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08

2009.10.27

코믹과 잔혹 버무려 진한 감동

‘굿 닥터’

  • 현수정 공연칼럼니스트 eliza@paran.com

    입력2009-10-21 13: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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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믹과 잔혹 버무려 진한 감동
    20세기 후반에 브로드웨이를 주름잡던 희극작가 닐 사이먼은 평론가들에게서 미국을 대표하는 ‘가장 상업적인 작가’라는 평가를 들었다. 그렇다고 그가 싸구려 웃음을 파는 작가인가 하면, 그 반대다.

    닐 사이먼은 슬랩스틱이나 말초적인 자극이 아닌, 희극적 상황을 통해 세련된 유머를 구사했다. 특히 오묘한 인간 심리를 파고들며 당사자에게는 절실하지만 남들이 보면 웃을 수밖에 없는 코믹잔혹극적 상황을 보여줬다. ‘지붕 뚫고 하이킥’류의 시트콤에서 심리적인 소재들을 활용하는 방식과 비슷하지만, 닐 사이먼은 눈물을 머금게 하는 페이소스로 감동을 준다는 점에서 독보적이다.

    ‘굿 닥터’의 인물들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평범한 서민이다. 뉴욕에서 태어난 닐 사이먼은 어릴 때부터 관찰해온 서민들의 모습을 반영해 냉철하면서도 따뜻한 ‘블랙 유머’를 만들어냈다. 젊은 하급 공무원이 상사인 장관의 머리에 재채기를 한 일에 집착하다가 절망해 죽음에 이르고, 황혼기의 전직 장관들이 매주 훈장을 주렁주렁 달고 나와 사소한 주제로 언쟁을 벌이며 여생을 보낸다.

    그리고 엉뚱한 곳에 찾아가서 남편이 받지 못한 급여를 받아내기 위해 난동을 부리는 그악스러운 여인의 유쾌한 승리도 보여준다. 그런가 하면 유부녀만 유혹하는 카사노바나 아들에게 생일선물로 ‘성(性)’을 체험시키려는 아버지도 등장한다. 이들의 모습은 일반적이지는 않지만, 괴이한 상황 속에서 재치 넘치는 언쟁을 보여주는 닐 사이먼만의 재능을 엿보게 한다.

    네 번째 에피소드인 ‘늦은 행복’은 뮤지컬 형식으로 진행된다. 이 부분은 ‘내일’에 대한 확신이 없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잔잔하면서도 코끝 찡하게 하는 로맨스를 담았다. 멜로디도 내용과 어울리는 서정성을 띠고, 계속 두 사람이 앉아서 대화해야 하는 상황을 노래로 처리한 것도 적절한 연출이다.



    그러나 배우들의 노래 실력에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가수의 노래가 배경으로 깔리는 가운데 배우들은 마임으로 동작을 하는 등 다른 방법을 찾아보는 편이 더 좋았을 것 같다.

    이 작품은 사회자가 해설을 곁들이며 에피소드들을 전개하는 ‘극중극’ 방식으로 전개된다(사회자는 작품의 바탕이 된 원작의 극작가 안톤 체호프다). 개그맨 정재환이 사회자와 에피소드 속 인물로 출연, 순발력을 발휘하며 매끄럽게 극을 진행한다. 이번 공연은 디테일한 부분까지 신경 쓴 재치 있는 연출로 웃음과 감동의 타이밍을 잘 살렸다. 일인다역을 소화하는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했다. 11월15일까지, 설치극장 정미소, 문의 02-3672-3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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