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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유해진에게 열광 도대체 왜?

김혜수와 교제, 1등주의 반감과 ‘루저 감성’으로 해석과 평가

  •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mansuri@osen.co.kr

유해진에게 열광 도대체 왜?

유해진에게 열광 도대체 왜?

김혜수·유해진 커플의 열애 소식이 알려지자 누리꾼들은 “내면을 볼 줄 아는 ‘에지녀’와 알고 보면 멋진 ‘루저남’의 만남”이라며 응원했다.

김혜수와 유해진, 두 사람이 2년째 사귀고 있는 커플임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영화 ‘신라의 달밤’과 ‘타짜’에 함께 출연하며 알게 돼 2008년 동료에서 연인으로 발전했다고 한다. 연예인이라고는 하지만 남녀가 만나 연인이 된 것에 왜 그리들 호들갑일까? 2010년 한국 사회는 김혜수·유해진 커플에게 이상하리만큼 열중하고 있다.

그 이유로 먼저 이들의 이미지와 스타일이 극과 극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송혜교와 현빈, 고소영과 장동건 같은 선남선녀가 커플 선언을 하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다. 그들의 만남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반면, 김혜수와 유해진의 만남은 이미지의 충돌처럼 범상치 않다.

김혜수는 지난해 드라마 ‘스타일’을 통해 ‘에지녀’로 등극했다. 늘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던 그는 드라마에서 “에지 있게!”를 연발하며 직장여성의 새로운 역할 모델을 제시했다.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서 고개를 꼿꼿이 들고 스타일을 자존심처럼 지키며 난관을 헤쳐나가는 카리스마는 그에게 잘 어울리는 옷이었다.

‘에지녀’와 ‘초랭이’의 만남?

그렇다면 유해진은 어떨까. 최근작인 영화 ‘전우치’에서 잘 드러난다. 유해진은 주인공 전우치(강동원 분)를 따라다니는 초랭이로 나온다. 사실 초랭이는 개의 분신이다. 그것도 암컷. 유해진의 수식어로 따라붙는 ‘명품 조연’은 그의 이미지를 가장 적절히 드러낸 표현일 것이다. 영화 ‘왕의 남자’의 육갑이나 ‘타짜’의 고광렬 또한 마치 그를 위한 캐릭터처럼 느껴졌다. 그만큼 딱 맞는 옷이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입방아를 즐기는 이들은 두 사람을 가리켜 주연과 조연의 만남, 당당함과 찌질함의 결합, 위너와 루저의 조합, 심지어 ‘미녀와 야수’ 커플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이는 드라마나 영화 속 캐릭터에 의해 만들어진 환상일 뿐 실제와는 거리가 멀다. 미의 기준은 저마다 다르다. 매력에 대한 기준도 그렇다. 그저 서로에게 이끌려 만나는 두 사람을 두고 외부에서 자신들의 기준에 맞춰 각종 의미를 투사할 뿐이다.

이들의 커플 선언은 상식을 벗어난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이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우리 사회에서 비정상적인 징후가 포착된다. 거기에 깔려 있는 것은 이른바 ‘루저 감성’이다. 장기 불황과 실업문제에서 비롯된 자괴감이 낳은 ‘루저 감성’. 누군가 “당신은 루저”라고 말할 때 패배자의 의미를 넘어 더 분노하게 되고, 반대로 낮은 자들의 성공에 더 응원을 보내는 그 감성 말이다. 김혜수·유해진 커플에게 열광하고 지지하는 분위기에서는 이런 징후가 나타난다.

일상의 팍팍함이 만든 ‘유해진 신드롬’

이는 선남선녀 커플에게 쏟아지는 질시와도 관련이 있다. 보통 사람들이 넘지 못하는 그들만의 세상과 장삼이사끼리 지지고 볶는 우리의 세상. 이 둘을 가르는 공고한 시스템이 질시의 실체다. 루저와 위너를 가르는 두툼한 벽은 구성원들에게 대답을 강요한다.

당신은 루저인가, 위너인가. 여기서 주목할 것은 루저와 위너의 구분에 실력, 지위뿐 아니라 외모 역시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미지나 인지도도 있지만, 김혜수·유해진 커플의 근본적인 비교점은 외모다. 이는 현 사회 구성원이 삶 전반에서 외모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에둘러 보여준다.

더 재미있는 사실은 대중은 외모 지상주의라는 시스템이 요구하는 조건을 인정하는 동시에 반감을 표한다는 것이다. 이들의 열애 소식에 대중은 유해진의 매력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가 얼마나 유머감각이 뛰어나고 지적인 인물인지를 입증해줄 이야기가 쏟아진다. 아마도 사실일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외모가 아닌 다른 매력을 찾아내려는 분석 뒤에 대중의 욕망이 숨어 있다는 점이다. 즉 유해진의 ‘성공’과 김혜수의 ‘소신’을 외모 지상주의 시스템의 한 부분을 무너뜨린 징후로 여기고 사람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정작 김혜수와 유해진은 왜 사회가 자신들의 사랑을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받아들이는지 의아할 것이다. 대중은 스타에게 자신들의 소망과 욕망을 투사한다. 자연스러운 별들의 만남을 자신들만의 별자리라는 의미망으로 엮는 것이다. 이런 작업에는 슬프게도 현실의 팍팍함이 그대로 묻어난다. 루저 감성과 공고한 시스템의 바탕 위에서 이들의 평범한 만남은 심지어 희망으로까지 불리게 됐다. 언제쯤 이런 일에 담담한 사회가 올까.



주간동아 2010.01.26 721호 (p62~63)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mansur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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