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09

2009.11.03

내 마음 한 자락 ‘찰칵’ 느낌을 담아내는 마술

  • 김광화 flowingsky@naver.com

    입력2009-10-28 14: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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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마음 한 자락 ‘찰칵’ 느낌을 담아내는 마술

    <B>1</B> 이른 아침 벼 잎에 맺힌 이슬방울과 ‘황금벼’.

    한동안 나는 디지털카메라에 중독됐었다. 밥을 먹을 때도, 논밭에 일하러 갈 때도 카메라를 끼고 있어야 했다. 그만큼 찍고 싶은 게 많았다.

    지금 쓰고 있는 카메라는 보급형 일안반사식(DSLR)이다. 그런 생활을 한 지 5년쯤. 아내가 지은 책 ‘자연 그대로 먹어라’에 들어가는 사진을 내가 찍게 됐다.

    ‘자연 밥상’을 찍으려면 사진작가가 거의 1년 열두 달 필자와 함께해야 하는데, 출판사에서 보기에 남편인 내가 적격이었던 모양이다. ‘주간동아’에 글을 쓰는 올해 역시 원고마다 거기에 맞는 사진을 찍는다.

    사실 난 사진 기술이 부족하고 장비라고는 렌즈 두어 개가 전부다. 하지만 느낌에 대해서는 분명한 생각이 있다. 사진은 기술이나 장비 이전에 찍는 사람이 느낌을 갖고 찍어야 그것이 사진에 고스란히 담긴다고 믿는다. 이럴 때 기계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마음을 담는 그릇이 된다. 이번 호에는 ‘이야기가 담긴 지상(紙上) 사진전’을 한번 해볼까 한다. 주제는 ‘마음 한 자락.’

    사진, 작은 움직임에도 함께 흔들리는 그 순간



    음식 관련 사진을 보면 대부분 맛나게 잘 찍어 침이 괴게 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 식탁은 잘 차린 한 상을 찍을 게 별로 없다. 요리도 단순하고 세팅도 부족하다. 하지만 삶에서 일어나는 느낌은 많은 편이다. 우선 재료가 신선하고 싱그러우니까 그 자체가 느낌을 준다. 그런데 가끔은 재료나 음식보다 밥을 다 먹고 난 뒷모습의 느낌이 오래갈 때가 있다.

    한번은 식구 모두 땀을 흠뻑 흘리고 난 뒤 점심을 먹었다. 반찬이라고 해봐야 샐러드, 멸치볶음, 깍두기, 김치가 다였다. 그런데도 모두가 맛나게 먹었다. 먹을 때까지 몰랐다. 우리가 얼마나 먹는 데 열중했는지를. 다 먹고 나서 밥상을 보니 남은 거라고는 김치 조금뿐. 그 자리에서는 밥투정할 겨를이 없다. ‘밥을 남기지 말라’든가 하는 말이 그야말로 잔소리가 되는 순간이다.

    곁에 뒀던 카메라 꺼내 찰칵! 사진을 찍고 나서도 한동안 밥상 치울 생각도 않고 이 느낌을 즐겼다. 시간을 거슬러가는 느낌이랄까. 소박하게 차렸고, 맛나게 먹었으며, 땀 흘리고 일한 과정이 밥상에 고스란히 스며 있었다. 빈 그릇에 담긴 꽉 찬 삶. 이 사진은 누군가에게 식욕을 불러일으키기보다 삶을 돌아보게 하지 않을까.

    어느 날 마당을 나서는데 하얀 뭔가가 내 앞에 두둥실! 이게 뭔가? 얼떨결에 잡아챘다. 갈색 씨앗 하나가 수십 개 깃털에 싸여 있었다. 깃털이 가을 햇살을 받아 반지르르 윤이 나는 게 볼수록 흥미로웠다. 사람 머리털보다 가늘고, 자기 씨앗 길이보다 10배는 길어 보이는 은빛 깃털. 그런데도 그 많은 깃털이 한쪽으로 뭉치지 않고 씨앗을 중심에 두고 골고루 펼쳐 있지 않은가. 아주 약한 바람이 어느 방향에서 불어오든 그 흐름 따라 자유롭게 날아갈 수 있으리라.

