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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 강원의 숲을 걷다⑨

한 마리 용이 꿈틀대는 모습 칠족령 정상에서 확인했다

동강길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한 마리 용이 꿈틀대는 모습 칠족령 정상에서 확인했다

한 마리 용이 꿈틀대는 모습 칠족령 정상에서 확인했다

트레킹 코스의 중간쯤 벼랑 끝에서 만나는 동강의 풍경.

세상에서 목적지에 도착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마음이 맞는 사람과 걸어가는 것이다. 물론 자동차나 비행기를 타면 시간상으론 훨씬 빠르게 도착할지 모른다. 하지만 왜 목적지에 가야 하는지 그 의미를 곱씹으면서, 마음 맞는 지기(知己)와 생각을 나누며 걷는 것에 비할 바가 아니다. 불편한 사람과 비행기를 타기보다 차라리 혼자 걷는 게 낫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 함께 길을 떠나야 한다면 마음은 복잡해진다. 얘기가 잘 통해 죽이 척척 맞으면 그보다 좋을 수 없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절경을 마주해도 그 길은 고행일 뿐이다. 누구와 함께 걷게 될지 모르는 설렘을 안은 채, 동강 트레킹의 첫발을 힘차게 내디뎠다.

마음 맞는 지기와 걷기

첫 만남은 서먹했다. 이날 트레킹은 가나안농군학교 및 한국분권아카데미 직원 10여 명과 ‘아름다운 길을 걸으면서 길을 통한 지역의 발전방향을 모색하자’는 취지에서 이뤄졌다. 그들은 난데없는 불청객의 등장에 약간은 당황해하는 표정이었다. 오전 10시, 가볍게 통성명을 한 뒤 줄지어 걷기 시작했다.

동강길 코스는 강원도 정선군 고성안내소에서 출발해 연포마을, 칠족령을 거쳐 평창군 문희마을에서 1박을 한 뒤, 다음 날 기화안내소까지 걸어가는 20여km의 트레킹 코스다. 아직 정식으로 개발되지 않은 탓에 이날 참여한 사람 중 서너 명을 제외하곤 모두 초행길이었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을 지나며 조금씩 속도를 냈다. 시큼털털한 쇠똥 냄새가 연신 코를 찔렀다.

“어디 가능교?”



사람이 반가워서일까, “안녕하세요” 한마디 인사에 밭에서 허리 굽혀 일하던 할머니가 어렵사리 몸을 세우며 말을 건넸다. 동강을 보러 간다고 답하자, 가는 길 끝을 가리키며 말없이 웃었다. 본격적으로 가파른 산길이 이어졌다. 이마에서 땀이 송골송골 맺혀 얼굴로 한두 방울씩 미끄러졌다. 길 건너편으로 어렴풋이 산성의 형태가 남아 있었다. 삼국시대의 유적으로 추정되는 고성리 산성으로, 삼국이 영토 확장을 위해 전쟁을 벌인 격전지다.

20여 분을 부지런히 올라가자 숲 속의 오솔길이 펼쳐졌다. 소나무 그늘에서 잠시 땀을 닦은 뒤 준비해온 도시락으로 허기진 배를 달랬다. 평탄한 길이 계속되는가 싶더니 곧 내리막길로 들어섰다. 10여 분을 내려가자 ‘솨솨’ 물소리가 들려왔다. 어디서 들리는 소리일까 귀 기울이며 굽잇길을 돌아서는 순간, 눈앞에서 청룡이 굽이쳐 춤을 췄다.

정선군과 평창군 일대의 깊은 산골에서 발원해 영월군에 이르는 60km의 장대한 강줄기는 산과 산을 굽이굽이 둘러싸고 있다. 평창군 오대산에서 발원하는 오대천과 정선군 북부를 흐르는 조양강이 합류해 흐르는 동강은 완택산과 곰봉 사이의 산간지대를 감입 곡류하며 남서쪽으로 흐르다가 영월군 영월읍 하송리에서 서강과 합쳐져 남한강 상류로 흘러든다. 이런 동강을 보고 유홍준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국토의 오장육부’라고 표현했다. 누군가는 “들어가 함께 있으면 어느새 강의 일부가 돼버리고, 떨어져 바라보면 그리운 임을 먼발치에 둔 듯 간절함을 품게 하는 강”이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한 마리 용이 꿈틀대는 모습 칠족령 정상에서 확인했다

