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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철 교수의 5분 한국사

“감사와 수령은 대도(大盜)요, 향리는 굶주린 솔개와 같다”

‘박연차 리스트’, 장애인 지원금 횡령 공무원들 茶山 시절 비리 판박이

  • 이영철 목원대 겸임교수·역사학 hanguksaok@hanmail.net

“감사와 수령은 대도(大盜)요, 향리는 굶주린 솔개와 같다”

“감사와 수령은 대도(大盜)요, 향리는 굶주린 솔개와 같다”

다산은 ‘목민심서’에서 조선 관료사회의 총체적 부정을 지적했다.

● 역사상 명멸한 왕조와 국가의 공통된 멸망 원인으로 부정부패를 들 수 있다. ‘삼국사기’ 고이왕 본기를 보면 “관리로서 공사에 뇌물을 받거나 도적질을 한 자는 3배를 배상케 하고 종신토록 금고형에 처한다(宮人 受財及盜者 三倍徵贓 禁錮終身)”고 명시돼 있다. 이처럼 고대사회에도 관료가 뇌물을 받거나 도적질을 할 경우는 단순한 절도와는 달리 무겁게 처벌했다.

고려 전기 권신인 이자량(李資諒·?~1123)과 이자겸(李資謙·?~1126) 형제는 권력을 이용해 힘없는 농민들의 토지를 불법으로 빼앗아 부정축재를 일삼았다. ‘고려사’ 이자겸 열전을 보자.

“자기 족속을 요직에 포열(布列)하고 관작을 팔았으며, 당인을 많이 심어 스스로 국공(國公)이 되고 예우를 왕태자와 같게 하며, 그 생일을 인수절(仁壽節)이라 부르고 내외가 하례하는 글도 전(箋)이라 칭하게 하였다. 여러 아들들이 다투어 제택(第宅)을 지어 가로에 잇닿았고, 권세가 더욱 성하게 됨에 뇌물이 공공연하게 행하여져 사방에서 선물이 모여들어 썩어가는 고기가 항상 수만 근이나 되었다. 남의 전토를 강탈하고, 그 종들을 내놓아 차마(車馬)를 노략하여 자기의 물건을 수송하니 주민들이 모두 수레를 부수고 소, 말을 팔아 도로가 소란스러웠다.”

이러한 물욕과 권력욕은 급기야 ‘목자득국설(木子得國說)’로 이어져 왕위를 노리기까지 했으나 실패하고 유배지인 영광에서 쓸쓸히 죽고 말았다.

골계전 ‘돼지가 삼킨 폭포’는 서글픈 현실 반영



조선 전기 문신 사가정(四佳亭) 서거정(徐居正·1420~1488)이 편찬한 설화집인 ‘태평한화골계전(太平閑話滑稽傳)’은 민간에 떠돌아다니는 이야기를 채록한 설화문학이다. 흔히 ‘골계전’으로 불리는 이 익살맞은 설화집은 주로 부정부패한 탐관오리와 호색담 등을 짤막한 콩트로 이어가는데 향인, 서당 훈장, 승려, 기생 등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그런데 내용을 분석해보면 꾸며낸 이야기라기보다는 당대에 활약한 역사적 인물이 많아 실화에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골계전’ 중 ‘돼지가 삼킨 폭포(猪喫瀑布)’라는 일화는 당시 만연한 부정부패를 엿볼 수 있는 대표적 작품이다. 얘기인즉 어느 탐관오리가 진양의 수령이 됐는데 얼마나 착취가 지독했는지 산골의 과일과 채소조차 남아나지를 않았고, 절에 있는 승려들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루는 수령이 “네 절의 폭포가 좋더라”라고 했다. 아둔한 승려는 폭포가 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그걸 세금으로 거둬들이려 하는구나 싶어 “저희 절에 있는 폭포는 금년 여름에 돼지가 다 먹어버렸습니다”라고 했다. 참으로 포복절도(抱腹絶倒)하면서도 서글픈 알레고리가 아닐 수 없다.

