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08

2009.10.27

“명약 자하거 … 임금이 쾌차하셨소”

전통의학도 태반 효능 극찬 … ‘동의보감’에선 “성기능·면역 증강, 정신질환 치료”

  •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한의학 박사·전 대구한의대 교수

    입력2009-10-21 14: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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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약 자하거 … 임금이 쾌차하셨소”
    태반은 임부의 자궁 안에서 태아와 모체 사이의 영양공급, 호흡, 배설을 주도하는 조직으로 고대에는 인간이 최초로 걸치는 가장 좋은 옷이라고 해 ‘신선의(神仙衣)’ 또는 부처가 입는 옷이라 여겨 ‘불가사(佛袈裟)’라고도 했다.

    한약재로서 태반의 정식명칭은 자하거(紫河車). 자(紫)색은 일종의 보라색으로 붉은색과 검은색을 혼합했을 때 나오는 색이다. 검은색은 생명 이전의 카오스를 상징하며, 붉은색은 태어난 이후의 광명세계를 상징한다.

    따라서 보라색은 짙은 어둠에서 해가 뜨는 여명의 아침을 의미하며 생명의 시작을 알리는 색깔이다. 이때 자(紫)는 자궁을 의미하기도 한다. 자궁은 물의 세상이며 어두운 혼돈의 세계다. 자궁을 상징하는 한자어가 ‘어두울 명(冥)’자인 것도 이 때문이다.

    지금은 자궁이라는 뜻은 사라지고 어둡다는 의미만 남았지만, 자세히 파자(破字)해보면 어두운 자궁에서 아이를 두 손으로 받아내는 모습임을 알 수 있다. 하(河)는 중국 문명의 중심인 황하의 근원지인 황하 이북의 물길을 의미한다.

    거(車)는 자궁에서 생명의 힘을 충분히 준비한 수레, 아기가 타는 ‘리무진’ 격이다. 그래서 자하거의 뜻을 해석하면 아기가 생명 이전의 카오스와 어둠의 세계에서 근원의 물길을 타고 나오는 데 필요한 수레쯤 된다. ‘동의보감’은 이를 “배태(胚胎)의 99수가 만족해 타고 나온다”로 설명했는데, 충분히 자란 아이가 상수학에서의 완전수인 100에 가까운 99수를 만족시키고 새로운 세계로 나오는 것을 상징한 말이다. 서양 문학으로 말하면 헤르만 헤세의 알을 깨고 나온 세계와 맞닿아 있다.



    진시황제가 ‘불로장수의 약’으로 사용

    자하거의 약용에 대해선 BC 3세기 ‘진시황제가 불로장수의 약’으로 사용했다는 기록이 보이지만, 의학서에 본격 등장한 것은 10세기(본초습유) 이후다. 16세기 말 명나라 의서인 ‘본초강목(本草綱目)’에 나온 자하거의 기록은 태반이 효능 좋은 약재로서 널리 쓰이는 현실과 신체발부(身體髮膚)의 가치에서 유래한 유학이념 사이에 치열한 괴리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유구국(오키나와)에서는 부인이 출산하면 반드시 태반을 먹는다” “팔계(광서성) 만(蠻)족의 요인(人)은 남자를 생산하면 친족이 모여서 (태반을) 먹는다”라고 적고, “사람으로서 사람을 먹는다면 유구족이나 요인 같은 오랑캐와 얼마나 차이가 있겠는가”라며 탄식을 늘어놓기도 했다. ‘본초강목’은 특히 태반을 “동산서(銅山西)와 같다”고 했다.

    ‘동산서’는 풍수지리서의 원조 격인 ‘장경’에 나오는 하나의 의식. ‘중국 한나라 미앙궁에 있던 동종이 원인 없이 계속 울려 이유를 알아보니 그 원료생산지인 동산이 무너져 사라졌기 때문’이었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말로, 자식의 인생에서 모태의 건강이 큰 영향을 미침을 뜻하는 말이다. 즉 태반도 조상(과거)-어머니(현재)-아이(미래)로 내려오는 생명의 고리와 그 순환 과정으로 파악했음을 의미한다.

    조선시대 왕손의 태반과 탯줄을 태실에 소중하게 보관한 것도 이런 사상에서 유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 역사에서 태반에 대한 최초의 약용 기록은 ‘중종실록’에서 볼 수 있다. 연산군을 몰아낸 뒤 왕비의 죽음, 조광조의 처단 과정에서 피로해진 중종이 몸져누웠다가 자하거를 먹고 쾌차한다. 중종 28년 2월11일, 약방제조 김안로와 장순손은 임금의 쾌차를 하례하는 자리에서 자하거를 특효약이라고 극찬한다.

    “명약 자하거 … 임금이 쾌차하셨소”

    한약재의 메카인 서울 경동시장. 자하거(인태반)를 한방에서 주사제로 쓰는 것은 의료법 위반이다.

    “상의 건강이 매우 좋아졌습니다. 처음 편찮아졌을 때 자하거라는 약을 처방하였는데 가장 신통하고 영험스러우나 먹는 사람이 알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처방문에 따라 아뢰지 않았습니다.”

