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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 강원의 숲을 걷다⑧

답답한 한숨과 시름일랑 설악산 품에서 풀고 가소

백담사에서 영시암 가는 길

  •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답답한 한숨과 시름일랑 설악산 품에서 풀고 가소

답답한 한숨과 시름일랑 설악산 품에서 풀고 가소
설악산(雪嶽山). 한가위부터 쌓이기 시작한 눈이 이듬해 비로소 녹는다 하여 설악이란 이름이 붙었다. 설악산은 찬 기운이 강해 한을 식히기 좋은 곳이라 전해진다. 만해 한용운 선생도 망국의 한을 달래기 위해 설악산 백담사를 찾아 이곳에서 ‘님의 침묵’을 썼다.

뜨거운 여름, 인공구조물에 갇힌 도시인도 저마다 스트레스 ‘불덩이’를 가슴에 품고 산다. 스트레스는 현대인의 한이 됐다. 설악산을 찾아 백담사부터 영시암까지 걷다 보면 뜨거웠던 불기운이 식고 마음이 편해진다. 시원한 계곡물 소리, 호젓하게 자리한 암자의 넉넉함이 도시인의 지친 기운을 북돋아준다. 설악이란 이름에 부담감을 느낄 필요도 없다. 왕복 9km 남짓, 평평한 숲길이 이어지니 초보자에게도 어렵지 않다. 설악산 대청봉을 오르는 등산객들이 워밍업하기 딱 좋은 곳이라 한다.

차는 백담사 용대리 주차장에 세워둬야 한다. 주차장에서 백담사 입구까지는 약 7km로 걸어서는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걷기가 부담스럽다면 30분 간격으로 운행하는 셔틀버스를 이용해도 된다. 백담 계곡의 정취를 만끽하려는 탐방객들에게는 걷기를 권하고 싶지는 않다. 차 한 대 겨우 다니는 좁은 길인데 셔틀버스를 신경 쓰다 보면 마음 편히 걷기 쉽지 않다.

백담사 입구에 내리면 커다란 설악산국립공원 안내판이 나온다. 오른쪽으로 꺾으면 수심교를 건너 백담사에 갈 수 있다. 왼쪽 숲길을 따라 500m 정도 올라가면 영시암 가는 길의 시작점인 탐방로 안내소가 나온다. 백담사-영시암 코스가 왕복 2시간 30분 정도면 충분한 만큼 백담사에 들러도 된다. 백담사를 찾은 신자들도 백담사-영시암 코스를 많이 이용한다. 이곳을 몇 번 찾았다는 최신이(55) 씨는 “평지에 가까운 길이라 나이에 관계없이 찾을 수 있고 계곡물 소리, 새소리가 참 좋은 곳”이라고 추천했다.

백담사-영시암 코스는 수렴동 계곡을 따라 이어진다. 시원한 계곡 소리를 만끽하며 걷는 것도 좋지만 계곡, 폭포 이름을 맞춰가며 걸으면 길이 심심하지 않다. 수렴동 계곡을 바라보며 걷다 보면 작은 폭포가 있는데, 바로 ‘황장폭포’다. 백옥 같은 바위 사이로 쏟아져 내리는 물이 절경이다. 첫 번째 나무데크 길이 시작되면 잠시 멈춰서 오른쪽을 바라보자. 굴참나무, 소나무, 물푸레나무가 쳐놓은 나무병풍 사이로 흑선동 계곡이 보인다. 계곡의 돌이 검다고 해서 흑선동이란 이름이 붙었다. 출입이 금지돼 먼발치에서 볼 수밖에 없어 돌이 검은지 확인할 수는 없다.



시원한 계곡소리, 새소리가 좋은 곳

탐방로 곳곳에 생긴 나무데크 길은 2006년 여름 심한 장마로 기존 등산로가 유실된 뒤에 만들어졌다. 일부 탐방객은 인공물이 자연경관을 해쳤다고 지적하지만, 나무테크 길이 생긴 뒤 길 아래는 식물이 다시 자라게 됐다. 수렴동 계곡이 자갈로 가득 차게 된 이유는 장마 때문이다. 쏟아져 내린 비로 산 위의 자갈돌이 떠내려와 물웅덩이였던 곳이 자갈로 가득 메워졌다.

답답한 한숨과 시름일랑 설악산 품에서 풀고 가소

검은 물웅덩이로 보이지만 이곳에도 1급수 물고기들이 산다.

