스는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변함없는 실력과 체력으로 왕성한 공연 활동을 펼치다가, 올해 4월 공식 해체를 선언해 많은 팬들의 아쉬움을 낳았다. 그들의 롱런 비결은 어쩌면 인삼의 에너지 파워였는지도 모른다.
세계적인 톱 모델 나오미 캠벨도 인삼 애용자다. 2003년 패션쇼 참석차 서울에 온 캠벨은 30대의 나이에도 아름다운 몸매와 고운 피부를 유지하는 비결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서슴없이 ‘인삼즙’이라고 답변해 화제를 모았다. 평소 캠벨은 인삼 음료를 자주 마신다고 한다. 괴팍함과 돌출 행동으로 유명한 그는 서울 방문 당시에도 숙소인 모 호텔의 디럭스룸 전체를 특정 컬러로 꾸며줄 것을 요구하고, 호텔 식당가의 모든 메뉴판을 모아오게 해 음식을 고르는 등 많은 에피소드를 남겼다.
캠벨이 인삼 음료를 좋아한다는 소식에 행사 준비팀은 즉시 홍삼 음료를 준비해 숙소 냉장고에 비치했다. 조선시대의 대표적 미인 황진이가 개성 인삼의 잎으로 목욕하고 화장했다는 이야기를 캠벨도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의 탄탄하고 고운 피부는 인삼의 피부 미용 효과를 떠오르게 한다.
인삼 먹고 아이 낳고 연승하고 ‘캘러웨이’ ‘단테 존스’
프로야구, 프로농구 외국인 선수 중 인삼을 애용하는 스타도 적지 않다. 2005년부터 2007년 시즌까지 프로야구 현대 유니콘스에서 활약하던 미키 캘러웨이는 고려인삼 덕을 톡톡히 본 선수. 미국 메이저리그 투수 출신인 그는 2002년 결혼했지만 아이가 생기지 않아 고민이었다. 아내의 임신을 위해 미국에서 온갖 노력을 해봤지만 허사였다. 그러던 그가 한국 프로야구에 스카우트돼 2005년 한국에 왔고, 아내가 임신하는 경사를 서울에서 맞았다.
캘러웨이 부부는 “아이를 임신하는 데 같은 팀의 조용준 투수가 큰 도움이 됐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사연인즉, 캘러웨이는 조 선수와 친하게 지냈는데 인삼 애용자인 조 선수가 그에게 체력 보강을 위해 인삼을 복용하라고 권했다. 조 선수의 강력한 권고에 그는 인상을 찌푸려가며 인삼을 먹었지만, 실제로 스태미나 증진에 효능이 있다는 것을 느낀 후 꾸준히 섭취해 체력 증진뿐 아니라, 2세까지 얻을 수 있었다. 캘러웨이는 “조용준이 건네준 인삼 음료를 많이 먹었더니 체력이 좋아졌고, 오랫동안 안 생기던 2세도 얻었다”며 조 선수를 아이의 대부(代父)라고 불렀다.
캘러웨이 외에도 프로구단의 많은 외국인 용병들이 홍삼을 즐겨 먹는다. 프로농구 안양 KT·G 카이츠에서 맹활약하던 단테 존스도 홍삼 예찬론자다. 그는 캡슐 형태의 홍삼을 선호한다. 프로농구 사상 15연승의 위업을 달성한 존스의 점프력과 체력은 누가 봐도 발군인데, 그의 스태미나 보강에 고려인삼이 크게 기여했던 것.
지금도 많은 프로구단들이 외국인 선수들의 체력 보강을 위해 홍삼을 공급하고 있다. 이들이 고국으로 돌아가거나 외국 구단으로 진출할 때 인삼의 놀라운 효능은 더욱 멀리 전파될 것이다.
인삼은 귀중한 동양의 보물 ‘루이 14세’
인삼이 서양에 알려진 것은 16세기경. 1299년 출간된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은 중국, 아시아, 중동의 풍물과 문화를 담고 있지만 인삼에 대한 언급은 없다. 이때까지만 해도 동양의 신비한 약초 인삼은 서양에 알려지지 않았다. 인삼이 유럽에 전파된 최초의 기록은 1575년 러시아인 신부 마르친 마르치니우스가 중국에서 얻은 인삼을 ‘신비한 풀’로 서술한 데서 비롯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렇게 전해진 동양의 신비한 풀 인삼은 입소문을 타고 유럽 상류층에 전해졌다. 태국 왕국의 사신이 프랑스 루이 14세(재위 1613~1715년)에게 헌상했다는 문헌으로 보건대, 인삼은 굉장히 귀하게 여겨졌던 것 같다. ‘태양왕’이라는 별칭을 얻은 루이 14세는 프랑스를 유럽 최강국으로 만든 전제군주로, 당시 동양에서도 앞다퉈 많은 선물을 보냈는데 그중 인삼은 ‘동양의 보물’로 인식됐다.
