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08

2009.10.27

신경을 긁는 ‘부앙, 부아앙~’ 누가 제발 좀 말려줘!

시도 때도 없는 오토바이 소음 ‘공공의 적’ … 수면 방해와 스트레스 잇따라 호소

  •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입력2009-10-21 11: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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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경을 긁는 ‘부앙, 부아앙~’ 누가 제발 좀 말려줘!

    청소년 폭주족이 새벽 자동차전용도로를 난폭하게 달리고 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오토바이 소리에 크게 놀란 적이 있을 것이다. 굉음을 남기며 ‘빛의 속도’로 사라지는 오토바이 꽁무니에다 대고 인상 쓰며 삿대질도 해봤을 테고, 새벽 폭주족 오토바이 소리에 놀라 잠이 깬 아이를 달래느라 밤을 새우기도 했을 것이다. 운전자라면 밤이고 낮이고 느닷없이 차 앞으로 끼어드는 오토바이들의 무법질주 때문에 화가 치민 적이 한두 번이 아닐 것이다. 이런 ‘무개념’ 오토바이를 보호하려고 피하다가 애꿎은 운전자가 사고를 당하는 일도 잦다.

    이렇듯 전국의 길들이 오토바이 스트레스로 몸살을 앓고 있다. 도대체 이걸 언제까지 참고 견뎌야 하나.

    “오토바이 소음 때문에 세입자들이 방을 빼려고 합니다. 이젠 정말 못 참겠어요.”

    시청이나 구청 홈페이지, 아파트 주민카페 등에선 오토바이로 인한 피해와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글이 끊임없이 올라온다. 신문 독자란에도 오토바이 폭주족의 자제를 바라는 글은 단골손님이다.

    ‘오토바이 노이로제’ 끔찍한 2차 사고



    이처럼 오토바이의 굉음과 폭주족의 위법 질주 때문에 쌓인 스트레스는 노이로제 수준으로 악화돼 때로는 끔찍한 2차 사고를 초래한다. 지난해 4월엔 30대 전직 약사 A씨가 자신의 차를 추월하던 오토바이를 들이받아 20대 대학생이 사망했다. 재판 과정에서 A씨가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으나, 사고는 평소 폭주족에게 악감정을 갖고 있던 그가 난폭 주행하는 오토바이를 본 순간 심리적 동요를 일으키면서 촉발됐다.

    지난 5월 경북 성주에서는 승용차를 몰던 이들이 동네 후배들이 몰던 오토바이가 차의 진로를 방해하고 소음을 내자 이들을 폭행하고 금품을 빼앗아 입건됐다. 그러나 오토바이 불법행위에 대한 단속과 처벌의 수위는 만족스럽지 못하다. 도심 교통난 가중에 따른 택배 수요 증가 등으로 오토바이 수가 크게 늘었고, 이들에 의한 불법행위 건수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데도 적발건수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최근 서울지방경찰청이 한나라당 유정현 의원에게 제출한 오토바이 불법행위(공동위험 행위, 무면허, 굉음 유발 등 포함) 적발현황에 따르면 적발건수는 2007년 1792건으로 2006년의 609건에서 크게 늘어났으나 2008년엔 1459건, 올해 7월까지는 1726건에 그쳤다. 실제로 단속은 처벌보다 주의나 계도 중심으로 이뤄지는 분위기다. 경찰 관계자는 “오토바이 불법행위 단속에 적발된 사람들이 대부분 오토바이 한 대로 먹고사는 ‘생계형’이다 보니 처벌하기에 어려운 점이 많다.

    또한 단속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안전사고 위험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고 털어놨다. 그나마 적발을 해도 형사 입건되는 경우는 전체 건수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올 들어 지난 7월까지 적발된 1726건 중 768건(44.5%)만이 형사 입건됐다. 시민들이 노골적으로 불만을 제기하는 굉음유발 행위는 834건 모두 통고 처분에 그쳤다. 난폭운전이나 굉음유발 행위로 적발돼도 범칙금 3만원만 내면 끝이다. 공동위험 행위나 불법 구조변경으로 적발되면 1년 이하 징역이나 3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는 도로교통법이 무색할 지경. 게다가 단속도 국경일이나 휴일 등에만 집중된다.

    형식적 단속 유령 폭주족 양산

    신경을 긁는 ‘부앙, 부아앙~’ 누가 제발 좀 말려줘!

    지난해 서울시가 마련한 친환경 전기오토바이 시범보급 협약식에서 오세훈 서울시장(맨 앞)이 직접 전기오토바이를 타고 거리를 누비고 있다.

    이처럼 규제와 처벌의 수위가 낮고 단속도 형식적으로 이뤄지다 보니 통계에 잡히지 않는 ‘유령 폭주족’이 계속 양산된다. 소음을 키우기 위해 배기통을 불법 개조하는 정도는 폭주족에게 아무 일도 아니다. 개인 수입업자가 들여온 오토바이는 소음 인증조차 받지 않고 출시되는 게 관행이다. 폭주족이 오토바이 번호판을 가리거나 아예 떼어내고 거리를 누벼도 처벌할 만한 규정이 없다.