계곡을 따라 걷다 보면 첫 번째 철제 다리를 건넌다. 2006년 수해 때도 살아남은 다리다. 다리 밑으로 흐르는 계곡은 길골 계곡이다. 설악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 전에는 길골 계곡 안에 사람들이 살았다고 한다. 이곳 주민들은 인근에서 캔 산나물과 약초를 팔아 생계를 유지했는데, 길골 계곡과 용대리를 거쳐 멀리 속초까지 나아갔다. 영시암을 오르는 길에도 옛 집터가 남아 있다. 나무 아래 돌담의 흔적이 그것이다. 다리를 건너 조금 더 걸으면 수렴동 계곡이 다가온다. 천연 1급수라 두 손 가득 계곡물을 떠 마셔도 좋다. 오른쪽으로 수렴동 계곡으로 흘러 내려오는 물이 보이는데, 바로 귀떼기 계곡이다. 귀떼기 계곡을 따라 오르면 귀떼기 청봉에 이른다. 계곡길 따라 쌓아올린 돌탑을 보는 재미도 있다. ‘어떻게 쌓아올렸나’ 궁금하게 만드는 돌탑들이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유지하며 서 있다. 간절한 소망이 없다면 쌓을 수 없었을 것이다. 자갈밭에는 잘라놓은 나무도 쌓여 있는데, 이른바 수해목이다. 수해로 떠내려온 나무를 그대로 방치하면 나무테크 등에 걸려 수해를 키울 수 있기에 적당한 크기로 잘라 쌓아둔 것.

“헉, 이거 오염된 물 아니에요?”

바닥이 훤히 보이는 수렴동 계곡을 바라보다 검은 웅덩이를 마주한 탐방객이 놀라 소리를 지른다. 무엇이 물을 검게 물들였을까. 설악산국립공원 동식물보호단 장세진 씨는 “물 바닥에 쌓인 나뭇잎이 썩어 물 색깔이 검게 변한 것이다. 웅덩이로 보이지만 땅속으로 물이 흐르고 있다. 잘 모르는 탐방객들이 물고기를 살려달라고 민원을 넣기도 하지만 1급수 물고기들이 살고 있다”고 말했다. 장씨 말처럼 아래를 가만히 바라보니 갈겨니가 떼 지어 움직이고 있다. 탐방객들의 걱정처럼 유해물질에 오염된 물이 아니었던 것이다. 영시암에 오르며 만난 계곡길에는 1급수에서 사는 물고기가 많았다. 어름치, 꺽지, 갈겨니, 쉬리 등.

여기서 좀 더 나아가니 어느새 숲이 우거진다 싶더니 수렴동 계곡은 보이지 않고 물소리만 들린다.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숲이 울창하니 굵은 비가 쏟아져도 소리만 들릴 뿐 몸은 쉽사리 젖지 않는다. 울창한 숲길의 효과에 놀라며 걷는데 순간 공간이 넓어진다. 낙엽송 군락지다. 눈썰미가 있는 사람들은 왼쪽으로 눈을 돌려 항아리 모양의 부도탑을 발견한다. 부도탑에는 아쉽게도 안내판이 없다. 안내판이 없으니 영시암을 자주 오르는 사람들을 붙잡고 전설을 들을 수밖에 없다. 부도탑 자리 계곡 맞은편에 절터가 있었는데, 부도탑이 물에 떠내려 건너와 이곳으로 왔다는 이야기가 전해오지만 역사적 근거는 없다.

영시암 가는 길은 법정 탐방로밖에 없으니 길을 잃을 염려가 전혀 없다. 두 번째 철제 다리 밑을 흐르는 계곡은 마등령에서 내려온 곰골 계곡이다. 예부터 설악산 반달가슴이 많이 살아 곰골이란 이름이 붙었다 한다. 곰골 계곡도 입산이 금지됐지만 종종 불법으로 오르는 등산객이 있다. 50만 원의 범칙금에 아랑곳 않고 불법을 저지르는 것. 일부 산악회가 등산객을 모으기 위해 일부러 불법 등산로를 코스에 넣어 홍보한다고 한다. 불법 등산로를 오르다 길을 잃거나 다치면 산악구조대가 구조하기도 힘든 만큼 법정 등산로를 꼭 지켜야 한다.