세도정치기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1762~1836)은 전라도 강진에서 18년 유배생활을 하면서 자기 시대를 철저히 고민했는데, 당시 한 백성이 아이를 낳은 지 사흘 만에 군정의 문란으로 군보(軍保)에 등록되고 군포가 체납돼 이정(里正)이 소를 빼앗아가자 자신의 생식기를 칼로 잘라버렸다. 이 기막힌 얘기를 듣고 다산은 번민과 울분 속에서 오징어 먹물로 ‘애절양(哀絶陽)’이라는 시를 지었다.

갈밭마을 젊은 여인 울음도 서러워라

현문 향해 울부짖다 하늘 보고 호소하네

시아버지 죽어서 이미 상복 입었고

갓난아인 배냇물도 안 말랐는데

삼대의 이름이 군적에 실리다니

남편 문득 칼을 갈아 방 안으로 뛰어들자

붉은 피 자리에 낭자하구나

스스로 한탄하네 “아이 낳은 죄로구나”

말·돼지 거세함도 가엾다 이르는데

하물며 뒤를 잇는 사람에 있어서랴

다 같은 백성인데 이다지 불공한고

객창에서 거듭거듭 시구편을 읊노라

다산은 유배에서 풀리던 해 저술한 ‘목민심서’에서 “부정부패의 근원은 조정의 권귀(權貴)들이 뇌물을 받고, 감사가 스스로 축재하며, 수령이 이익을 나누는 데 있다”고 하여 조선 관료사회의 총체적 부정을 지적했다. 이러한 부정부패에 대해 지배층은 하나같이 탐관오리야말로 나라와 백성을 죽이는 원수이며 국가를 멸망시키는 반역자라고 규탄했지만, 어디까지나 허울뿐인 공염불에 지나지 않았다.

비리 관료는 죽어도 처자식 재산까지 강제 몰수

“감사와 수령은 대도(大盜)요, 향리는 굶주린 솔개와 같다”

조선시대 관아에서 재판과 처벌을 하는 광경. 칼을 쓰고 차례를 기다리는 죄인, 볼기형을 당하는 죄인, 이제 막 잡혀서 머리를 붙잡혀 끌려오는 죄인 등 당시 상황을 생동감 있게 재현했다.

최근 경쟁이라도 하듯 공직자들의 각종 부정부패가 연이어 터져나왔다. 전 정부의 수석비서관과 차관이 금품을 받은 혐의로 체포되는 등 ‘박연차 리스트’가 연일 신문 1면을 장식하고, 서울의 구청 직원이 3년 동안 장애인 보조금인 복지예산을 횡령해 명품과 외제차를 사고 해외여행까지 했다. 같은 구청의 직원은 저소득층 학생의 장학금도 횡령했다고 한다. 또 다른 구청의 직원은 뉴타운 개발 과정에서 공원용지로 수용되는 토지보상금을 높게 책정해주고 억대의 금품을 수뢰한 혐의로 체포됐다.

그뿐 아니다. 전라도 어느 시골 읍 소재지의 여직원은 5년간 기초생활 수급 대상자에게 지급할 복지급여를 횡령해 부동산을 매입했고, 서울 강남의 어느 경찰관은 안마시술소 여성 업주와 유착해 내연관계를 넘어 성매매 사업에 지분 투자까지 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니 법치와 공권력이 부끄러울 뿐이다.

조선시대 성문법전인 ‘경국대전’ 호전에는 비리 관료에 대한 재산 몰수 규정이 있는데, 백성이 세금으로 내는 곡식 등을 중간에 가로챈 자는 비록 본인이 죽었더라도 그의 아내와 자식에게 재산이 있을 경우 강제로 받아낼 수 있도록 규정했다.

나랏돈을 눈먼 돈으로 착각해 자신의 쌈짓돈으로 쓰는 공직자의 도덕적 해이와 정부의 부실 감사로 사회적 약자인 빈곤층과 장애인이 피눈물을 쏟고 있다.

“감사와 수령은 대도(大盜)요, 향리는 굶주린 솔개와 같다”고 간파한 다산의 지적이 예나 지금이나 결코 다르지 않아 서글프다. 한국의 미래,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한 한국의 선택은 사회 도처에서 독버섯처럼 자라고 있는 부정부패와의 전쟁이다. 이러한 부정부패를 척결하지 못한다면 우리 모두가 역사의 죄인이 되고 말 것이다.



주간동아 2009.04.07 680호 (p74~75)

이영철 목원대 겸임교수·역사학 hanguksao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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