    이처럼 오토바이 불법행위가 야기하는 위험성에 비해 낮은 처벌기준을 강화하고, 교육제도도 보완해 규제의 실효성을 높이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한나라당 신지호 의원은 지난 7월 이 같은 취지로 도로교통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발의했다. 벌금 납부로만 한정된 규정 외에 면허 정지·취소 등의 행정처분을 강화하고 교통안전교육 의무실시 규정을 보완해 함께 적용시켜야 한다는 것. 신 의원은 “오토바이 불법행위에 대한 행정처분 규정이 없고 교통안전 교육의무도 없어 재범 위험이 크다”고 말했다.

    도로교통공단 최범석 연구원은 장기적으로는 단속과 처벌 강화에만 초점을 맞춰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원래 자동차가 대중화한 이후엔 오토바이의 보급과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하는데, 우리는 오토바이를 건너뛰고 자전거에 너무 목을 매는 것 같다. 폭주족을 양산하는 3대 요인인 무면허·무보험·무적(無籍)부터 바로잡는 게 숙제”라고 지적했다. 오토바이 소유자들이 자신의 신원이 드러나지 않다 보니 불법을 저질러도 죄책감 없이 제2, 제3의 돌출행동을 저지른다는 것.

    실제 국토해양부가 6월 조사한 바에 따르면 국내 오토바이(이륜차) 등록대수 180만여 대 중 68%가 무보험 상태인 것으로 파악됐다. 그는 “처벌 강화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폭주족을 익명성이 보장된 음지에서 양지로 이끄는 작업이 필요하다”며 “효과적인 단속장비 개발, 운전자 심리연구 및 교육, 도로교통 정비 문제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와 관련, 최근 경찰청과 오토바이 생산업체들이 전개하고 있는 다양한 캠페인과 지방자치단체들이 주도하는 저소음 전기 오토바이 보급 노력은 주목할 만하다.

    지난 8월 서울지방경찰청과 대림자동차는 폭주족 청소년 40명을 대상으로 스쿠터레이스 교육을 열었고, 교육에서 우수한 성적을 올린 이들을 선발해 실제 레이싱 대회에 출전시켜 좋은 반응을 얻었다. ‘폭주족’이라는 달갑지 못한 꼬리표를 ‘레이서’로 바꿔 달아준 것이다. 또한 서울시는 ㈜도미노피자와 친환경·무소음 전기 오토바이 시범보급 협약을 맺고 오토바이를 지원했다. 말썽을 자주 일으키는 배달 오토바이의 이미지를 개선하고 소음 등으로 인한 시민들의 피해를 덜어주려는 노력의 일환. 학계에서는 오토바이의 위험성에 대한 주기적인 교육과 폭주족 상담원제 신설 등에 대한 논의도 활발해지고 있다.

    폭주족의 종류는?투어링…탄환…사행…갈수록 난폭

    국회입법조사처 행정안전팀은 지난 7월 폭주족과 관련한 한국과 주요 국가의 경찰 대응 및 규제·법령 비교분석 자료를 내놓으면서 폭주족의 유형을 다음과 같이 세분화했다.
    투어링(touring)형 : 집단으로 모인 폭주행위자들이 오토바이로 먼 거리를 주행하는 것. 오토바이열(列)을 만든 다음 도로 한편에 넓게 퍼져 신호위반, 속도위반을 반복하고 차량통행을 방해한다.
    서킷(circuit)형 : 특정 도로에서 서킷 레이스와 유사한 폭주행위를 하는 것. 급발진, 급정지, 급가속, 급선회를 거듭한다.
    제로욘(04의 일본 발음. 0→400m를 의미)형 : 도로에서 2대 이상의 오토바이가 동시에 발진, 평탄한 직선구간을 질주해 속도, 시간을 겨루는 것. 이들은 도로를 경주장으로 여긴다.
    롤링(Roiling)형 : 굴곡이 연속되는 폭이 좁은 산악도로나 항만도로 등에서 오토바이를 옆으로 쓰러지게 하는 식으로 주행하고 스릴을 즐기는 폭주족. 당연히 반대편 통행 차량의 위험을 야기한다.
    탄환(cannon ball)형 : 원거리의 일정 장소를 목표 지점으로 정한 뒤, 동시에 출발해 목표에 도착하는 순서를 겨루는 폭주족.
    사행(蛇行·drift)형 : 폭이 넓은 도로나 교통이 한산한 교차로에서 급선회하거나 빠른 속도로 지그재그 주행하는 형태. 뱀처럼 오토바이를 세워 이동한다고 해서 붙은 명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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