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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 특목고 파워 특목고 인맥 07

“경쟁에서 살아남는 법, 그것이 나를 키웠다”

특목고 출신이 말하는 특목고의 속살 … ‘SKY 진학’에 바친 달콤씁쓸 고교시절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경쟁에서 살아남는 법, 그것이 나를 키웠다”

“경쟁에서 살아남는 법, 그것이 나를 키웠다”
한영외고를 졸업한 서울대생 조모(24) 양은 얼마 전 고교 동창회에 참석했다. 하지만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다는 반가움은 그리 크지 않았다.

참석자 대부분이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에 다니는 이른바 명문대 학생들로, 평소에도 자주 보는 사이였기 때문이다. 조양과 고등학교 때 한 반이던 친구들 중 절반 이상은 이들 세 대학, 일명 ‘스카이’(SKY, 서울·고려·연세대의 약자)에 진학했다.

“스카이에 못 간 친구들은 아예 동창회에 나오지 않는 분위기예요. 최소 성균관대는 다녀야 모임에서 볼 수 있지요.”

‘외고시절’을 되돌아볼 때마다 조양은 달콤함과 씁쓸함을 동시에 느낀다. 엘리트 집단에 속한다는 자부심을 누린 반면, 잘사는 친구들 사이에 끼어 의기소침해지기도 했다. 조양은 “엄마 몰래 용돈을 아껴 모아놓곤 했다”고 회상했다. 일반고보다 몇 배 비싼 학비 때문에 허리가 휘는 부모에게 손을 벌리지 않으면서도 패밀리 레스토랑을 즐겨 찾는 친구들과 어울리려면 그 방법밖에 없었다. 그는“부모가 의사이거나 외국계 금융회사에 다녀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친구들은 새벽까지 과외수업을 받고 학교에선 졸았다”며 “그런 모습을 보면서 상대적 박탈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힘들었지만 외고 졸업 잘한 일”



‘주간동아’는 특목고 출신들이 말하는 ‘특목고 경험담’을 듣기 위해 과학고 및 외국어고 졸업생 15명을 인터뷰했다. 이들은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카이스트 혹은 외국의 유명 대학에 재학 중이거나 졸업한 20대 초중반의 젊은이들이다.

특기할 사항은 외고 출신은 고교시절 전공한 외국어와 현재의 진로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영어과를 나와 행정고시를 준비하고 있거나, 독어과를 졸업한 뒤 의대나 한의대에 진학한 식이다. 그러나 고교시절 공부한 외국어가 지금은 그다지 쓸모 있지 않더라도 이들은 “외고 다닌 것은 잘한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서울 소재 외고 영어과를 나온 고려대 법대생 김민지(20) 양은 “고등학교 때 쟁쟁한 친구들과 겨루며 경쟁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몸에 익혔는데, 그게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대원외고를 나온 뒤 서울대에 진학한 안형수(21) 군도 “고교시절 모두가 열심히 공부하자는 분위기여서 시너지 효과가 났다”고 평했다.

지방대 의대에 다니는 이모(21) 군은 “외고시절 영어원서 읽는 훈련을 많이 했는데, 덕분에 영어원서 위주의 의대 공부에서 일반고나 과학고 출신보다 유리하다”며 ‘외고 경력’의 이점을 평가했다. 외고 출신들은 외고가 외국어로 특화된 학교라기보다 명문대 진학률이 높은 명문고교라는 현실에 동의한다.

서울 소재 외고에서 프랑스어를 전공한 서모(20) 양은 “2학년 때까지는 프랑스어를 많이 배웠지만 3학년 때는 대학입시 준비로 거의 진도를 나가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토플(TOEFL)과 텝스(TEPS) 점수를 따느라 프랑스어 과목을 챙겨들을 수 없었다는 것.

명덕외고 졸업생 고모(24) 군은 “일주일에 7시간인 전공 외국어 수업 중 회화시간은 1시간에 그쳤다”며 “외국어 구사력이 뛰어난 인재를 양성하기엔 커리큘럼이 많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한영외고 졸업생 장모(21) 군은 “3학년 때는 전공 외국어 시간에 줄곧 자습을 했다”고 귀띔했다.

‘명문대 다음엔 좋은 직장’ 쟁취해야

모든 경쟁에는 탈락자가 있는 법. 특목고, 특히 외고 출신들에게는 ‘자퇴 동기’가 꼭 있게 마련이다. 외고 졸업 후 의대에 진학한 김모(23) 양은 “반마다 한두 명은 내신성적 때문에 의욕을 잃은 채 자퇴하거나 일반고로 전학을 갔다”고 전했다. 외고 자퇴생인 배모(24·한국외대) 군은 “동기 180명 중 10여 명이 자퇴했다”며 “내신성적 때문인 아이들과 경쟁이 지나친 외고 문화에 적응 못한 아이들이 반반”이라고 말했다.

“동창 중 한 명은 미술을 하고 싶었지만, 의사인 부모의 강요로 외고에 왔어요. 하지만 지나친 경쟁에 힘들어하다가 결국 자퇴를 했고, 지금은 미대에 다니고 있습니다.”(서울대생 조양)

“자존심이 강하거나 성격이 여린 친구들은 경쟁이 심한 외고에서 잘 버티지 못해요. 원형탈모증 등 각종 스트레스성 질환에 시달리는 애들이 더러 있었는데, 결국 자퇴하거나 전학을 가더라고요.”(서울 소재 외고를 졸업한 송모(19) 양)

과학고에서 낙오자는 대부분 3학년까지 다닌다. 80%의 과고생들이 조기졸업제를 이용, 2학년을 마친 뒤 대학에 진학하기 때문이다. 경기과학고를 졸업한 뒤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으로 유학을 간 이모(20) 군은 “3년에 배울 내용을 2년에 소화하느라 늘 시간에 쫓겼다”고 털어놨다.

“저는 조기졸업한 대다수 동기와 달리 학교에 남아 3학년에 올라갔습니다. 그때 괜한 열등감과 소외감이 많이 생겼어요. 더욱이 정규수업을 2학년 때 다 마친 터라 3학년 내내 별로 할 게 없어 괴로웠고요.” 특목고 출신들은 ‘특목고 인맥’에 대한 기대가 크다. 사회 각 분야의 ‘맨 앞자리’를 지키고 있는 선후배들이 훗날 보이지 않는 자산이 될 것이라는 희망이다.

과학고 출신의 이모(20) 군은 “확실히 일반고보다 선배들이 후배들을 잘 챙겨주는 분위기”라며 “얼마 전 열린 동문회에서는 사회에 진출한 선배들이 대학생 후배들을 위한 진로설명회를 열어줬다”고 뿌듯해했다. 대원외고 출신의 김모(21) 양은 “외고를 간 것은 우수한 인맥을 쌓을 수 있기 때문”이라며 “먼저 사회에 진출한 선배들이 앞으로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특목고 인맥을 특목고 출신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주류’에 들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동문회에서 배제되기 때문에 우선 명문대 진학을, 다음엔 좋은 직장을 쟁취해야 한다. 외고 출신의 금융업계 종사자 이모(34) 씨는 “동문회를 주도했던 외고 선배가 지난해 금융위기 여파로 구조조정 당한 뒤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며 씁쓸해했다. 특목고 출신들은 졸업 후에도 여전히 고교시절의 살벌한 경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 기사의 취재에는 동아일보 대학생 인턴기자 배기환(서울대 영어영문학과 3학년)·이종현(연세대 신문방송학과 4학년) 씨, 주간동아 대학생 인턴기자 신지나(경희대 언론정보학부 2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주간동아 2009.08.04 697호 (p36~37)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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