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07

2009.10.20

“소비하고 싶어서, 위로받고 싶어서…”

심리학자와 소설가가 본 ‘한국인과 야구’

  •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swhang@yonsei.ac.kr

    입력2009-10-16 11: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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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매형’ ‘이웃집 언니’ 코드 마니아들의 유쾌한 반란

    “소비하고 싶어서, 위로받고 싶어서…”

    황상민<br>연세대 심리학과

    요즘 야구 경기장엔 빈자리를 찾아보기 힘들다. 지난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준우승 여파로 일어난 야구 열풍 때문이라고 한다. 2002년 월드컵으로 축구 붐이 불었을 때, 프로야구의 시대는 이제 갔다는 탄식이 들렸던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든다.

    경기불황으로 몸과 마음이 지친 국민이 미국이나 일본 같은 야구 대국을 상대로 당당히 승리하는 우리 선수들을 보면서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우리 야구팀이 지면 프로야구는 또 동면기로 들어갈 수 있다는 얘기 아닌가.

    혹시 구단들이 팬 서비스를 강화하면서 나타난 마케팅의 승리는 아닐까. 열심히 초대권과 할인권을 뿌리고 경품행사를 벌였기에? 그것만은 아닌 듯하다. 2009년 대한민국을 휩쓴 프로야구 열풍의 정체는 ‘야구’라는 경기를 소비하는 소비자 심리, 야구장을 찾는 각기 다른 야구 소비자의 속성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야구 관심 넘어서 새로운 소비행동



    야구 붐은 여러 현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야구공과 글러브 등 야구용품이 불티나게 팔리고, 야구동아리나 동호회에 가입하는 이가 급증했다. 야구연습장을 찾는 사람도 많다. 특히 야구에 관심이 없던 여성들이 야구장에서 열광적인 응원을 하고 있다. 남녀노소를 불문한 야구 열풍이다. 경기 규칙을 배우기 위해 야구 관련 카페를 찾는 사람도 늘고, 야구와 관련된 온라인 모바일 게임도 인기를 끈다.

    이런 현상은 특정 야구팀이나 선수에 대한 열광, 야구 자체에 대한 관심을 넘어선 것이다. 새로운 소비행동이 출현한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어떤 이유로, 무엇을 위해 야구장에 갈까. 전통적으로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야구 그 자체에 빠졌다. 소싯적엔 어린이야구단에 가입했고 명장면, 명승부, 명선수들의 기록에 훤했다. ‘야구 마니아’ 또는 ‘열 번째 선수’라고 불렸다. 그러다 보니 지금도 야구 경기를 보기 위해 회사나 학교를 조퇴하는 것은 기본이다. 야구를 통해 삶의 활력을 얻기도, 기가 죽기도 한다.

    ‘야구 마니아’와 유사하지만 조금 다른, ‘장외감독’으로 불리는 전문가급 골수분자도 있다. 이들은 연고팀과 상관없이, 오로지 이기는 팀을 좋아한다.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경기를 못하거나 지면 그 팀이 아니라 스스로를 ‘찌질’하다고 여긴다. 이들에게 자신이 지지하는 팀의 성적은 인생의 승패와도 같다. 그렇기에 거의 감독과 같은 마인드로 경기를 관람한다.

    이들에게는 야구팀의 성적이 모든 것을 결정하기에, 구단이 벌이는 ‘스포테인먼트(스포츠+엔터테인먼트)’ 전략이나 야구장에서의 다양한 이벤트에 거부감을 갖는다. 신성한 야구의 전당에 ‘수준’이 안 되는 이가 오면 야구의 질이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흥미롭게도 지금의 야구 열풍은 전통적으로 야구에 빠졌다고 생각하는 ‘야구 마니아’나 ‘장외감독’처럼 야구에 살고 죽는 이들이 만들어낸 게 아니다.

