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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 강유정의 ‘영화에 수작 걸기’

패션 신화의 숨기고 싶은 젊은 날

안 퐁텐 감독의 ‘코코 샤넬’

  • 강유정 영화평론가·국문학 박사 noxkang@hanmail.net

패션 신화의 숨기고 싶은 젊은 날

패션 신화의 숨기고 싶은 젊은 날

패션코드의 창조자 코코 샤넬은 어린 시절 언니와 함께 고아원에서 자랐다.

샤넬, 그것은 현대 여성이 꿈꾸는 욕망의 이름이다. 샤넬 로고가 달린 체인백은 수백만원을 호가하지만 혼수 1순위로 회자된다. 현실적으로 갖기는 어렵지만 ‘결혼’이라는 이벤트를 통해서라도 얻고 싶은 사치품, 그 이름이 바로 샤넬이다. 그런 샤넬의 삶을 안 퐁텐 감독이 영화화했다.

사람들은 기대한다. ‘섹스 앤더 시티’처럼 샤넬 하우스의 멋진 옷들을 실컷 눈요기할 기회가 되지 않을까, 아니면 잘 알려지지 않은 샤넬의 일대기 그 비밀을 엿보게 되지 않을까, 라고 말이다. 우선 대답부터 하자면 이 영화 ‘코코 샤넬’은 제목처럼 샤넬이라는 사람에 관한 영화지만 샤넬의 화려한 컬렉션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접는 편이 나을 듯싶다.

영화는 우울한 눈빛을 한 채 고아원으로 가는 두 자매의 모습에서 시작된다. 코코 샤넬과 그의 언니는 고아원에서 자랐다. 아버지가 있기는 했지만 부랑자였고, 그들에게 아버지는 있으나 마나 한 존재였다. 세계의 최고급 패션 상품을 만들고, 재클린 같은 상류계층 여성이나 매릴린 먼로 같은 유명 배우가 즐기던 패션 코드의 창조자에게는 어딘가 남루한 유년기다.

그렇다. 영화 ‘코코 샤넬’은 샤넬조차도 숨기고 싶어 했던 그의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을 그려낸 작품이다. 기대나 예상과 달리 젊은 시절의 샤넬, 가브리엘 샤넬의 삶은 초라하고 볼품없다. 고아원에서 벗어난 샤넬은 시골의 조그만 술집에서 노래를 부르고, 봉제사로 일한다. 벌이도 시시하고 사람들에게서 받는 대우도 형편없다.

그런 그에게 탈출의 기회가 생기니, 돈 많은 귀족 발장이 그를 마음에 들어 했기 때문. 가브리엘 샤넬은 무작정 발장의 집을 찾아간다. 발장은 그를 불량과자처럼 집 안에 숨겨 두고 야금야금 즐긴다. 공식적인 자리가 있을 때 샤넬은 숨어 있거나 가수처럼 노래를 불러야 한다. 그러면서도 발장은 시시때때로 나갈 테면 나가라고 으름장이다. 가브리엘은 그곳을 나간다고 해도 더 나을 것이 없기에 발장의 숨겨진 정부 노릇을 하며 별장 한구석을 차지하고 지낸다.



스크린 위에 묘사되는 코코 샤넬의 젊은 시절에는 낭만도, 희망도 없어 보인다. 코코가 아닌 가브리엘로 살아가던 시절 그는 젊은 육체 말고는 밑천 삼을 것이 없는 가난한 배우 지망생에 불과했다. 게다가 자신이 무엇을 꿈꾸는지도 모른다. 영화의 중간 중간 복색이나 디자인에 관심을 갖는 그가 스쳐지나가긴 하지만 그저 그가 잘하는 일의 하나 정도일 뿐 그다지 열정은 없다.

코코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직업을 갖고 싶어 한다. 좀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그는 부자가 되고 싶어 할 뿐이다. 더욱 씁쓸한 것은 가브리엘 샤넬이 코코 샤넬로 성장할 수 있었던 계기가 발장이라는 유한 건달의 도움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여성이, 게다가 귀족이 아닌 여성이 사회에 진출하는 게 거의 불가능한 시대였다고는 해도 영화 속에서 그려진 샤넬의 행동은 자신의 젊음과 신체를 빌미로 성공하려는 여자들의 행태와 다르지 않다.

이 씁쓸함은 샤넬이 자신의 꿈을 현실화하기 위해 노력했다기보다는 막연히 ‘성공’하려 했다는 사실과도 통한다. 그는 전리품처럼 발장에게서 아서 펠터에게로 ‘대여’돼 아서 펠터의 정부로 지낸다.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하지만 유부남의 정부로 지냈다는 점, 그리고 그나마도 사업을 일으킬 수 있을 종잣돈이 유부남 애인의 지원 덕이었다는 사실은 ‘샤넬’이라는 이름을 모토로 삼았던, 일하는 젊은 여성들의 기를 꺾는다.

여성들은 코코 샤넬의 일대기에서 그를 세계적 브랜드의 주인공으로 만든 열정과 노력을 보고 싶기 때문이다. 돈 많은 남자에 기생하면서 출세의 욕망을 불사르는 샤넬의 모습은 우리가 지금, 오히려 멀리하고픈 여성형에 가깝다. 분명 세계적 디자이너로 성장했을 때 샤넬에게는 낭만적 사랑이 아닌 다른 노력과 충동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영화 ‘코코 샤넬’은 그 점을 지나쳐버린다. 샤넬은 종종 자신의 어린 시절을 거짓으로 꾸며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쩌면 그 만들어진 이야기에 더 중요한 진실이 담겨 있을지도 모르겠다.



주간동아 2009.09.08 702호 (p80~80)

강유정 영화평론가·국문학 박사 noxk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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