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38

2010.05.24

우린 다 그렇고 그런 속물 아닌가

홍상수 감독의 ‘하하하’

  • 강유정 영화평론가·국문학 박사 noxkang@hanmail.net

    입력2010-05-24 16: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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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린 다 그렇고 그런 속물 아닌가

    ‘하하하’는 삶의 통속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속물과 ‘안’ 속물의 차이는 뭘까? 영화 속에서 불륜녀를 하나씩 옆자리에 두고 두 남자가 이 주제에 대해 설전을 벌인다. “저 거지의 옷을 벗기고 나면, 그래도 저 사람이 거지일까?” “너, 그렇게 인생 복잡하게 살지 마. 넌 꼭 뭔가를 남다르게 보면서 지나치게 예민하게 굴려고 하더라. 세상의 어둡고 슬픈 것에서 모든 고통이 나오는 거야. 그러니까 밝은 것만 봐.” 이야기를 듣던 반대편 남자, 시인은 발끈해서 소리친다. “형, 그렇게 남들 보는 대로 보고 살려고 하는 거. 그게 바로 속물이야, 알아?”

    홍상수 영화 ‘하하하’는 분명 그의 이전 작품들보다 가볍고 부드러우며 친절하다. 가벼움은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홍상수의 영화에는 늘 애인과 함께 보기에는 너무도 창피한 부분이 있다. 하룻밤 자고 싶어서 말도 안 되는 형이상학을 늘어놓는 남자나 괜히 고상한 척 내숭 떠는 여자를 보노라면 내 속에 꾸깃꾸깃 접어뒀던 저열함이 떠오르는 것 같아 부끄럽고 숨고 싶어진다.

    게다가 홍상수는 이 부끄러움을 끄집어내 놓고는 ‘당신이나 나나 다 그렇고 그런 속물 아니요?’라고 곧잘 질문을 해댄다. 그래서 부끄러울 뿐 아니라 불편하기도 하다. 섹스를 하면서 치사하게 나 잘하냐며 묻는 남자나, 섹스를 하고 나니 갑자기 사랑한다고 말하는 여자나 유치하고 부끄럽긴 마찬가지다. 이렇게 홍상수의 영화에서는 우리가 나름 고귀한 예절이나 도덕으로 은폐해뒀던 누추한 욕망이 그 껍질을 벗고 등장한다. 홍상수 영화의 매력은 바로 이 신랄함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이번 영화 ‘하하하’는 좀 다르다. 물론 주인공 남자들이 벌이는 연애행각이 우습고 누추하기는 마찬가지다. 차이점은 이런 연애를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에 있다. 통영에 여행을 다녀온 두 남자는 각각 자신의 경험담을 안주 삼아 술잔을 기울인다. 종아리가 예뻤던 여자, 목선이 고왔던 여자 이야기를 건네는 사이 탁주는 줄어간다. 그런데 관객들만 진실을 알고 있다. 사실 그 두 사람은 통영에서 같은 사람들을 시간차를 두고 만났을 뿐이라는 것을.

    영화감독 지망생 문경(김상경 분)은 통영에서 왕성옥(문소리 분)이라는 여자에게 반해 줄곧 그녀를 쫓아다닌다. 문제는 성옥에게 난봉꾼 애인이 있다는 점이다. 문경은 성옥에게 이 젊은 애인의 오입을 고자질하고, 그와 헤어지게 한다. 한편 중식(유준상 분)은 스튜어디스 애인과 함께 시인 후배를 만날 겸 통영에 내려간다. 불륜이라는 점 때문에 항시 불안하지만 불안이야말로 강한 아드레날린 자극제이기도 하다.



    성옥은 바람피운 남자친구를 욕하기는커녕 업어주겠다며 억지를 부린다. 문경에게는 이 모습조차 퍽 사랑스럽다. 두 사람은 연인이 되지만, 성옥이 전 애인과 함께 드나들던 복집 사장이 문경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알고는 헤어짐을 선택한다. 흥미로운 것은 유부남 중식이 불륜녀를 데리고 큰아버지를 찾아가 결혼하게 해달라고 떼를 쓴다는 사실. 이 사건을 계기로 중식은 애인에게 사랑을 간증하고, 애인은 뿌듯한 마음으로 통영을 떠난다. 사실 이게 무슨 간증이고 확인이겠냐마는 말이다.

    기존의 홍상수 영화가 똑같은 것을 다르게 봐서 그 슬픔 속에서 고통을 이끌어내는 것이었다면 이번 영화는 남들이 보는 대로 보는 훈련을 하는 작품이다. 중식은 불륜 가운데서도 행복을 느끼고, 문경은 며칠간의 연애를 자양분 삼아 살아갈 힘을 얻는다. 불륜이나 연애, 사랑에 대한 홍상수의 ‘다른 눈’은 즐거운 것만을 보라는 절대명언 속에서 희석된다. 물론 남들 보는 대로 보고 사는 것이야말로 세상이 말하는 통속적 즐거움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가끔은 말이다. 삐딱하거나 어둡게 볼 수 있어야 속물 같은 삶에 햇빛이 드는 것이 아닐까? 사람은 못 돼도 괴물은 되지 말아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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