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02

2009.09.08

사회의 중병, 빈곤 퇴치 세 가지 방법

‘빈곤론’

  •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khhan21@hanmail.net

    입력2009-09-02 14: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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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의 중병, 빈곤 퇴치 세 가지 방법

    가와카미 하지메 지음/ 송태욱 옮김/ 꾸리에 펴냄/ 256쪽/ 1만5000원

    일본을 다녀올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다. 일본에서는 이슈가 제기될 때마다 그 이슈에 관한 책을 다양하게 쏟아낸다는 것이다. 최근엔 ‘격차(格差)사회’에 대한 책이 눈에 띄게 출간되고 있다.

    일본의 꿈은 ‘1억총중류사회’였다. 일본의 과거 집권층은 1억명, 즉 모든 국민이 중산층이 되어 잘사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제시했다.

    그러나 버블 붕괴와 장기간의 불황으로 인한 구조개혁에다 글로벌 금융위기마저 덮치면서 경제상황은 나빠지고, 중산층은 급격히 붕괴했다. 이에 따라 경제나 사회의 양극화가 극심해졌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격차사회’라는 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세상이 됐다.

    일본도 경기침체와 더불어 고령화가 진전되면서 양극화의 피해는 고스란히 젊은 세대에게 돌아갔다. 중장년 세대는 이미 확실한 일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젊은이들에게는 시간제 아르바이트 외에 마땅한 일자리가 주어지지 않는다.

    ‘고이즈미 구조개혁’이 강화된 이후 2008년에는 파견직이나 계약직 등 극단적인 저임금의 비정규직이 전체 노동자의 37.9%에 이르렀고, 정규직도 노동시간 증가 등으로 근무조건이 악화됐다. 게다가 사회보장도 계속 줄어들어 ‘격차와 빈곤’은 견디기 힘들 만큼 증대됐다. 이런 상황에서 격차사회를 해소하려는 대안이 책이나 잡지를 통해 제기됐다. 그런 책 가운데 하나가 가와카미 하지메의 ‘빈곤론’이다.



    이 책은 저자가 ‘오사카 아사히신문’에 1916년 9월11일부터 26일까지 기고한 것을 묶어 1917년에 펴냈던 것인데 프롤레타리아 소설 ‘게공선(蟹工船)’(고바야시 다키지)이 밀리언셀러에 오르며 인기를 끈 이후 다시 출간돼 벌써 40만부나 팔렸다고 한다. 이 책이 쓰일 무렵은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었다. 서구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이 영국과 독일의 두 블록으로 나뉘어 사투를 벌이는 가운데 일본은 그 틈을 누비며 수출을 늘리고 자본을 축적하면서 벼락부자를 양산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물가가 급등, 수많은 사람이 생활고에 시달리는 등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방대한 빈곤층이 형성됐다. 이런 시기에 37세의 탁월한 경제학자가 ‘가난(빈곤)이야말로 사회의 중병’이라고 간파하고 그 대책을 신문에 연재했으니 인기를 끈 것은 당연하다. 당시만 해도 자본주의 최선진국 영국은 전체 인구의 65%에 해당하는 극빈층이 실제 소유하고 있는 부(富)가 1.7%에 불과했지만 최상위층 2%가 소유한 부는 72%나 됐다.

    가와카미 하지메는 프랑스의 최상위층은 60% 이상, 독일은 59% 이상, 미국은 57%를 차지했다는 것을 구체적인 통계를 인용해 밝히면서 일본이 그 길을 따라가서는 안 된다며 대안을 제시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 수 없지만 빵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입장에서 제시하는 저자의 가난퇴치 해결책은 세 가지다. 첫째, 세상의 부자들이 자발적으로 모든 사치스러운 생활을 그만두는 것.

    둘째, 현격한 빈부의 차를 줄여서 사람들의 소득격차를 좁히는 것. 셋째, 각종 생산업을 개인의 돈벌이에만 맡겨두지 말고, 군비(軍費)나 교육처럼 국가가 그것을 담당하도록 경제조직을 개조하는 것이다. 당시 일본에서 가장 뛰어난 마르크스 경제학자가 내놓은 대안치고는 별로 받아들일 만한 것이 없다. 그가 최우선 해결책으로 내놓은 것은 부자들이 사치를 근절하면 사회의 생산력이 사치품이 아닌 생활필수품을 생산하게 되므로 빈곤이 해결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대안이라고 할 수도 없다. 가난이 부자들의 너그러운 ‘인심 개조’로 해결될 수 있다면 빈부격차는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도 이에 대한 비판을 수용해 30쇄 이상 찍으며 잘 팔리던 책을 스스로 절판했다. 그런데 일본인들은 왜 이 책을 다시 읽게 됐을까. 그들 또한 이 책에서 대안을 찾으려고 한 건 아닐 것이다.

    돈이 없어 인간의 존엄성이 무너지는 현실을 개탄하며 통찰력 있는 글을 쓰려 했던 한 학자의 진정성과 자신의 글에 대한 한계를 인정하고 그것을 극복해 완결된 이론을 내놓으려 처음부터 다시 공부하겠다고 밝힌 인간성에 감동해서가 아닐까. 이 책을 절판한 이후 저자는 진리에만 충실하고 진리 앞에서는 모든 사심을 버리는 삶을 살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아직 여행의 먼지도 떨지 못했는데 다시 새로운 여행을 떠나는구나”라는 노래를 부른 뒤 4년간 마르크스주의의 정수 습득에 정진했기에 ‘자본론 입문’ ‘경제학 입문’ 등의 획기적인 저서를 내놓을 수 있었다. 나 또한 이 책을 읽으면서 한 학문이 탄생하는 실마리를 들여다볼 수 있어 즐거웠으나 다른 한편 매우 아쉬웠다. 왜 우리에게는 이런 선구적 학자가 없을까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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