고성안내소에서 출발, 정선군 성재를 지나는 길에 나타난 마을은 강원도의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외관의 아름다움과 대조적으로 동강은 아픈 갈등의 역사를 지닌 강이다. 2000년 6월 동강댐 건설 계획이 백지화될 때까지 댐 건설을 두고 정부와 환경단체, 주민 간의 갈등은 극에 달했다. 생존권 확보 차원의 주민운동에서 시작한 동강댐 백지화 운동은 환경단체, 학계, 종교계, 문화예술계 등으로 확산됐고, 그린피스와 시에라클럽 등 세계적 환경단체들의 동참으로 이어지면서 국제적인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하지만 10년이란 세월의 흐름 속에 동강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말없이 흘러갈 뿐이다. 동강을 지키자는 온갖 바람이 담긴 노란 손수건의 물결, 각계각층 2000여 명이 참여한 33일간의 밤샘농성, 5000여만 원의 국민성금 등 숨 가쁘게 돌아갔던 지난 일들도 이젠 물결 속으로 아스라이 흩어졌다.

장마에 물이라도 불으면 금방 잠길 듯 보이는 다리 위에 서니 지금껏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게 된다. 인생의 이정표 앞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하다면 이렇게 잠시 가던 길을 멈춰 지난날을 돌이켜보자. 세상살이의 허허로움에서 몸살을 앓게 될 때 이보다 좋은 것은 없다. 쏟아지는 햇살이 잔잔한 강물에 부딪히며 피아노 건반을 두드렸다. 천상의 칸타타 소리에 말없이 걷던 사람들 사이에서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탄성이 터져 나왔다.

“참 아름답죠.”

한국분권아카데미 김동식 본부장은 그림 같은 풍경을 놓치기 싫은 듯 카메라를 꺼내들었다. 미처 카메라를 준비하지 못한 이들은 살며시 양손을 총 모양으로 만든 뒤, 직사각형으로 이어 붙였다. 손가락 사이에 풍경을 담아가기 위해서다. 어색했던 분위기도 한 시간 남짓 걸으면서 많이 누그러졌다. 제법 옹기종기 짝을 이뤄 도란도란 얘기꽃도 피웠다.

강을 건너 연포마을에 들어서자 ‘왜 이제야 왔느냐’는 듯 외딴 폐교가 반갑게 맞이했다. 학생 수가 줄어들면서 읍내 지역의 초등학교에 통합돼 지금은 생태전시관으로 이용된다. 이곳은 영화배우 차승원이 주연한 ‘선생 김봉두’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인상적인 강원도 사투리로 많은 관객을 울리고 웃겼던 김봉두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까 싶어 학교 외벽을 조심스레 만져봤다.

학교를 벗어난 이후는 또다시 산길. 외길이 이어지다 보니 걸음걸음 옮길 때마다 조심스러웠다. 제법 올라간 탓에 강 주변의 사람들이 손가락보다도 작아 보였다. 자칫 발을 헛디디기라도 하면 시퍼런 강 속으로 빠지게 된다. 번지점프를 해 힘껏 밑으로 뛰어내렸으면…. 하지만 협곡 사이에 투명한 유리로 만들어놓은 105m 높이의 ‘하늘벽 구름다리’에 서자 일말의 충동은 깨끗이 사라졌다.

떳떳한 자태를 뽐내는 동강할미꽃

구름다리를 지나 30여 분 걸어가면 트레킹의 하이라이트인 칠족령 전망대가 나타난다. 옻칠(漆)자와 발족(足)자를 써서 칠족령이다. 옻칠을 하던 한 선비 집의 개가 발에 옻칠갑을 하고 도망갔는데 그 자국을 따라 가보니 금강산 못지않은 동강 물굽이 풍경이 펼쳐졌다는 것이다. 칠족령은 칠죽령이라고도 불린다. 산봉우리가 7개의 죽순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칠족령 전망대에 올라서자 이제 청룡이 승천을 준비 중인 듯했다. 왼쪽으로 들어온 물이 ‘뼝대(바위로 이뤄진 높고 큰 낭떠러지의 강원도 사투리)’에 부딪혀 휘돌아가고, 다시 오른쪽 뼝대에 막혀 꺾이는 풍경이 가히 장관이다. 지금까지 걸어온 제장마을과 소사마을은 물론 아득히 보이는 연포마을까지 한눈에 들어왔다.

