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76

2009.03.10

관객 눈높이 맞춘 ‘체험! 정치 현장’

론 하워드 감독의 ‘프로스트 vs 닉슨’

  • 심영섭 영화평론가·대구사이버대 교수

    입력2009-03-06 09: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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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객 눈높이 맞춘 ‘체험! 정치 현장’

    닉슨 대통령 역의 프랭크 란젤라(왼쪽)와 프로스트 역의 마이클 쉰이 악수하며 대화를 주고받는 영화 속 한 장면.

    1977년 미국 역사상 최초로 탄핵으로 백악관 주인 자리를 내준 대통령인 닉슨과 당시만 해도 변방의 TV 쇼 호스트에 지나지 않던 데이비드 프로스트는 서로의 명운을 건 인터뷰 전쟁을 치른다. 총성 없는 대화가 실탄처럼 오가는 전쟁.

    아마도 감독 론 하워드가 동명 연극이 원작인 이 작품을 영화화하면서 가장 신경 쓰인 건 ‘말’이었을 것이다. 닉슨 역의 프랭크 란젤라와 프로스트 역의 마이클 쉰이 대체 이 많은 대사를 어떻게 외웠을까 싶을 정도로 프로스트와 닉슨은 만남에서 인터뷰까지 쉴 새 없는 신경전과 화살처럼 팽팽한 말 대결을 이어간다.

    그런데도 ‘프로스트 vs 닉슨’은 전혀 지루하지 않다. ‘박중훈 쇼’보다 재미있고 ‘100분 토론’보다 교훈적인 언론재판인 셈이다. 무엇보다도 살아 있는 캐릭터가 꿈틀거리는 ‘체험! 정치 현장’이다.

    사실 프랭크 란젤라가 창조한 닉슨은 명배우 앤서니 홉킨스가 재현한 영화 ‘닉슨’의 대통령보다 훨씬 속물적이면서도 연민이 느껴진다. 케네디와 링컨에 대한 콤플렉스로 몸을 떨며 우는 올리버 스톤 감독의 닉슨이 인간적 심연의 덫에 걸린 납덩어리처럼 우울했다면, ‘프로스트 vs 닉슨’의 닉슨은 프로스트의 자유분방함을 내심 부러워하는 정치 100단, 자기합리화의 달인으로 그려진다.

    그래서 인터뷰 말미에 닉슨을 한 방에 무너뜨린 그 유명한 말씀 ‘When the president does it, that means that it is not illegal. 대통령이 하면, (불법적인 일도) 그건 불법이 아니라는 거요’는 실제 닉슨이 한 말보다 훨씬 장중하고 분노에 찬 충동적인 언사에 가깝게 들린다.



    영화는 이처럼 재창조된 캐릭터 위에 론 하워드의 유머와 재치, 팽팽한 연출이 더해진다. 론 하워드는 영화 중간중간 닉슨과 프로스트 주변 인물의 인터뷰를 넣거나 핸드헬드 촬영으로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영화의 현실성과 긴박함을 부여한다. 그러면서도 닉슨이 과거 자신과의 통화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자 그냥 “치즈버거에 대해 얘기했다”고 답하는 프로스트나, 닉슨이 바라 마지않던 끈 없는 구두를 프로스트가 선물하는 장면은 이 차가운 정치쇼에 인간적인 온기를 더해준다.

    그리하여 자의식 강한 올리버 스톤의 영화 ‘닉슨’이 확고한 자기해석을 기반으로 한 오소독스한 정치 영화를 추구했다면, ‘뷰티풀 마인드’ ‘아폴로 13’의 론 하워드는 평소 그러하듯 관객의 눈높이에 맞춘 유연한 볼거리로 ‘프로스트 vs 닉슨’을 재창조해낸다.

    결국 닉슨은 자기 삶의 가장 결정적인 순간을 새로이 등장한 매체인 TV로 인해 날려버린 최초의 정치인이 됐다. 영화 초반부터 무수히 등장하는 TV 화면은 사실 그가 그토록 벗어나고자 했지만 끝내 갇혀버린 이미지 정치의 한계, 그리고 진실을 추구하는 언론의 이중적 속성을 만천하에 드러낸다. 특히 “내 정치생명은 끝났다”는 독백 같은 고백을 내뱉는 닉슨의 얼굴을 잡는 클로즈업의 위용은 대단한 것이다.

    천 마디 말보다 더 대중의 뇌리에 각인되게 만드는 미디어의 요약술과 한 인간의 장엄한 패배, 불굴의 대통령이 지친 노인이 된 순간이었으니 말이다. 아마도 당신이 역사나 정치에 흥미가 있든 없든, 이 한 장면만으로도 ‘프로스트 vs 닉슨’은 볼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일 것이다. 외로움, 혐오감, 자기패배…. 역사 앞에서 속죄해야 하는 모든 대통령이 반드시 봐야 할 것 같은 교훈과 자신의 미래가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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