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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 강원의 숲을 걷다⑥

굽이굽이 흘러온 사연 나그네 발자국에 묻어나고…

대관령 옛길

  •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굽이굽이 흘러온 사연 나그네 발자국에 묻어나고…

굽이굽이 흘러온 사연 나그네 발자국에 묻어나고…

반정 가는 길. 이국적인 풍경으로 대관령 옛길 걷기가 시작된다.

“늙으신 어머니를 강릉에 두고, 외로이 서울로 떠나는 이 마음. 때때로 고개 돌려 북쪽 바라보니, 흰 구름 아래로 저녁산이 푸르구나.”

서른여덟 신사임당은 20년 넘게 살던 강릉을 뒤로한 채 어린 율곡의 손을 잡고 한양으로 떠났다. 굽이굽이 대관령을 걷다 저 아래를 내려다보니 어머니 계신 친정은 구름 사이로 잡히지 않았다. ‘언제 다시 이 험한 고개를 넘어 어머니를 뵈러 올까….’ 안타까움에 읊조린 노래가 바로 이 ‘유대관령망친정(踰大關嶺望親庭)’이다. 그 말고도 수많은 사람이 이 험한 고개를 오르며 한숨 쉬고 눈물지었던 아흔아홉 굽이. 알알이 박힌 그들의 이야기를 찾아 대관령 옛길을 걸었다.

한양~강릉 이어준 천년의 길

강릉시와 평창군 사이에 있는 대관령은 영동과 영서를 잇는 길로 총길이가 약 13km다. 천년 동안 강릉과 한양을 통하게 한 고마운 길로 데굴데굴 굴러 넘어간다고 ‘데굴령’이라 불렀다. 옛 사람들은 짚신 신고 괴나리봇짐을 메고 걷고 또 걸어 한양으로 갔다. 율곡은 한양에 과거 보러 가며 곶감 100개를 챙겼는데 대관령 굽이를 넘을 때마다 하나씩 빼먹었더니 길이 끝날 때 곶감이 고작 하나 남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흔아홉 굽이란 별칭이 따라붙었다. 이제는 과거 보러 가는 선비도, 소금장수도, 그들을 털어먹으려는 도적도 없지만 솔향과 나무그늘 덕에 걷기 좋은 옛길로 남아 여전히 사람들의 발길을 부른다. 대관령 옛길은 천천히 걸으면 6시간 코스. 양떼목장 옆길과 국사성황사, 반정, 주막터를 거쳐 대관령박물관까지 이어진다. 산에서 바다로 내려가는 길이라 험하지는 않지만 방금 지나간 소나기 때문인지 내리막길이 미끄러웠다.

길은 구(舊)영동고속도로 대관령휴게소에서 시작한다. 해발 800m 고지대라 손끝에 한기가 스친다. 대관령의 명물, 풍력발전기를 뒤로하고 길을 떠나 휴게소를 바라본 채로 오른쪽 길로 걸으면 대관령 국사성황사 이정표를 볼 수 있다. 국사성황사는 강릉수호신 범일국사와 대관령산신 김유신을 모신 사당이다. 범일국사는 신라 말 강릉 출신 고승으로, 죽어서 강릉수호신이 됐다. 번갈아 나오는 흙길과 포장길을 걷다 보면 등산로 입구가 있다. 비교적 언덕길이 많아 힘에 부칠 수 있지만 주변에 핀 야생화와 키 작은 나무를 벗 삼아 걷다 보면 금방 KT 중계소 철탑에 닿는다.



KT 중계소를 지나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이 중 등산길로 오르면 새파란 풀밭과 풍력발전기가 만들어내는 이국적인 풍경을 만날 수 있다. 바로 선자령이다. 대관령 옛길을 가기 위해서는 오른쪽 길로 가야 한다. 1.7km 정도 가다 보면 456번 지방도로가 나오고 ‘대관령 옛길’이라는 커다란 돌표지가 있는 반정을 만난다. 예전에 나그네들이 쉬어 가던 주막터가 있는 곳으로 시에서 화장실, 조경 시설 등을 마련해뒀다. 망원경으로 먼 데를 바라봤다. 날이 좋으면 강릉 시내와 동해가 한눈에 보인다는데 금방 그친 비 때문인지 눈의 호사는 즐길 수 없었다. 대신 안개와 산줄기가 만들어낸 또 다른 절경이 가슴을 벅차게 했다. 이곳에서 본격적인 대관령 옛길 걷기가 시작된다. 아예 이 지점부터 길 걷기를 시작하고 싶은 사람은 강릉시에서 주말에 운행하는 시내버스를 이용하면 좋다. 상행선은 강릉 시내에서 오전 8시35분에 출발한다. 그 차를 타고 반정에 올라와 길을 걷고 대관령박물관에 간 후 오후 3시30분 버스를 타고 강릉 시내로 가면 좋다.