서양에 알려진 인삼이 중국을 경유해 중국의 귀한 약재로 전파됐다면, 고려인삼은 17세기 초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직원들이 본국에 보내는 정세 보고서를 통해 처음 알려졌다. 일본에 파견돼 있던 동인도회사의 쿠커르 바커르 무역관장이 조선의 특산물로 “쌀, 구리, 인삼”을 꼽으면서 “조선 해안의 한 모서리 유역에서 일본인들과 교역하고 있다”고 기록해놓았다. 이는 조선 중기 부산에서 성행하던 일본 쓰시마 도주들과의 인삼 교역을 서술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에도 간간히 서신이나 여행기 형태로 유럽에 전해지던 인삼은 1711년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인삼은 정열적 창작의 원천 ‘루소’ ‘고리키’
러시아 문호 막심 고리키. 그는 왕성한 문학 활동의 원천으로 고려인삼을 지목했다.
루소의 제자이자 문인이던 베르나르댕 드 생피에르는 1772년 블루본 섬에서 가져온 커피 원두 한 포대를 루소에게 선물로 보냈다. 블루본산 커피는 그 당시 매우 귀한 선물이었다. 고지식한 성격의 루소는 “제자에게 값비싼 선물을 받을 수 없다”며 그것을 돌려주려고 했다. 그러자 생피에르는 루소에게 커피를 돌려줄 것이 아니라 “선생님도 저에게 선물을 주시면 되지 않습니까”라며 넘어가려고 했다. 그때 루소가 생피에르에게 보낸 답례품이 인삼 한 뿌리였다. 세계적인 사상가 루소의 꼿꼿한 선비정신을 동양의 인삼이 지켜준 것이었다.
러시아의 문호 막심 고리키(1808~1936년)도 인삼 애용가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고리키와 절친했던 소설가 자먀찐은 고리키가 서거한 직후 망명지인 프랑스 파리에서 그를 회고하는 회상기를 남겼다. 소련 당국에 위험분자로 지목된 자먀찐은 1932년 고리키의 도움으로 프랑스 파리로 망명하는 등 그와 막역한 친분 관계를 유지했다.
자먀찐은 문학에 대한 고리키의 정열을 보고 그 힘의 원천이 무엇인지 궁금해하던 일을 회상하며, 고리키와 인삼에 얽힌 이야기를 전한다. 자먀찐은 줄담배를 피우고 결핵을 앓고 있던 고리키가 하루에 몇 시간밖에 자지 않고도 왕성한 문학 활동을 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고리키는 비밀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자먀찐을 지하 식당으로 데려가 호리병 안에 든 인삼즙을 보여줬다고 한다. 고리키는 “나를 존경하는 어떤 사람이 만주에서 가져다준 인삼”이라고 설명했다.
서양에 고려인삼 가치 설파 ‘선교사 자르투’
중국 베이징에 파견돼 있던 프랑스인 선교사 자르투는 청나라 강희제의 명을 받고 지도 제작을 위해 조선을 답사했다. 자르투는 1709년 조선과 청나라의 국경지역(달단 지역, 만주 지방)을 돌면서 지형 자료를 수집하던 중 처음으로 조선 산삼을 접하게 된다. 그 당시 산삼은 금에 버금갈 만큼 귀했는데 ‘발견하면 중국 황제에게 바쳐지는 진상품’이라는 설명을 들은 바 있는 자르투는 1711년 4월 자신이 직접 그린 산삼 삽화와 함께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본국에 보냈다.
“우리는 조선에서 불과 40리 거리의 ‘칼가라’라는 달단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네 뿌리의 산삼을 산에서 캐 우리에게 가져왔습니다. 중국에서 고귀한 신분의 사람들은 거의 모든 약에 산삼을 배합합니다. (중략) 제가 뿌리의 절반을 날 것으로 먹은 뒤 한 시간이 지나서 맥을 짚어봤더니 맥박이 훨씬 강해진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식욕이 증진됐고, 전보다 훨씬 원기가 좋아졌습니다. 힘도 전에 없이 좋아졌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호전 증세가 휴식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크게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나흘 뒤 저는 무척 지쳐서 말 잔등에 앉아 있기도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이를 눈치 챈 관원이 제게 산삼 한 뿌리를 주었습니다. 저는 곧바로 그 반을 먹었는데 한 시간 뒤 피로가 말끔히 가셨습니다. 그 뒤로는 산삼을 자주 먹습니다. 언제나 같은 효과를 보고 있습니다.”