    이를 사진에 담고 싶은데 씨앗을 손에서 놓는 순간 잠시도 가만있지 않았다. 둘레의 미세한 공기 흐름조차 놓치지 않는 생명력이다. 그야말로 살아 있는 씨앗. 어쩔 수 없이 한 손으로 잡고 사진을 찍어야 했다. 도감을 찾아보니 이게 박주가리 씨앗이다. 한동안 이를 컴퓨터 바탕화면에 깔아두고 봤는데, 어느 순간 우리 사람과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몸도 자세히 보면 무수히 많은 털이 있지 않은가. 비록 대부분의 털이 옷에 가려 있지만 머리털, 얼굴 털, 손등 털이라도 부드럽고 윤이 난다면 둘레 낌새에 한결 잘 반응하지 않겠나. 둘레의 작은 움직임에도 함께 흔들릴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자신의 생명력을 더 높이는 길이 되리라. 벼가 익어 황금으로 물든다. 논두렁을 걷다 보면 나 자신도 금빛으로 물드는 것 같다.

    내 마음 한 자락 ‘찰칵’ 느낌을 담아내는 마술

    <B>2</B> 밥을 먹고 난 뒤의 밥상, 빈 그릇에 가득 찬 삶. <B>3</B> 박주가리 씨앗과 깃털. 둘레의 작은 움직임에도 흔들리는 생명력. <B>4</B> 너럭바위에 애호박을 말린다.<b>5</b>어느 사진작가가 13년째 쓰고 있다는 카메라 가방 ‘돔케’

    게다가 오후 해가 서서히 서산으로 기울면 타는 노을과 겹치면서 벼는 더 강하게 자신을 반사한다. 벼는 우리네 생명. 벼가 익어가는 하루를 사진으로 담고 싶었다. 먼저 해가 뜨기 직전, 벼 잎과 낟알마다 이슬방울이 촘촘하다. 그 가운데 방울 하나는 제법 커, 벼 잎에 대롱대롱 매달려 영롱하다. 그 방울에는 앞산과 누렇게 영글어가는 벼, 하늘은 물론 사진을 찍으려는 내 모습도 거꾸로 담겨 있다. 순간 마음이 흔들린다. 이슬방울 하나에도 우주가 담긴 모습!

    큰 이슬방울에 초점을 두고 조리개를 최대한 열어 찍었다. 생각지도 않았는데 배경이 황금빛을 띤다. 벼가 익어가면서 둘레가 온통 황금빛이다 보니 자연스레 그렇게 된 셈이다. 덕분에 이슬도 더 빛난다. 짧은 순간에 무한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영원이 아닐까.

    가을 햇살이 따사롭고 바람이 좋으니 가을걷이도 무르익는다. 땅콩, 들깨, 고구마, 콩을 거둔다. 가지와 애호박도 말린다. 마을 할머니들은 애호박을 주변 너럭바위에 곧잘 말린다. 바위에서 올라오는 복사열로 호박이 한결 잘 마른다. 자연과 사람이 만나 머무는 곳. 어쩌면 이것도 시너지 효과가 아닌가. 꼬들꼬들 말라가는 호박도 예쁘지만 바위도 호박고지와 어우러지니 더 예쁘다.

    세월이 흐를수록 더 빛나는 삶의 흔적

    우리 집에는 가끔 이런저런 잡지사에서 취재차 온다. 이때 대개는 전문 사진기자들이 함께 온다. 나는 이럴 때 사진 공부를 많이 해둔다. 카메라와 그 조작법에 관해 궁금했던 걸 전문가에게 물어보며 배운다. 그런데 한번은 사진작가의 카메라보다는 가방이 눈에 확 들어왔다. 마음이 흔들려 곧바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물어보았다. 얼마나 사용한 거냐고. 13년째 쓰는데 이게 바로 ‘돔케’라는 카메라 가방이란다. 세월 속에 녹아든 삶의 흔적. 이 가방을 둘러메고 얼마나 많은 곳을 다녔을까. 그때마다 가방을 열어 카메라를 꺼내고 렌즈를 갈아 끼우던 모습이 남루한 가방에 고스란히 스며 있다. 13년이란 세월이 한순간에 녹아든 모습. 순간이 모여 영원이 되고, 영원은 순간의 또 다른 이름이다. 순간을 영원의 세계로 안내하는 사진, 나는 이따금 그 마법에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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