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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 강원의 숲을 걷다⑦

인간의 때 묻지 않은 그곳 금강 소나무 7형제 산다네

구룡령 옛길

  •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인간의 때 묻지 않은 그곳 금강 소나무 7형제 산다네

인간의  때 묻지  않은 그곳 금강  소나무  7형제  산다네

구룡령 옛길은 울창한 숲이 하늘을 가려 한여름에 가도 무척 시원하다.

강원도 영동의 양양과 영서의 홍천을 연결하는 구룡령(九龍嶺) 옛길은 인간의 때가 묻지 않은, 인간이 만든 길이다. 옛날 양양 사람들은 동해안에서 잡은 오징어와 새우젓을 등에 지고 이 고갯길을 넘어 옥수수와 감자로 바꿔 왔다. 홍천 사람들도 이 길을 걸어가 산나물과 해산물을 바꿨다. 사람들은 가파른 한계령이나 미시령이 아닌, 굽이굽이 완만한 구룡령을 좋아했다. 그렇게 하루 100명 가까이 오가던 ‘고단한 길’을 사람들은 ‘바꾸미 길’이라고도 불렀다.

하루 100여 명 오가던 ‘바꾸미 길’

하지만 일제강점기 말 신작로가 생기고 1990년대에 이 길이 아스팔트로 포장되자, 이 자그마한 산길은 그토록 오래 사람들과 함께했음에도 기억에서 잊혔다. 한동안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산악인들만 찾았다고 한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일본에 이어 우리나라에서도 옛길 찾기 바람이 불자, 양양 갈천리 마을주민들이 수풀에 묻혀 있던 이 길을 찾아냈다. 구룡령 옛길은 2007년 정부로부터 ‘문화재 길’(명승 제29호)로 지정됐다. 3000년간 인간이 만들어왔지만, 최근 50여 년간 인간의 때가 묻지 않은 이 길은 울울창창한 숲을 오롯이 담고 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6월 28일 처음 가본 구룡령 옛길엔 나무와 바람, 그리고 새와 곤충이 속삭이는 소리만 가득했다. 2시간 30분여 걷는 내내 그 어떤 사람도, 소음도 접할 수 없었다.

시원하게 뚫린 서울춘천고속도로를 타고 30여 분 달린 뒤 고불고불한 국도로 들어섰다. ‘9마리 용이 지나간 흔적’이라는 뜻의 구룡령은 가는 길도 굽이졌다. 56번 국도를 쭉 따라가면 구룡령 정상이 보이는데, 이곳이 구룡령 옛길로 가는 출발점이다. 산 아래서 정상으로 올라가기도 하지만, 보통은 내려가는 길을 택한다. 국도 왼쪽에 있는 등산로를 따라 나무 계단을 한참 올라가니 백두대간 능선이 나왔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걸으니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갈천리 주민이자 숲해설가인 정선지 씨는 “여긴 산악인들이 걷는 백두대간”이라며 “조금만 더 가면 구룡령 옛길이 나오는데, 여기보다 훨씬 완만해 쉽게 걸을 수 있다”고 기자를 안심시켰다. 그러자 ‘이제 어디 가서 백두대간 걸어봤다고 자랑할 수 있겠다’ 싶어 괜스레 마음이 뿌듯했다.

그렇게 30여 분을 걷자 백두대간에서 구룡령 옛길로 접어드는 ‘구룡령 옛길 정상’이 나타났다. 여기는 과거 무거운 짐을 진 양양과 홍천의 아버지들이 쉬어 가던 곳이었다. 비록 규모는 작지만 물물교환을 하는 장터도 열렸는데, 지금은 무척이나 호젓했다. 사거리의 방향을 알려주는 이정표는 각각 갈전곡봉, 양양, 명개리, 구룡령으로 가는 길을 안내했다. 문화재 길로 지정된 구룡령 옛길을 걸으려면 양양 방향으로 가야 한다.