얼음골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곰골 계곡을 지나면 고개를 하나 넘는다. 오르막이 얕아 고개라 부르기도 어색할 정도. 고갯길 따라 줄지어 선 소나무는 대부분 100년 이상 됐다. 이곳 고지대 소나무는 곧게 자라는데 자잘한 관목을 제치고 올라가려는 습성 때문이다. 울창한 숲 속에는 박새, 곤들박이, 동고비 등이 산다. 산양도 가끔 눈에 띈다고 한다. 산이 깊다 보니 탐방객 사이에는 산짐승을 봤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전해진다. 혼자 사는 습성이 강한 고라니가 떼 지어 다니며 자신을 공격했다는 이야기를 하는 등산객이 있을 정도다.

고갯길을 빠져나오니 저 멀리 영시암이 모습을 드러냈다. 암자라 부르지만 규모는 사찰에 가깝다. 반가운 마음에 뛰다시피 영시암 초입의 짧은 나무다리를 건너니, 장세진 씨가 잠시 서보란다. 가만히 서 있으니 시원한 바람이 산속에서 불어온다. 얼음골 계곡에서 내려오는 바람이다. 한여름에도 이곳에 서 있으면 얼음골 계곡 바람에 추울 정도라고 한다. 정말 촉촉이 젖었던 티셔츠가 거짓말처럼 금세 말랐다.

영시암 주지인 도윤 스님을 만나 영시암의 역사를 들었다. 도윤 스님은 내설악에서만 40년 넘게 생활했는데, 백담사 주지로 있을 때는 오세암과 봉정암을 복원했고 1987년에 6·25 때 소실된 영시암을 복원한 뒤 주지 스님으로 지내고 있다. 영시암은 1689년 조선 숙종 때 삼연 김창흡 거사가 창건한 절이다. 삼연 거사는 아버지 영의정 김수항이 장희빈에 대적하다 사약을 받아 죽자 세상과 인연을 끊고 이곳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답답한 한숨과 시름일랑 설악산 품에서 풀고 가소

대청봉을 향해 오르는 등산객들이 영시암을 지난다.

도윤 스님은 “영시암(永矢庵)의 영시는 ‘시경’ 위풍의 영시고반에서 따왔다. 충분히 족하다, 여기보다 좋은 곳이 없다는 뜻이다. 삼연 거사가 전국을 돌아다녀도 여기만 한 곳이 없다며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고 말했다. 산속 암자에서 수행하는 스님은 ‘불덩이를 지니고 사는’ 도시인 기자에게 “벽극풍동 심극마침((壁隙風動 心隙魔侵·벽에 틈이 있으면 찬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구니가 든다)이니 마음을 잘 잡으라”고 당부했다.

영시암에서 탐방객에게 나눠주는 차를 마시며 스님의 말씀을 곱씹는다. 이곳을 찾은 도시인은 불덩이를 영시암에 두고 돌아내려가도 좋고 오세암, 봉정암, 멀리 대청봉을 향해 올라도 좋다. 하지만 산책 수준의 걷기 좋은 길은 여기까지다.

Basic info.

☞ 교통편

승용차 ① 서울→영동고속도로→현남IC(3시간 20분)→양양 방면→양양삼거리에서 오색 방향으로 이동(20분)→한계령을 경유해 민예단지삼거리에서 미시령 방향으로 진입(30분) → 백담사 갈림길에서 우회전→백담 주차장 주차(15분)→백담 매표소까지 도보 이동(10분)

② 서울→양평→홍천→인제→원통→민예단지삼거리에서 미시령 방향으로 진입(2시간 30분)→백담사 갈림길에서 우회전→백담 주차장 주차(15분)→백담 매표소까지 도보 이동(10분)

고속버스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속초 고속버스터미널(3시간 30분)→시내버스(7, 7-1)로 속초 시외버스터미널까지 이동(20분)→원통행 버스 이용 용대리 하차(30분)→백담 매표소까지 도보 이동(20분)

시외버스 동서울터미널→백담(용대리, 3시간)→백담 매표소까지 도보 이동(20분)

☞ 코스

백담 탐방안내소 ↔ 수렴동 계곡길 ↔ 영시암(반환), 왕복 약 9km

☞ 운영 일시

3월 1일~5월 15일, 11월 15일~12월 15일 산불조심 기간 통제, 일출 2시간 전부터 일몰 2시간 전까지 입산 가능.



주간동아 2010.07.12 745호 (p43~45)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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