하제민원, 원울이재 재미난 이야기들

굽이굽이 흘러온 사연 나그네 발자국에 묻어나고…

구불구불한 길을 데굴데굴 굴러갔다 해서 대관령이라 불린다.

초입부터 녹음이 짙다. 구불구불한 길은 시원하고 아늑하다. 새파란 금강소나무가 울창하다. 대관령 일대에는 14만 그루의 붉은 금강소나무가 있다. 수백 년 된 늙은 소나무도 많다. 소나무의 고고한 자태를 감상하는 것도 좋지만 길에 얽힌 이야기를 찾는 것도 이 길의 재미다. 길 나선 지 얼마 안 돼 비석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는데 순조 24년(1824) 대관령 인근 어흘리에 살던 향리 이병화를 기리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추운 겨울 대관령을 건너는 가난한 나그네들을 위해 주막을 짓고 침식을 제공했는데, 그 이전에는 겨울에 대관령 길을 걷다 죽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고마운 마음은 시 한 수에 담겨 지금껏 내려온다.

“오가는 길손은 쉼터를 얻었고, 기거하는 사람은 오두막집이 생겼네. 조각돌에 그 행실 새겨, 오래도록 자랑스러움 기리도록 하였네.”

갑자기 쌩쌩 낯선 차 소리에 귀가 먹먹해졌다. 높이 올라가 내려다보니 신(新)영동고속도로가 한눈에 보였다. 기존의 구불구불한 길 대신 2001년 개통해 서울과 강원도를 더 가까이 이었다. 조금 더 길을 걸으면 김홍도의 그림 ‘대관령도’ 한 폭이 손짓한다. 김홍도가 44세이던 1788년 가을, 정조의 어명으로 금강산 및 관동 팔경 지역을 사생 여행하던 때 이곳 풍경에 반해 그린 그림이다. 고갯마루에서 강릉을 조감하며 대관령을 그린 이 그림에서 대관령은 굽이굽이 흘러가다 하늘과 맞닿아 사라진다.

길을 이어 1시간 정도 걸으면 나그네들이 목을 축이고 더운 땀을 식혔을 어흘리 계곡에 닿고 곧 옛날 주막터가 나온다. 몇백 년 전만 해도 한양 가는 나그네들이 묵느라 북적북적했을 초가집이 텅 빈 채 외로이 서 있다. 이 길은 본래 한두 명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았으나 1511년 1월 조선 중종 때 강원도 관찰사 고형산이 널찍하게 닦아 지금의 모습이 됐다. 하지만 워낙 으슥한 곳에 자리한 탓에 산적이 종종 출몰하기도 했다. 이곳의 옛 지명인 ‘하제민원(下濟民院)’도 서로 도와 길을 갈 사람이 여럿 모일 때까지 기다리던 주막(院)이 이곳에 있던 데서 비롯됐다. 오르막을 가면 ‘원울이재’에 닿는데 조선시대 강릉지역 원님은 이 고개를 넘으며 두 번 운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부임 때는 한양에서 너무 멀어서 울고, 떠날 때는 정든 백성을 두고 가려니 정 때문에 운다는 것이다. 재미난 이야기에 웃음꽃 피우며 물길 옆으로 구불구불 걸으면 흙길이 끝나고 어흘리 식당가에 닿는다. 외계인들도 대관령의 풍경에 반해 이곳에 하차했다는 재미난 상상력을 발휘한 ‘우주선 화장실’을 지나 1km 더 걸으면 대관령박물관. 걷는 내내 주위를 감싸던 금강소나무들이 멀찍이서 인사를 한다.

굽이굽이 흘러온 사연 나그네 발자국에 묻어나고…
Basic info.

☞ 가는 길

승용차 영동고속도로 횡계IC→용평리조트·횡계 쪽으로 10km→(구)대관령휴게소

대중교통 횡계터미널에서 택시를 이용(1만 원 내외)하거나 강릉시 시내버스(주말만) 상행선 08:35, 하행선 09:45, 15:30(강릉 시내~대관령박물관~반정~대관령휴게소) 이용

☞ 참고

강원도 바우길(www.baugil. org)



주간동아 2010.07.12 745호 (p38~39)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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