자르투는 이러한 내용과 산삼을 발견한 지역의 정확한 위도, 경도, 식생 환경을 전하면서 신비의 약초를 꼭 찾을 것을 요청했다. 이 편지는 영국 런던 왕립학회보에 실렸으며, 1716년 캐나다 인디언 마을에 머물던 프랑스인 선교사 라피코는 자르투의 편지를 접하고 인디언들과 인삼을 찾아 헤맸다. 인디언들은 3개월 후 몬트리올 근교에서 산삼을 찾아냈다. 이것이 아메리카 진생의 시원이 됐다. 지금도 북미 지역에서는 야생삼을 관리하고 있으며, 특히 캐나다 퀘벡과 미국 위스콘신 주에서 대규모로 인삼(화기삼)이 재배된다.
세계 정상을 감동시킨 코리아 ‘진생 파워’ ‘교황 바오로 2세’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 ‘일본 황실’
건강 때문에 인삼을 애용한 세계 명사들도 많다. 1999년 초 주 바티칸 교황청 한국대사를 지냈던 배양일 전 대사의 증언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1984년 한국을 방문했을 당시 청와대 경호실 공군연락관이었던 배 전 대사는 교황이 탑승했던 대통령 전용 헬기의 책임자로 교황의 소록도, 광주, 대구, 부산 방문을 수행했다. 공군 중장으로 전역한 후 1999년 교황청 주재 한국대사로 임명되면서 교황 바오로 2세와의 인연이 이어졌다. 배 전 대사는 교황을 알현할 때 1984년 한국 방문 당시의 인연을 밝혔고, 교황은 매우 반가워하며 더욱 친분이 깊어졌다. 배 전 대사는 교황과 인삼의 인연을 이렇게 설명했다.
“당시 교황은 파킨스병과 몇 가지 질병을 앓고 있었다. 한 번은 접견하러 갈 때 홍삼차를 선물로 전해드린 적이 있다. 이후 교황을 모시는 주교가 ‘교황님이 홍삼차를 무척 좋아하신다’고 귀띔했다. 이후 홍삼차 외에 홍삼 뿌리, 홍삼 엑기스 등을 가끔 보내드렸다. 앞서 재임했던 대사들도 가끔 교황께 고려인삼을 선물한 것으로 아는데, 내가 근무할 당시는 많이 쇠약해진 상태라 고려인삼이 더욱 귀하게 쓰였던 것 같다.”
교황 바오로 2세의 홍삼 애용이 입소문으로 번지면서 주 바티칸의 주교들과 로마에 주재하던 많은 나라의 대사들 사이에 고려인삼 열풍이 불었다. 심지어 교황 근위병까지도 홍삼을 구할 방법을 한국대사관에 물어왔다고 한다.
1995년 대통령 재임 중에 암 선고를 받은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은 힘겨운 투병생활을 하고 있었다. 의료진은 3개월 시한부 인생을 선고했다. 대통령 주치의인 필립 드 퀴페르 박사가 고려인삼이 암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한국에서 홍삼을 구해 대통령에게 복용하게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미테랑 대통령은 암을 이기지는 못했지만 시한부 생명을 6개월 이상 연장해 고려인삼의 항암 효과를 유럽에 알렸다.
1998년 일본 주간지 ‘신초(新潮)’ 12월호는 황실 업무를 담당하는 궁내청이 한 건강식품업체를 통해 정자 결핍증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인삼 엑기스를 북한 측에 특별 주문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아키히토 일본 천황은 나루히토, 후미히토 등 2명의 왕자를 뒀지만 장자인 나루히토 황태자가 결혼 6년이 지나도록 아이를 갖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1998년 일본은 천황 계승 문제로 떠들썩했다. 마사코 황태자비의 나이는 30대 중반, 후미히토도 딸만 둘을 낳아 일본 황실에서는 30년 넘게 왕세손을 보지 못해 초조한 상태였다.
황실은 이런 상황에서 북한 측으로부터 고려인삼을 대량 구입했다. 이후 마사코 황태자비는 결혼 12년만인 2001년 12월 1일 딸아이를 출산했다. 후미히토도 2006년 아들을 낳았다. 예로부터 고려인삼의 효능을 높이 인정한 일본에서 인삼이 황실 혈통 잇기에 한몫한 것이다.