한 마리 용이 꿈틀대는 모습 칠족령 정상에서 확인했다

1 동강변의 메밀꽃 밭. 2 걷다가 땀이 송골송골 맺히면 잠시 동강에 손을 담가 더위를 식힌다. 3 동강의 희귀화인 동강할미꽃, 20여 일의 짧은 기간에만 꽃이 핀다.

칠족령을 거쳐 1km 남짓 걸어가면 문희마을이 나타난다. 마을에 도착했을 땐 어느덧 주변이 어스름해졌다. 이 마을 민박집인 백운산방 주인은 “최고의 저녁을 기대하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그는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동강할미꽃을 구경하라고 산장 아래쪽으로 등을 떠밀었다. 동강을 대표하는 어종이 어름치라면, 식물로는 동강할미꽃이 손꼽힌다. 동강할미꽃은 1998년 처음 발견돼 학계에 보고된 우리나라 특산 희귀식물로, 3월 하순에서 4월 중순의 짧은 기간에만 꽃이 핀다. 백룡동굴 진입로 공사현장을 지나자 깎아지른 절벽이 나타났다. 절벽의 암석 틈에서 자주색과 분홍색 빛깔을 내뿜는 동강할미꽃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살아갈까라는 놀라움에 한 번 놀라고, 그 당당함에 또 한 번 감탄하게 된다. 할미꽃이 땅을 보고 고개를 숙이는 것과 달리, 동강할미꽃은 하늘을 보고 꼿꼿이 핀다. 동네 주민들은 “최근 사람들이 무분별하게 채취하는 바람에 개체수가 부쩍 줄었다. 희소가치가 큰 꽃이 자칫 멸종될 수 있는 만큼 보호가 시급하다”며 안타까워했다.

다음 날 서둘러 아침식사를 마치고 남은 길을 재촉했다. 30여 분을 걷자 진탄나루가 나타났다. 진탄나루 바로 위쪽 동강변으로 집채만 한 바위가 도로 한쪽을 차지하고 있다. 주민들은 옛날 동강에 물이 불어 길을 따라 정상적으로 통행하기 어려우면 이 바위를 안고 돌았다고 해 ‘안돌바위’라는 명칭을 붙여줬다. 이 바위에는 2km 상류의 황새여울에서 뗏목을 운반하던 뗏군이 물에 빠져 죽은 뒤, 아내가 남편을 찾아와 바위를 안고 돌다 강에 빠져 숨졌다는 슬픈 사연이 담겨 있다. 바위 앞엔 이를 기리기 위한 ‘뗏군부부 위령비’가 세워져 있다.

진탄나루에 떠 있는 외딴 뗏목이 마치 이별의 시간을 예고하는 듯했다. 짧은 인연일지라도, 헤어짐은 가슴을 미어지게 한다. 그러고 보니 이날 오전 트레킹은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를 만큼 순식간에 지나갔다. 한국분권아카데미 한태희 연구원이 “마음 맞는 사람끼리 걸어서 그런 것 아니냐”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빠르게 걷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닌가 보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가장 먼저 마음속에 떠오른 사람과 꼭 다시 한 번 들르고픈 동강길이다.

한 마리 용이 꿈틀대는 모습 칠족령 정상에서 확인했다
Basic info.

☞ 교통편

서울을 기점으로 한남로에서 경부고속도로→신갈 분기점→영동고속도로 원주·이천 방면→만종 분기점→중앙고속도로 안동·남원주 방면→제천IC에서 5번 단양·영월·자동차전용도로·한국폴리텍대학4 방면으로 우측 방향→동막교차로에서 38번 영월·쌍용 방면으로 우측 방향→유문동 쪽으로 좌회전→동강로에서 좌회전→여기서 10여 분을 들어가면 고성안내소(033-378-2055). 강원도 정선군 신동읍 고성리 686-1.

☞ 코스

고성안내소→성재→물레재→소사나루→연포마을→가정→칠족령→문희마을(1일차 숙박)→진탄나루→기화안내소, 18~20km.

☞ 백운산방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 마하리 문희마을. 영동고속도로 새말IC에서 빠져 안흥, 평창을 지나 문희마을까지 1시간 30분가량 소요된다. 예약 문의 (033) 334-9891



주간동아 2010.07.12 745호 (p46~48)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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