    야구뿐 아니라 야구장의 분위기, 야구장에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체험에 빠진 사람들이 열풍의 주인공이다. 소비자 심리의 측면에서 이들은 ‘우리 매형’ 또는 ‘이웃집 언니’라는 코드를 가진 야구팬이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경기 승패가 아니라 그냥 재미있게 즐기며 색다른 경험을 하는 것이다. 야구장의 맛있는 간식거리에서 야구의 또 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이들이다. 특정 야구팀의 팬이라기보다는 야구라는 서비스를 즐기는 고객이다.

    지금까지는 주말에 집에서 푹 쉬는 편을 택했지만, 이젠 야구장에 한번 가볼 생각을 하기 시작한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야구란 또 하나의 소비행위다. 이들의 소비행태는 물건의 가격보다 디자인을 중시하는 사람들과 비슷해 보인다. 이들은 힘들더라도 되도록 가족과 함께 즐기려고 노력한다. 삶에서 여가활동이 일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기에 집착하기보다는 야구장 방문에 의미를 부여하고 거기에서 즐거움을 찾는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경기장의 편의시설이다. 경기장에서 여러 소비활동과 이벤트에 참여하면서 야구장을 가족과의 추억의 장소로 만든다. 야구장 가는 것을 놀이공원에 가는 것과 다르지 않게 느끼는 소비심리를 보인다.

    “소비하고 싶어서, 위로받고 싶어서…”

    9월29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 롯데 자이언츠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 경기에서 응원전을 펼치는 두산 팬.

    이들에게 야구장은 멋들어진 데이트 장소이자, 콘서트나 뮤지컬 공연장처럼 새로운 문화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야구경기 또한 공연이나 예술, 문화의 한 장르로 받아들인다.

    한편으로 외롭고 공허한 삶을 살아온 이들은 야구장에서 또 다른 세상과 사람들을 만나고 연대감을 공유한다. 전통적인 야구 마니아가 아닌, 이들처럼 새로운 야구 소비자 집단이 야구장을 놀이공간, 휴식공간으로 생각하고 찾게 된다면 프로야구 열풍은 앞으로도 계속되고 최고 관중동원 기록도 거듭 갈아치울 것이다.

    공연이나 예술 문화의 한 장르로 인식

    지금의 야구 열풍은 단순히 야구라는 스포츠의 속성 때문만은 아니다. 야구라는 스포츠가 하나의 놀이가 되고 야구장이 놀이공간으로 변하면서 일어난 변화다. 따라서 프로야구 구단들도 이젠 스포츠 게임을 제공하는 수준이 아니라 야구라는 활동을 통해, 야구장이라는 공간을 통해 다양한 놀이와 체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구단들이 단순한 기업 홍보를 위한 수단에서 알짜기업 이상의 수익을 올리면서 또 다른 야구 중흥을 맞이할 때가 된 것 같다. 물론 그 미래는 구단들이 새롭게 만들어진 야구 소비자 집단의 소비심리와 소비행태를 얼마나 잘 파악하고 대응하느냐에 달려 있다.

    “위안이 필요할 때 우리는 야구장으로 간다”

    이건 뭐, 한반도가 야구판인 것 같다. 기존에 야구 좋아하던 사람들은 아예 미쳐 돌아가는 수준이 됐고, 어렵고 지루하다며 평소 야구를 외면하던 사람들도 언제 그랬느냐는 듯 야구장에 와서 치킨 뜯어가며 신나게 즐긴다. 심지어 나는 사회인 야구팀까지 만들어서 실제로 경기하고 있다.

    사회인 야구팀은 너무 늘어 운동장 잡기가 하늘의 별 따기고, 유니폼은 주문하면 한 달 이상 걸려야 나오는 상황이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야구의 매혹이 갑자기 모두에게 이해되기 시작한 것일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야구 안 좋아하면 한국인 아니라고 헌법이라도 바뀐 걸까? 아니라면 올림픽과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의 활약으로 조성된 일시적인 야구 붐에 불과한 걸까?