600여 종 다양한 나무에 여유가 저절로

인간의  때 묻지  않은 그곳 금강  소나무  7형제  산다네

1 구룡령 옛길의 첫 번째 휴식처인 ‘횟돌반쟁이’. 2 1989년 경복궁 복원 당시 베어 간 금강소나무의 밑동.

정씨의 말처럼 갈천리로 내려가는 길은 완만했다. 밖에서 보면 험준한 산지지만, 굽이굽이 돌면서 부드럽게 이어진 길은 발품을 더 팔더라도 힘은 덜 들게 했다. 옛날엔 말이나 당나귀는 물론, 새색시가 탄 가마도 다녔다고 한다. 같은 고도의 등산로에서는 느낄 수 없는 여유가 길에 절로 묻어났다. 특히 땅이 폭신폭신해 발에 전혀 무리가 가지 않았다. 봉우리 밑에 가랑잎이 모여 자연스럽게 쌓인 결과라고 한다. 숲이 전혀 훼손되지 않은 것도 인상적이었다. 빽빽이 들어선 나무가 하늘을 가릴 정도였고, 그래서인지 더운 날씨에도 숲길은 무척 시원했다. 수종은 600여 종으로 다양했다. 정상에서부터 활엽수림이 펼쳐지는데, 길을 걷는 내내 굴참나무, 상수리나무, 떡갈나무, 신갈나무, 졸참나무, 피나무 등이 차례로 ‘말간’ 얼굴을 드러냈다.

구룡령 옛길을 걸으면 3개의 반쟁이를 만난다. 반쟁이는 거리의 반을 뜻하는 반정(半程)의 강원도 사투리. 하지만 요즘은 ‘걷다가 쉬어 가는 곳’으로 뜻이 바뀌었다. 정상에서 내려오면서 처음 만난 ‘횟돌반쟁이’에는 커다란 횟돌(석회암)이 계단처럼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관을 묻을 때 횟돌을 갈아 뿌려놓으면 나무뿌리가 관을 뚫지 못한다고 한다.

조금 더 내려오면 솔반쟁이가 나타난다. 정상에서 이곳까지 활엽수림을 만끽했다면, 여기부터는 소나무 숲을 볼 수 있다. 특히 구룡령 옛길은 금강소나무가 좋기로 유명하다. 정씨는 “2000년 초반 정부가 경복궁을 복원한다며 몰래 300~400년 된 금강소나무를 40여 그루나 베어 갔다”며 아쉬워했다. 실제로 길을 걷다가 몸통이 잘린 채 굵은 밑동만 남은 소나무를 여러 그루 볼 수 있었다.

길을 따라가면 이번엔 묘반쟁이가 나온다. 왼쪽으로 조금 걸어가니 비석 없는 무덤이 하나 있는데, 여기엔 가슴 아픈 이야기가 전해온다. 조선시대에 양양과 홍천의 경계가 불분명해 두 고을의 수령이 각자 출발해서 만나는 지점을 지역 경계로 삼기로 약속했다고 한다. 그런데 양양 수령이 나이가 많아 젊은 노비가 수령을 업고 현재 홍천군 내면 명개리까지 달려갔고 노비는 큰 공로를 세웠지만, 돌아오는 길에 지쳐서 죽고 말았다는 것. 그리고 이를 딱하게 여긴 수령이 노비의 무덤을 만들어줬다는 이야기다.

구룡령 옛길엔 철을 캐던 흔적도 있다. 묘반쟁이 인근에 ‘옛날 삭도’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일제강점기에 전쟁물자 공급을 위해 이곳에서 철광석을 캤는데, 이를 운반하던 케이블선이 바로 삭도다. 이곳에서 당시 홍천과 양양 지역의 젊은이가 많이 죽고 다쳤다고 한다. 일제가 철광석을 캐기 위해 이 지역 젊은이들을 동원했기 때문이다. 철광석 채광은 1970년대까지 이어졌고 그때까진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이 많았으나, 이젠 슬픈 역사를 안은 삭도만 홀로 남아 있다.

