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95

2009.07.21

“뇌성마비라도 행복, 나는 살고 싶다”

‘아빠, 나를 죽이지 마세요’

  • 왕상한 서강대 법학부 교수 shwang@sogang.ac.kr

    입력2009-07-15 16: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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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뇌성마비라도 행복, 나는 살고 싶다”

    테리 트루먼 지음/ 천미나 옮김/ 책과콩나무 펴냄/ 168쪽/ 9800원

    ‘아빠, 나를 죽이지 마세요.’ 제목부터 섬뜩하다. 여름이니 추리소설로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우선 표지가 예쁘다. 추리소설 같은 책의 표지가 동화책처럼 생겼으니 더욱 호기심이 간다.

    이 책 주인공은 숀 멕다니엘. 열네 살. 최중증 장애아이다. 거의 식물인간과 다름없다. 숀은 태어날 때 뇌에 손상을 입었다. 자신의 의지로는 손가락 하나, 눈동자 하나 움직이지 못한다.

    아이큐 1.2, 정신연령은 3~4개월. 뇌성마비에 식물인간, 지적 장애아. 일반인이 보기엔 한마디로 저능아에 바보천치다. 게다가 하루에도 몇 번씩 끔찍한 고통을 동반하는 발작까지 일으킨다.

    그런데 이 아이는 특별하다. 비록 아무 말도 못하지만, 또 자기 자신을 가눌 수 있는 힘도 없지만 모든 것을 기억하는 천재다. 숀은 아버지가 자기를 죽이려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보통 사람들 눈에는 숀의 삶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보통 사람들은 이런 상태로 계속 사느니 죽는 게 나을지 모른다고 생각할 수 있다. 숀의 아버지도 그렇게 생각했다. 책은 숀의 독백으로 시작, 숀의 독백으로 끝난다. ‘아빠, 사랑해요’를 수없이 말하던 소년이 ‘아빠, 제발 죽이지 마세요’를 애처롭게 말한다.



    이쯤 얘기하면 정말 추리소설인 것 같다. 하지만 아니다. 너무나 가슴 아픈 이야기를 담은 청소년 소설이다. 작가의 현실에 바탕을 둔 것이기에 전해오는 감동이 더욱 크다. 저자 테리 트루먼에겐 실제로 숀과 똑같은 증상을 지닌 뇌성마비 아들이 있다.

    책 속 아버지처럼 트루먼도 자기 아들을 주인공으로 한 시 ‘쉬한’을 발표하기도 했다. 작품 속 아버지의 고민과 아픔이 그저 가슴 아픈 사연이 아니라, 구구절절 현실 이야기로 독자의 마음에 생생하고 진솔하게 와닿는 것은 작가의 이야기를 소재로 했기 때문이리라. 청소년 소설로 분류했지만, 청소년은 물론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꼭 읽어봐야 할 책이다.

    ‘저능아 식물인간’으로 분류된 숀이지만, 그에겐 한 번 들은 말은 모조리 기억하는 재능이 있다. 감수성도 예민하다. 그러니 마음의 상처가 깊을 법도 한데 그 독백을 읽다 보면 성숙함마저 느껴진다. 남다른 유머감각과 통찰력도 갖고 있다. 하지만 남들은 숀이 휠체어에 의지하고, 표현을 못하는 장애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올바른 생각을 하지 못한다고 여긴다.

    그에게 뛰어난 능력이 있다는 걸 알지 못하는 건 물론이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남들에게서 사랑받고 싶은 열네 살 아이 숀. 그는 진심으로 가족을 사랑하기에 아빠와 엄마, 형제들에게 ‘사랑해요’라는 말을 끝없이 외친다. 하지만 숀의 이런 모든 외침은 들리지 않으니 공허한 메아리와 같다.

    뇌성마비 식물인간을 가족으로 둔 사람들의 고통은 오죽할까. 숀이 고통받는 모습을 보다 못한 아빠는 아내와 갈등하다 결국 이혼하고 가족을 떠난다. 숀은 자책한다. 자신 때문에 아빠가 떠났다고. 하지만 아들에 대한 아빠의 사랑엔 변함이 없다. 다만 아빠의 ‘사랑법’은 일반인과 다르지 않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고통을 동반하는 아들의 발작을 보면서 아빠는 괴로움을 덜어주기 위해 안락사를 고민한다. 그래서 정신지체아 아들을 죽이고 감옥에 수용된 사람과 만나 그와의 인터뷰를 통해 안락사에 대한 필요성을 이슈화한다.

    안락사. 생존 가능성이 없는 병자의 고통을 덜어주려고 인위적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일. 현재 전 세계적으로 첨예하게 대립하는 문제 중 하나다. 우리나라도 그렇다. 얼마 전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이 ‘존엄사’를 선택했고, 서울대병원에서는 그동안 관행적으로 이뤄지던 존엄사를 허용하기로 결정했다.

    또 5월21일 대법원은 존엄사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적어도 소극적 안락사인 존엄사에 대해서는 이를 허용하는 쪽으로 여론이 형성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안락사를 찬성하는 쪽이나 반대하는 쪽 모두 입장이 극명하게 갈리고 둘의 주장 모두 일리가 있다.

    아빠의 눈에도 숀의 삶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인다. 이런 상태로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 아들의 고통을 끝낼 수만 있다면 어떤 일이라도 하겠다고 아빠는 결심한다. 설령 그 일이 하느님에게조차 용서받지 못할 일이라도. 그런 아빠를 바라보는 숀의 두려움과 공포는 크기만 하다. 꿈에서도 아빠를 만나면 ‘사랑해요’라고 하던 숀은 이제 ‘아빠, 제발 저를 죽이지 마세요’라고 말한다.

    이 책은 장애와 안락사 문제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 이면에 더 중요한 메시지가 있다. 사랑에는 책임이 따른다. 부모의 사랑엔 한계가 없다고 했다. 죽음으로 자녀의 고통을 끝낼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것까지 사랑의 범위에 포함시켜야 할까?

    “이런 나에게도 삶은 아름답다. 죽고 싶지 않다. 살고 싶다”는 숀의 외침은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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