    결론을 모르는 알쏭달쏭함에 동질감

    그래서 한번 생각해보기로 했다. 왜 지난해와 올해 들어 유독 한국 사람들이 야구에 열광하는지. 프로야구만 놓고 보면 그동안 관중동원 능력이 있음에도 하위권이었던 팀들이 지난해와 올해 선전하고 있기 때문일 수 있다. 한국 야구 역사 100년, 프로야구 역사 29년 동안 야구인들이 피와 땀을 바쳐 뿌려온 씨앗이 이제야 질 높은 야구 문화로 꽃피는 것일 수도 있다.

    또 프로야구가 출범했을 때의 ‘야구소년’들이 이제 사회 중심세력이 되어 아내와 자녀들을 데리고 야구를 즐기기 때문일 수 있다. 더구나 야구광 총리가 등장할 만큼 도처에서 “야구” “야구” 하는 소리가 들리니 집단적으로 저변이 확대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확실한 건 없다. 야구라는 것 자체가 어차피 불확정성의 원리에 지배되고 있는 것 아닌가. 이상한 얘기로 들리겠지만 야구뿐 아니라 우리가 사는 우주 전체가 그 원리에 지배된다고 나는 알고 있다.

    그러니까 야구장의 부채꼴 모양 그라운드 안에는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원리가 작용하고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투수가 던진 시속 150km대의 공을 타자가 영점 몇 초 만에 판단하고 때려 홈런 타구로 만드는 건, 과학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그럼에도 올 한 해에 나는 수백 번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을 봤다. 수많은 변수가 승패를 가르고, ‘요기 베라’의 명언처럼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알쏭달쏭하고도 묘한 원리가 적용되는 것이 야구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야구 해설가로 이름난 하일성 전 한국야구위원회(KBO) 사무총장 역시 이런 명언을 남긴 적이 있다.

    “야구, 몰라요.”

    그러니까 왜 갑자기 야구 붐이 온 건지 사실 나로선 모르겠다. 어쩌면 모른다는 게 정답에 가까울지 모르겠다. 하지만 누군가가 왜 밥도 안 먹고 야구를 보며, 왜 그렇게 야구라면 미쳐 돌아가느냐고 나에게 뱀눈을 뜨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다.

    “소비하고 싶어서, 위로받고 싶어서…”
    “야구가 절 위로해주니까요.”

    책 잘 안 읽는 한국에서 소설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나 같은 인생은 비루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분명 위로가 필요하다. 야구는 훌륭히 그 역할을 해준다. 야구라는 드라마는 소설 쓰기만큼 재미있고, 응원하는 팀이 이기기라도 하면 만사가 행복해진다. 그런 걸 매주 6일이나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이젠 우리 팀과 싸우고 있는 상대 팀 투수가 잘 던지면 마음속으로 ‘대한민국에 저런 투수가 있다니, 메이저리그에서도 통할 것 같아!’ 하면서 흐뭇해할 정도가 됐다.

    확실히 야구는 지역으로 갈라진 ‘팬심’만으로 이해할 수 없는 불확정성의 원리가 지배하는 양자역학적 공간이다. 개인적으로 지금의 한국 사회를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면에서 어디로 가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보수와 진보의 논리가 팽팽히 맞서 있고, 어느 쪽의 결론도 완전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국제정세에 크게 영향을 받는 우리나라의 경제상황도 예측 불가능한 위치에서 조각배처럼 흔들리고 있다.

