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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익의 오래된 밥상

순하고 다소곳한 국물, 속풀이에 딱!

서울 신촌 풍년식당 콩나물국밥

  •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 blog.naver.com/foodi2

순하고 다소곳한 국물, 속풀이에 딱!

순하고 다소곳한 국물, 속풀이에 딱!

속풀이에 좋은 풍년식당의 담백하고 맑은 콩나물국밥.

콩나물국밥은 전주식이 외식업계에서 최강자다. 신 김치에 쇠고기조림, 새우젓으로 양념한 다소 칼칼한 전주식이 프랜차이즈 식당으로 크게 번져 전국에 다 이 같은 스타일만 있는 줄 착각하게 생겼다. 그러나 경상도에는 고추기름 내고 콩나물, 무, 쇠고기 등을 넣어 육개장 비슷하게 끓이는 콩나물국밥이 있으며, 전남 해안 도시에는 새우, 조개 등을 넣은 것도 있다.

콩나물로 국을 조리하고 밥을 더하는 방식은, 지금까지 내 경험을 되살리면, 그 변용이 수만 가지에 달한다. 예를 들면 멸치육수에 콩나물과 파, 마늘만 있어도 되고, 여기에 김치를 넣을 수도 있다. 또 오징어를 추가하거나 북어 채를 빠뜨릴 수도 있으며, 선지를 넣기도 한다. 심지어 된장이나 고추장을 풀어도 맛이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다종다양한 콩나물국밥의 탄생은 술 마시는 데 세계 1위를 달리는 한국 남정네들을 위해 전국 여인네들이 각각의 손맛으로 개발한 결과라고 봐야 옳을 것이다.

서울 양반의 멋지고 근사한 입맛

서울 신촌의 풍년식당은 별스럽게 하얀 콩나물국밥을 낸다. 식당 주인은 서울식 콩나물국밥이라고 말한다. 서울 사람들이 예부터 깔끔한 성격의 ‘서울 양반’답게 거친 양념 다 버리고 담백한 콩나물국밥을 즐겼다는 것. 거친 바닷가 출신인 내게는 그럴듯해 보이며, 심지어 ‘멋지고 근사해’ 보이기까지 한다.

신촌 현대백화점에서 신촌역 쪽으로 이어지는 길(명물거리)에 들어서면 서울의 외식 지형도를 한눈에 읽을 수 있다. 2000년대 들어 유행하기 시작한 일본식 선술집, 심플한 이탈리안 레스토랑, 아메리칸 스타일의 차이니즈 레스토랑, 젊은 감각의 설렁탕집과 삼겹살 구이집 등 온갖 음식점이 다 있다. 이 트렌디한 외식타운 한 귀퉁이에서 ‘서울 양반의 멋지고 근사한 콩나물국밥’을 파는 풍년식당은 음식의 격과는 어울리지 않게 허름한 간판을 달고 있다. 식당도 너무 서민적인 모습이다. 그러고 보면 콩나물국밥이 ‘서울 양반’의 커다란 기와집에서 팔리는 게 더 어색할 수도 있겠다.



풍년식당의 콩나물국밥은 콩나물과 밥, 날달걀 1개 외에는 아무것도 들어가 있지 않다. 아무 음식에나 갖다 붙이는 ‘담백하다’는 표현을 이 음식에만 써야 한다고 주장해도 될 만큼 담백하다. 콩나물은 아삭아삭 입안에서 기분 좋게 씹히고 콩나물을 삶았을 때 나는 다소곳한 단맛이 잘 살아 있다. 국물은 아주 옅어 어떤 육수를 내는지 감을 잡기 어렵다. 주인은 이 국물이 ‘노하우’라며 재료를 밝히지 않는다. 밥에서 나는 전분 냄새까지 느낄 수 있을 정도의 국물이니 마늘을 조금 넣은 콩나물 삶은 국물만으로 이 맛이 날 듯도 하다. 반찬은 열무김치에 멸치볶음, 검정콩조림, 어묵조림 정도다. 뛰어난 맛이라기보다는 순하고 정갈한 맛이라 할 수 있겠다.

풍년식당의 활용도는 ‘해장’이다. 명물거리의 온갖 술집에서 1, 2차를 마친 뒤 개운하면서 맑은 이 콩나물국밥으로 속풀이하는 즐거움이 크다. 맑은 콩나물국밥이라 막상 받으면 고춧가루며 후춧가루, 새우젓, 김칫국물 같은 양념을 더하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해장으로 먹을 경우 그 유혹은 더할 것이다. 꾹 참고 맑은 콩나물국을 들이켜다 보면 이만큼 속 편안하게 해주는 음식도 없다.

찾아가는 길 전화번호는 간판에도 없고 전화번호 안내에도 없다. 주인이 알리기 싫은 게 아닌가 싶다. 신촌 명물거리의 ‘민들레영토’에서 대각선으로 길 건너를 바라보면 ‘콩나물국밥’ 간판을 찾을 수 있다.



주간동아 2010.01.19 720호 (p70~70)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 blog.naver.com/foodi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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