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08

2009.10.27

일본 태반주사는 명품? “가격 거품 많다 많아!”

국산보다 2배 이상 비싸

  • 유두진 주간동아 프리랜서 기자 tttfocus@naver.com

    입력2009-10-21 14: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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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태반주사는 명품? “가격 거품 많다 많아!”
    “태반주사요? 일제(日製)고요, 앰플 하나에 3만원이에요. 너무 비싸다고요? 우리 병원만큼 저렴한 곳도 드물어요. 정 그러시면 국산으로 하세요. ○○는 2만원이고, △△는 1만5000원이에요. 하지만 저희야 일제를 더 권하죠. 아무래도 품질이 더 좋거든요.”

    10월8일 정오 무렵, 서울 양천구 모 여성병원 상담실장과의 통화 내용이다. 예순을 넘기면서 살이 빠지고 기력도 달린다는 어머니의 하소연이 걱정돼 태반주사에 대해 문의해본 것이다. 일본산 태반주사에 대한 이 병원 측의 신뢰는 매우 높아 보였다. 국산인지, 일본산인지 묻기도 전에 일본산 태반주사를 먼저 언급했음은 물론, 품질에 대해 확언까지 하는 것을 보니.

    그나마 이 병원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국산 태반주사도 함께 취급하고 있으니 말이다. 상담실장의 말처럼 서울 강남 소재의 병원들보다 가격도 저렴한 편이다. 취재 결과 강남, 서초, 송파 등 이른바 강남 3구에 자리한 성형외과와 피부과 중에는 일본산 태반주사만 취급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가격도 앰플당 3만~5만원으로 국산보다 2배 이상 비쌌다. 가격 거품 논란이 불거질 만도 했다.

    공정, 성분, 안전성에서 가수분해물이 우월

    이런 가격 거품 논란의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일본과 국내의 태반주사 시장을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먼저 일본 태반주사 시장에서는 가수분해물 계열(라이넥)과 추출물 계열(멜스몬)이 유통되고 있다. 가수분해물 계열이 추출물 계열보다 높은 시장점유율을 보이고 있지만, 가격대는 비슷하다. 국내의 경우 일본산은 추출물 계열 태반주사만 수입되는 실정. 이 때문일까.



    국내 태반주사 시장에서는 추출물 계열이 가수분해물 계열보다 1.5배 이상 비싸게 팔린다. 이는 일본산 선호 경향과 비싼 게 무조건 좋다는 분위기가 만들어낸 결과물. 이런 경향에 편승해 국내에서 생산되는 추출물 계열 태반주사도 특별한 이유 없이 가수분해물 계열보다 높은 가격에 병원에 공급되고 있다. 가수분해물 계열은 추출물 계열에 비해 가격은 싸지만, 제조공정은 물론 태반주사에 포함된 각종 성분의 종류와 양 또한 많다.

    가수분해물 계열은 탯줄을 포함한 인태반을 1차로 깨끗이 세척하고 잘게 부순 다음(파쇄) 탈지(脫脂), 건조분말로 만드는 과정을 거쳐 효소처리를 통해 성장인자와 사이토카인을 추출해낸다. 이후 추가적인 염산가수분해를 통해 아미노산 등을 뽑아낸다. 반면 추출물 계열은 인태반을 세척한 다음 바로 염산가수분해를 통해 아미노산 등만을 분리해낸다(36쪽 참조).

    국산 인태반을 사용하되 일본산처럼 추출물 방식을 따른 태반주사는 국내에만 20여 개로, 가수분해물 계열(10개)보다 2배가량 많은데, 이것 역시 일본산에 대한 맹신에서 비롯됐다. ‘추출물 계열=일본산’이라고 생각하는 환자가 많은 데다 가격도 비싸기 때문에 국내 업체들이 줄줄이 추출물 계열 태반주사를 생산 및 판매하고 있는 것. 이 때문일까. 국산 추출물 계열 태반주사는 일본산만큼은 아니지만 국산 가수분해물 태반주사보다 높은 가격에 병·의원에 공급된다.