    그런 심리 때문에 야구라는 스포츠의 불확정적인 성격이 주는 알쏭달쏭함에 동질감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한국 사람이 야구에서 위로받은 사례는 수없이 많다. 암울한 군사정권 시절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서 들려오던 기분 좋은 승리 소식이나, 상대적으로 낙후하고 광주민주화항쟁 무력진압으로 피눈물까지 흘려야 했던 땅인 호남을 연고로 9번이나 우승을 일궈내며 그들을 위로한 타이거즈의 한 맺힌 선전,

    외환위기의 고통으로 손발이 오그라들 때 박찬호가 코리안 특급으로 메이저리그 마운드에서 불같은 강속구를 뿌리며 승리를 거두면 느낄 수 있던 통쾌한 오르가슴, 최근의 정치적 불안과 각종 사회 부조리에 상처받은 민심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과 WBC 준우승으로 어루만져줄 때의 환희까지 우리 민족은 야구를 통해 많은 위로를 받았다. 그렇다면 반대로 야구가 이토록 인기 있다면 뭔가 국민이 위로받아야 하는 상황이라는 얘기와 다를 바 없다. 이 둘은 참 공교롭게도 비례해왔다.

    ‘세상에서 제일 큰 노래방’에 감동 추가

    야구에는 ‘본 헤드 플레이(bone head play)’라는 용어가 있다. 이 용어를 넓게 의역하면 ‘얼간이 짓’ ‘멍청한 짓’쯤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는 국가가 본 헤드 플레이를 하길 바라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정치사회는 본 헤드 플레이를 하고 있는 것과 유사한 상황이다. 그래서 위로를 받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내 정치 성향으로는 민주주의를 일궈낸 두 대통령을 잃은 비극적인 현실 때문일 수 있겠고, 청년실업 문제나 서민경제 파탄과 생활의 빡빡함 때문에 죽을 지경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뭐가 됐든 대다수 국민은 분출구가 필요하고, 마음의 위안을 요구하고 있는 상태인 것 같다. 나로선 요즘 “어휴~” 하는 한탄이 저절로 나오는 계절을 보내고 있다. 야구를 마구 많이 봐야 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전쟁으로 피폐한 국토에서 기적적인 경제발전이라는 적시타를 때려낸 민족이다. 야구로 치면 ‘사이클링 히트’ ‘노히트 노런’ 같은 대기록을 세웠거나 짜릿한 역전 드라마를 펼친 것이다. 그런데 빌어먹을 가난과 짜증나는 약소국의 서러움에서 벗어나 선진국으로 도약하기에 앞서 주춤하고 있다.

    그래서 무슨 이유에서든 우리는 또 과거의 역전 드라마를 보고 싶어졌고, 거기에서 위로를 얻길 바라는 심리가 발걸음을 야구장으로 향하게 하는 게 아닌가 싶다. 가서 마음껏 소리치고, 노래 부르고, 울분을 토해내거나 TV 중계화면 앞에 앉아 희열을 되새김질하고 싶은 것이다. 바로 지금이 야구에 위로받고 이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회한을 풀고 싶어 하는 시기라는 얘기다. 좀 과장된 얘기일 수 있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야구장은 불확정성의 원리가 지배하긴 하지만 결코 부조리한 공간이 아니다. 그 둘은 대단히 다르다. 야구라는 부조리 없는 룰로 짜인 촘촘한 천연색 그라운드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위로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야구 외에 달리 우리를 위로할 수 있는 문화가 없다는 것도 한 이유가 될 듯하다.

    기껏해야 노래방이나 술집밖에 없는 문화에, 야구장이라는 건 허구연 해설위원 말대로 세상에서 가장 큰 노래방도 되고, 옹기종기 모여 잔을 부딪치는 술집도 되고, 조금만 알면 짜릿하고 감동적인 야구라는 스포츠드라마까지 즐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야구 붐이 일어날 수밖에.

    소설가 박상(37)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출신으로 200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짝짝이 구두와 고양이와 하드락’으로 등단해 ‘홈런왕 B’ ‘외계로 사라질 테다’ 등 주로 야구를 소재로 한 단편을 발표했다. 최근에는 야구를 소재로 한 소설집 ‘이원식 씨의 타격 폼’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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