    ‘본초강목’의 저자인 명나라 이시진은 자하거의 사용을 망설였으나 명의 뒤를 이은 청나라는 자하거를 ‘천하의 명약’으로 중시한다. 청대 비방집에 나타나는 ‘보천하거대조환(補天河車大造丸)’이라는 처방이 바로 그것.

    팔다리에 힘이 빠지고 몸이 극도로 허약해질 때 원기를 보충하는 최고의 처방으로 자하거를 꼽았다. 청나라와 조선의 어의들이 최고권력자에게 처방한 약재인 만큼 인삼과 녹용을 능가하는 대단한 약재로 인정받았음이 분명하다.

    한방은 먼저 자하거의 약효를 ‘자음(滋陰)’에서 찾는다. 즉, 음을 기르는 효능을 그 첫 번째로 꼽은 것이다. 태반은 생명력을 기르는 텃밭으로 아기가 생명을 키우고 유지하는 데 필요한 물질을 주고받고 저장하는 창고의 기능을 한다. 이때 음을 기르는 효능은 흡사 주전자에 물을 데우는 것과 유사하다. 인체 생리기능의 양대 기초는 내부를 흐르는 물질(혈액, 점액 등)과 불꽃처럼 타오르는 기능적 힘(氣)으로, 많아도 적어도 문제가 생긴다.

    물이 적으면 빨리 데워지듯, 한방에선 혈액과 같은 흐르는 물질이 부족해 잘 달아오르는 것을 음의 부족, 즉 음허(陰虛)로 인식한다. 이런 음허 증상을 치료하는 데 사용한 약재가 자하거다. ‘동의보감’에 나온 자하거의 첫 치료효능은 남성의 성기능 장애와 여성 불임의 해소. 조선시대 의학입문서였던 ‘입문대조환(入門大造丸)’은 자하거가 들어간 대조환을 주로 쓰는 질병에 대해 “기혈이 허약하고 음경이 줄어들어 겨우 형태만 있으며 안색이 누렇게 뜨고 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하는 이에게 쓴다”고 구체적으로 서술했다.

    이는 자하거가 들어간 다른 대조환도 다르지 않다. 현대 약리학도 자하거의 성선자극 호르몬, 자궁수축 호르몬인 옥시토신 등에 대한 분비효능을 확인한 점을 염두에 두면 앞뒤가 척척 맞아들어간다. 둘째 효능은 노채(勞) 등 폐결핵과 같은 만성 소모성질환의 치료효능이다. 만성 기관지천식과 피로, 해소(만성 기침) 등 호흡기질환이 그것.

    호흡기가 약하면 점액 같은 음적 물질의 분비량이 줄어들면서 쉽게 이물질이나 바이러스, 세균에 노출되는 상태가 벌어지는데 자하거가 이를 보충해 치료를 한다는 것. ‘동의보감’은 이 밖에 신경쇠약과 같은 정신질환에도 자하거가 큰 치료효능을 나타낸다고 기록했다. 여기에 더해 스트레스나 피로를 해결하는 항스트레스 작용도 한다고. 내경(內景)편 신문(神門)에서는 자하거가 간질이나 가슴이 뛰는 것, 정신이 없는 것, 말이 많으나 일관성이 없는 것, 놀람, 공포를 치료하는 효능이 탁월하다고 서술했다.

    삭아서 다시 드러나는 자하거의 본성

    하지만 자하거에 대한 ‘동의보감’의 기록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대목은 “자하거가 진기(津氣)를 보충한다”는 것이다. 진기는 현대약리학에서의 면역을 의미하는데, 이를 보충한다는 것은 면역력을 향상시킨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유전자 절반을 이어받은 태아는 어머니로 봐서는 이물질. 하지만 태반에는 모든 이물질을 공격하는 면역기능을 배척하지 않는 메커니즘이 자리한다.

    임부와 태아는 태반의 융모세포를 통해 접촉하는데, 모체의 여성호르몬과 스테로이드 호르몬은 과격한 면역반응을 막고 ‘면역의 관용’ 상태를 만든다. 또한 태반에는 여러 가지 다른 면역세포가 모여 있는데, 280여 일의 긴 시간 동안 태아의 세포가 모체로 들어가는 것을 사전에 막아준다. 태반은 태아를 모체의 면역거부 반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각종 면역기능 향상 물질을 쏟아낸다.

    중국의 모든 한약 자원약물에 대한 전통적 해석과 과학적 실험결과를 담은 ‘중약대사전(中藥大辭典)’에 따르면 “태반은 인터페론을 함유하며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나 다종의 바이러스를 억제하고 디프테리아 등에 저항하는 물질을 다량 함유하고 있다”고 한다.“자하거를 땅속에 묻어 7~8년이 지나 삭으면 물로 변한다. 어린아이의 단독(丹毒)과 모든 독을 주로 치료한다.”

    사람도 죽어서야 제대로 된 평가를 받듯 자하거도 삭아야 오히려 그 본성을 드러낸다. ‘동의보감’은 자하거에 대한 마지막 효능을 ‘해독’이라고 했다. 단독이 열성 피부염의 일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자하거의 본성이 ‘식히고 적셔주는’ 자음에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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