    병·의원에서 추출물 계열이 가수분해물 계열보다 높은 가격에 처방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제조공정, 성분 구성, 안전성 측면에서도 국산, 즉 가수분해물 계열 태반주사가 더 나으면 나았지 못할 게 없다. 먼저 안전성 측면을 살펴보자. 우리나라는 까다롭기로 유명한 DMF(Drug Master File·원료의약품신고제도) 규정 등을 실시하고 있어(38쪽 참조) 양질의 태반주사를 생산할 기반이 잘 갖춰져 있다.

    현재 국내 태반관리규정상, 감염 태반이나 산모 동의서가 없는 태반은 반드시 전량 폐기, 소각해야 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이하 식약청)의 생물학적 제제에 대한 관리기준 역시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 있다. 따라서 국산 태반을 원료로 가공한 태반주사의 안전성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 전문가들이 꼽는 국산 태반주사의 가장 큰 강점은 ‘유전적 적합성’이다.

    일본 태반주사는 명품? “가격 거품 많다 많아!”
    국산 태반주사는 한국인 산모의 태반, 일본산은 일본인 산모의 태반을 원료로 만들어진다. 생물학적 제제는 특히 자국민의 것을 사용해야 안전성이나 유전적 측면에서 더 낫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

    이런 점은 혈액분획제제(혈액을 원료로 한 의약품) 관리에 대한 세계보건기구(WHO) 및 국제적십자연맹의 권고에서도 확인된다. 이들 기관은 각 나라에 헌혈 자급자족과 함께, 상업성을 배제한 공공관리 원칙에 의거해 혈액분획제제를 관리토록 권고하고 있다.

    일본산에 빗나간 짝사랑, 밀수로 이어져

    대표적인 가수분해물 계열 태반주사인 녹십자의 라이넥은 추출물 계열 태반주사가 가진 영양성분을 모두 포함했음은 물론, 성장인자와 면역단백질인 사이토카인도 포함하고 있다. 또한 추출물 계열 태반주사와 달리 제대(탯줄)를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식약청의 태반주사 허가사항 기준 및 시험방법에 드러난 최소 함량 기준에서도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가수분해물 계열은 추출물 계열보다 질소가 10배가량 많으며, 아미노산의 함량도 훨씬 많다.

    그런데도 병·의원에서 일본산이 2배 이상 비싼 가격에 처방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내 환자 사이에서 ‘고가 마케팅’이 먹혀들고 있기 때문이다. 태반주사가 일본에서 시작됐다는 ‘원조 효과’와 더불어 ‘일제=명품’이란 고정관념이 지금껏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 유통업체 간 극심한 경쟁도 ‘가격 왜곡’에 한몫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정된 물량의 일본산을 서로 많이 수입해 유통시키려다 보니 경쟁이 붙어 가격 거품이 형성된 것.

    ‘일제’에 대한 빗나간 ‘짝사랑’은 태반주사 밀수입 등 또 다른 폐해를 낳고 있어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전문 의료인에 의해 적정 온도에서 청결히 보관돼야 할 태반주사들이 습기 찬 창고바닥에 방치돼 있다가 그대로 국내 20여 개 병·의원에 유통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차세대 수출상품으로 떠오르는 국산 태반주사

    동남아 지역 뜨거운 반응 …‘藥 한류’ 주도


    국산 태반주사는 우수한 품질을 지닌 만큼 새로운 한류(韓流) 수출상품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업계에서 주목하는 시장은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 동남아 지역. 이들 지역에서 최근 태반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국내 의료진의 태반 강의에 대한 반응도 뜨겁다고 한다.
    이 지역의 태반주사 시장에서는 수년 전부터 일본산이 상대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 그러나 한류 열풍이 불면서 한국과 한국산에 대한 인지도가 전반적으로 상승해 국산 태반주사 역시 다양한 틈새시장을 공략할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일본 회사조차 기술제휴를 통해 한국에서 만든 태반주사의 수출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여러모로 태반주사가 새로운 수출 효자상품으로 거듭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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