인간의  때 묻지  않은 그곳 금강  소나무  7형제  산다네

1 구룡령 옛길을 내려온 후 계곡에 발을 담그면 모든 피로가 싹 가신다. 물이 무척이나 맑고 깨끗하다. 2 구룡령 옛길엔 ‘사랑나무’라 불리는 ‘연리지(連理枝·뿌리가 다른 나뭇가지가 서로 엉켜 마치 한 나무처럼 자라는 현상)’가 많이 보인다.

길 중간마다 쓰러진 고목들 정취 더해

이처럼 옛길의 원형과 정취를 그대로 담고 있는 구룡령 옛길. 하지만 기자가 보기엔 이 길의 하이라이트는 지금부터 시작된다. 옛날 삭도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의 금강소나무가 길 양옆을 꽉 메우고 있다. 입이 떡 벌어질 정도다. 특히 거대하고 우람한 금강소나무 7그루가 눈에 띄는데, 몸통은 성인 2명이 양팔을 벌려 안아야 닿을 정도로 굵다. 하늘로 높게 뻗은 가지 역시 그 하나하나가 웬만한 나무의 몸통만 하다. 사방으로 펼쳐진 푸른 나뭇잎들이 태양과 하늘을 여지없이 가려버렸다.

정씨는 “이 나무들은 구룡령 옛길을 지키는 금강소나무 7형제라고 불린다”며 “많은 양의 수분이 몸통을 타고 올라가고, 이를 통해 엄청난 산소를 뿜어낸다. 경복궁 복원 때 이 나무들마저 베어 가지 않아 정말 다행이다. 인간들은 나무의 고마움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길 중간마다 비바람에 쓰러진 고목도 꽤 눈에 띄었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쓰러진 나무를 일부러 치우지 않는다. 옛날에도 그랬듯 숲이 알아서 고목을 품을 거라 믿기 때문이다.

고개를 뒤로 젖힌 채 기품 있는 금강소나무를 보면서 내려오면 어느덧 계곡물 흐르는 소리가 상쾌하게 들려온다. 그렇게 구룡령 옛길은 끝이 난다. 맑고 차가운 물이 흐르는 계곡에 발을 담그자 2시간 30분여 걸은 피로가 확 풀렸다.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몸과 마음이 모두 맑아진 기분이다.

인간의  때 묻지  않은 그곳 금강  소나무  7형제  산다네
Basic info.

☞ 교통편과 구간

서울춘천고속도로 동홍천IC→홍천·구성포 방면 좌회전, 44번 국도→구성포 교차로에서 춘천·서석 방면 우회전, 56번 국도→구룡령 정상(이곳에서 차를 세워둠)→왼쪽 등산로 따라 올라가면 구룡령 옛길 정상, 여기서부터 강원도 양양군 갈천마을까지의 2.6km 길이 ‘구룡령 옛길’. 갈천리에서 구룡령 옛길 정상으로 올라갈 수도 있지만, 대부분 내려가는 길을 택한다. 보통 2시간 30분 걸린다.

☞ 코스

구룡령 정상→백두대간→구룡령 옛길 정상→횟돌반쟁이→솔반쟁이→묘반쟁이→금강소나무→계곡→갈천마을

>>>구룡령 옛길 정상에서 홍천 내면 명개리 쪽으로 내려가도 된다. 최근에 다듬어진 이 길은 3.7km 거리로 계곡이 쭉 이어지고, 야생화가 많은 게 특색. 갈천리로 내려오는 길보다 조금 더 험하다. 또는 명개리에서 시작해 구룡령 옛길 정상까지 오른 뒤 다시 갈천리로 내려올 수도 있다. 5~6시간 걸리는데, 체력이 좋거나 등산을 즐긴다면 해볼 만하다.



주간동아 2010.07.12 745호 (p40~42)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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