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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 ‘시골의사’의 책장

뻔뻔한 쾌락주의자 반면교사 되다

자코모 카사노바 자서전 ‘카사노바 나의 편력’

뻔뻔한 쾌락주의자 반면교사 되다

뻔뻔한 쾌락주의자 반면교사 되다
‘카사노바’는 그 이름만으로 ‘난봉꾼’의 상징적 기호다. 하지만 우리가 희대의 ‘엽색가’로 기억하는 카사노바가 자서전(한길사 펴냄)을 남겼다는 사실은 잘 모른다. 자서전에 드러난 그는 전 생애에 걸쳐 무모하고 무책임하며 즉흥적인 삶을 산 인물이다.

하지만 그를 위한 항변 아닌 항변을 하자면 그는 쾌락주의자 혹은 자유주의자였을 뿐 그의 엽색행각 자체는 당시 시대상이나 풍습으로 볼 때 그리 놀랄 일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일생을 사기와 도박, 엽색으로 살았던 이 뻔뻔스러운 남자는 자서전을 통해 “나는 자서전을 씀으로써 예전에 누린 즐거움을 회상하고 다시 한 번 그 즐거움을 맛보는 한편, 이제는 지나가버린 고통의 기억을 웃음으로 어루만진다”고 할 만큼 자신의 삶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득했다.

타인의 시선이 어떻든 그는 스스로를 쾌락주의자로 규정했고, 그것을 실행하는 삶을 살았다는 자부심이 충만했기 때문이다. 책에서 밝힌 것만 해도 그가 만난 여성은 130명이 넘는다. 하지만 일생 동안 130명의 여성과 관계했다는 것이 30명이나 10명과 관계했다는 사실과 크게 다를 건 없다. 오히려 로코코로 규정되는 당시 유럽 문화를 고려하면 그가 오늘날의 ‘압구정 오렌지들’과 그리 다른 행각을 벌인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왜 그는 엽색가의 대명사로 불리게 됐을까.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듯 그보다 훨씬 편력이 심한 사람이 ‘허리 아래’ 문제에 입을 닫거나 은유로 일관한 데 비해, 그는 그것을 자서전이라는 형태로 남긴 탓이 가장 크다. 두 번째로 그는 당시 사회에서 ‘뜨거운 감자’였기 때문에 그를 규정하는 사회적 단죄의 증거가 필요했다. 그는 배우의 아들로 태어나 어릴 때 법학박사, 신학박사 학위를 받은 나름대로 수재였다.



그러나 그는 귀족이 아니었고, 귀족이 아니라는 출신성분은 그를 변방의 아류로 머물게 했다. 그는 늘 주류를 지향했지만 현실은 비주류였고, 주류를 선망하는 만큼 아류일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그의 비극은 거기서 출발한다. 그는 귀족들과 사귀고 귀족의 여인들과 염문을 뿌렸다. 그 과정에 필요한 돈은 기발한 수완으로 조달하거나 그의 재능에 혹한 후원자들을 통해 해결했지만 그는 그것을 모두 여자에게, 혹은 도박에 탕진했다.

문학에도 재능이 있어 오페라 대본을 쓰고, 소설작품을 남기고, 에세이를 쓰고, 볼테르를 만났지만 그의 작품은 변방에 머물렀다. 그의 가장 큰 비극은 모든 분야에서 90%를 할 수 있지만, 한 분야에서도 100%를 이루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그의 천성 탓이었다. 재능을 연마하고 단련함으로써 주류사회에 진입할 자질을 가졌음에도 그는 늘 태만했다. 돈을 벌면 도박으로 술로 음식으로 사치로 탕진하고, 여자를 만나면 쾌락에 빠져들었다.

그는 그 모든 것이 ‘사랑’ 때문이라고 규정했다. 하지만 여자들은 끊임없이 그를 배신하고 곤경에 빠뜨렸다. 만약 그가 진심으로 그녀들을 사랑했다면 그의 운명은 달라졌을지 모른다. 그는 스스로의 말대로 쾌락을 탐한 것이다. 그리고 그 대가로 불우한 말년을 보냈다. 그러나 그는 슬퍼하지 않았다. 젊었을 때 충분히 즐겼고, 나이 들어 힘없을 때 즐기지 못하는 것은 억울하지 않다는 것이다. 뻔뻔하리만큼 당당했다. 그것이 당시 주류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배우 아들 주제에 귀한 집안 여인네들과 염문을 뿌려댄 것이 마뜩할 리 없었다. 그래서 그보다 더한 엽색행각을 일삼던 당시 주류사회는 그에게 ‘호색한’이라는 딱지를 붙여 그의 자서전을 금서로 묶어버렸다. 그리고 그는 기억에서 지워져버렸다. 그러나 대개 금서가 그렇듯 그의 자서전 역시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정작 그가 쓴 다른 40여 점의 작품은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지만, 그의 자서전은 질긴 생명력을 보여줬다. 이유는 하나다.

그는 어떤 소설가의 머릿속에서도 창작하지 못할 이야기들을 그의 삶으로 살았기 때문이다. 즉 그의 삶 자체가 문학가의 붓끝에서 나오는 허구보다 리얼하고 극적이었다. 그는 허구로 성공하지 못했지만 오히려 소설적 삶으로 작품을 쓴 셈이다.

뻔뻔한 쾌락주의자 반면교사 되다

박경철
의사

이 시점에서 우리가 그를 단죄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우리가 과연 그의 시대보다 건강한 시대를 살고 있는지, 혹은 우리의 욕망과 삶이 그보다 더 건강한지에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분명한 것은 한 가지 있다. 그가 게으르고 즉흥적인 성격의 소유자라는 것이며, 그것은 인류가 성성이처럼 털을 기른 채 물고기를 잡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공히 적용되는 규범에 반하는, 즉 성실성을 갖지 못한 인간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그는 지금도 읽히고 지금의 나를 비추는 반성의 거울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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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동아 2009.10.27 708호 (p87~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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