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41

2010.06.14

섹시한 연애담, 발칙한 도발

김대우 감독의 ‘방자전’

  • 심영섭 영화평론가·대구사이버대 교수 chinablue9@hanmail.net

    입력2010-06-14 15: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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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섹시한 연애담, 발칙한 도발

    ‘방자전’은 방자의 시각에서 ‘춘향전’을 재해석했다.

    이야기꾼이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원본은 ‘춘향전’이지만, 김대우 감독은 ‘방자’하게도 그것을 이몽룡의 몸종인 ‘방자전’의 이야기로 비틀고 눙친다. 춘향은 팜므파탈에 가깝고, 몽룡은 영혼을 판 출세주의자다. 묵직한 ‘춘향전’의 판소리 버전이 저잣거리의 ‘재담’으로 바뀌었는데도, 감독은 이 이야기를 다 믿게 만든다. 게다가 야하단다. 그 낚싯밥 하나로 일주일 새 100만 관객이 덥석 ‘방자전’을 물었다.

    ‘야하다’는 입소문이 산불 타듯 온 동네에 번졌지만, 솔직히 ‘방자전’은 소문만큼 야하진 않다. ‘방자전’이 야하다면 ‘쌍화점’은 포르노요, ‘하녀’는 에로 비디오일 것이다. 이 영화의 ‘야함’은 직설적 야함이라기보다 상황이, 그 상황의 여백이 주는 대사의 행간에서 은근히 드러나 더 끌리는 야함이다. 춘향은 ‘은꼴편(은근히 꼴리는 편지)’에서 날이 너무 더워 ‘모시 적삼’만 입고 몽룡을 기다리겠노라고 써 보낸다. 몽룡은 침을 꼴깍 하고 달려가지만, 막상 춘향은 고운 평상복으로 그를 맞는다. 은꼴편은 바로 김 감독이 관객에게 보내는 ‘시네루(공에 회전을 넣는다는 뜻의 당구 용어)’를 상징하는 것 아닌가.

    이게 바로 김 감독이 ‘정사’ ‘음란서생’ 때부터 견인하려는 인간 내면 속 욕망의 실체다. 인간은 유혹받고 싶어 하고, 알면서도 넘어가고, 싫다면서도 살포시 안긴단다. 감독은 시나리오를 썼던 ‘정사’에서 ‘음란서생’을 거쳐 ‘방자전’까지 영화의 초반부와 중반부엔 게임으로서의 사랑을 배치하고(‘정사’의 첫 정사신 배경이 오락실이었음을 기억하라), 스캔들로서의 연애담을 다룬다. 그러나 이야기가 점입가경이 되면 막판에 그 모든 게임을 뒤엎고 기어이 순정 미담의 세계에 안착한다. ‘알고 보니 사랑이라 카더라’는 김 감독이 관객들에게 보내는 영원한 정언명령에 가깝다.

    그럼에도 관객들이 이 클리셰를 그때마다 즐기는 것은 김 감독이 관객에게 건네는 화술이 너무도 기가 막히고, 감정적 소재가 다종다기하기 때문이다. ‘방자전’ 역시 그가 시나리오를 썼던 ‘스캔들’처럼 춘향의 관능 외에도 유머, 능청, 풍자, 순정, 슬픔, 전복, 현실 비판을 골고루 버무려놓았다. ‘방자전’에는 여자 후리는 기술부터 시작해 사시 통과하고 사귀던 여자를 차버리는 비열한 현실, 즉 성과 자본의 물물교환에 대한 비판적 시선까지 망라돼 있다. 이 감독이 얼마나 대단한 이야기꾼인지는 연애라는 단 한 가지 소재를 가지고 때론 중중모리장단의 실연담으로 가다 여자 2만 명과 잤다는 침소봉대된 무림고수의 무협물로 늘리는 솜씨만 봐도 알 수 있다.

    캐릭터에 공을 들였지만 막상 이야기의 재미를 배가하는 축은 춘향전의 네 주인공이 아니라 조연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툭 치기 기술’(뭔지는 영화에서 확인하시라), ‘뒤에서 보기’ 등 ‘작업의 고수’ 마 노인으로 분한 오달수의 능청스러운 유머 연기, 대단하다. 약간은 변태적이고 가학·피학적인 변학도를 연기하는 신인 배우 송새벽의 의뭉한 표정은 가히 압권이라 할 수 있다. 이 영화에서 송새벽의 발견은 그 옛날 ‘넘버3’의 송강호의 출현을 떠올리게 한다.



    결국 몽룡이 춘향을 선택한 것도 조정에 알릴 ‘미담’을 만들고 싶었던 까닭이고, 방자가 영화 첫 장면 저잣거리의 대필작가를 찾아가 회고담을 털어놓는 것도 춘향에게 주고픈 ‘이야기’ 선물 때문이었다. 범람하는 이미지의 시대. 오히려 아직도 스토리텔링에 매혹되는 감독이 충무로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고마울 뿐. ‘방자전’은 발칙한 도발이 통쾌하고 귀동냥의 잔재미가 쏠쏠하다. 울다 웃다 하며 손오공 손바닥에서 놀아나더라도 그 재미가 이만하다면, 기꺼이 김 감독의 다음 이야기에도 홀리고 싶다. 아니, 홀려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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