환상적인 음악과 몸매의 비밀 ‘스콜피온스’ ‘나오미 캠벨’
고운 피부와 아름다운 몸매 유지의 비결이 인삼즙에 있다고 말한 나오미 캠벨.
스콜피온스는 ‘스틸 러빙 유(Still loving you)’라는 노래로 유명한 세계적 록 그룹으로, 멤버 중 클라우스 마이네는 “한국에 올 때마다 인삼을 꼭 사서 가는데 그것을 다 먹으면 한국에 돌아와야 한다”는 농담으로 한국에 대한 애정을 과시했다. 1972년 데뷔한 스콜피온스는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변함없는 실력과 체력으로 왕성한 공연 활동을 펼치다가, 올해 4월 공식 해체를 선언해 많은 팬들의 아쉬움을 낳았다. 그들의 롱런 비결은 어쩌면 인삼의 에너지 파워였는지도 모른다.
세계적인 톱 모델 나오미 캠벨도 인삼 애용자다. 2003년 패션쇼 참석차 서울에 온 캠벨은 30대의 나이에도 아름다운 몸매와 고운 피부를 유지하는 비결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서슴없이 ‘인삼즙’이라고 답변해 화제를 모았다. 평소 캠벨은 인삼 음료를 자주 마신다고 한다. 괴팍함과 돌출 행동으로 유명한 그는 서울 방문 당시에도 숙소인 모 호텔의 디럭스룸 전체를 특정 컬러로 꾸며줄 것을 요구하고, 호텔 식당가의 모든 메뉴판을 모아오게 해 음식을 고르는 등 많은 에피소드를 남겼다.
캠벨이 인삼 음료를 좋아한다는 소식에 행사 준비팀은 즉시 홍삼 음료를 준비해 숙소 냉장고에 비치했다. 조선시대의 대표적 미인 황진이가 개성 인삼의 잎으로 목욕하고 화장했다는 이야기를 캠벨도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의 탄탄하고 고운 피부는 인삼의 피부 미용 효과를 떠오르게 한다.
인삼 먹고 아이 낳고 연승하고 ‘캘러웨이’ ‘단테 존스’
프로야구, 프로농구 외국인 선수 중 인삼을 애용하는 스타도 적지 않다. 2005년부터 2007년 시즌까지 프로야구 현대 유니콘스에서 활약하던 미키 캘러웨이는 고려인삼 덕을 톡톡히 본 선수. 미국 메이저리그 투수 출신인 그는 2002년 결혼했지만 아이가 생기지 않아 고민이었다. 아내의 임신을 위해 미국에서 온갖 노력을 해봤지만 허사였다. 그러던 그가 한국 프로야구에 스카우트돼 2005년 한국에 왔고, 아내가 임신하는 경사를 서울에서 맞았다.
캘러웨이 부부는 “아이를 임신하는 데 같은 팀의 조용준 투수가 큰 도움이 됐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사연인즉, 캘러웨이는 조 선수와 친하게 지냈는데 인삼 애용자인 조 선수가 그에게 체력 보강을 위해 인삼을 복용하라고 권했다. 조 선수의 강력한 권고에 그는 인상을 찌푸려가며 인삼을 먹었지만, 실제로 스태미나 증진에 효능이 있다는 것을 느낀 후 꾸준히 섭취해 체력 증진뿐 아니라, 2세까지 얻을 수 있었다. 캘러웨이는 “조용준이 건네준 인삼 음료를 많이 먹었더니 체력이 좋아졌고, 오랫동안 안 생기던 2세도 얻었다”며 조 선수를 아이의 대부(代父)라고 불렀다.
캘러웨이 외에도 프로구단의 많은 외국인 용병들이 홍삼을 즐겨 먹는다. 프로농구 안양 KT·G 카이츠에서 맹활약하던 단테 존스도 홍삼 예찬론자다. 그는 캡슐 형태의 홍삼을 선호한다. 프로농구 사상 15연승의 위업을 달성한 존스의 점프력과 체력은 누가 봐도 발군인데, 그의 스태미나 보강에 고려인삼이 크게 기여했던 것.
지금도 많은 프로구단들이 외국인 선수들의 체력 보강을 위해 홍삼을 공급하고 있다. 이들이 고국으로 돌아가거나 외국 구단으로 진출할 때 인삼의 놀라운 효능은 더욱 멀리 전파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