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73

2009.02.17

난, 인정받기 위해 열라 뛸 뿐이고

사회초년생 살아남기 위한 ‘인정투쟁’ 열기 … 커리어 관리 첫걸음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입력2009-02-11 10: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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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인정받기 위해 열라 뛸 뿐이고
    ‘인정투쟁’. 그렇다. 인정받으려는 욕구는 투쟁 못지않게 강렬하고 치열하다. 매슬로는 욕구단계설을 주장하면서 성장 욕구의 하나인 ‘타인에게 인정받으려는 욕구’를 인간의 기본 욕구라고 강조했다. 헤겔은 인간 사이의 모든 갈등은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에서 비롯된다고 봤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언과 최후의 인간’에서 “타인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동기는 물질적 동기와 함께 인류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했다.

    굳이 대학자들의 이론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스스로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한 인정투쟁이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직장도 예외가 아니다. 집에서보다 더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되는 직장에서 ‘인정받기’는 직장인들의 주된 관심사다. 특히 신입사원을 비롯한 사회 초년생들의 경우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바늘구멍 같은 취업에 성공했다고 해도 직장에서 어떤 평가를 받느냐, 조직에서 필요한 인물로 인정받느냐는 취업 성공과는 또 다른 문제다.

    조직에 필요한 인물 되기 총력전

    ‘살아남기’는 경기 한파를 실감하고 있는 직장인 모두의 화두다. 당연히 인정투쟁의 강한 동기로 작용한다. 직장인 노지혜(28·여) 씨는 “사람들과 부대끼는 조직에서는 인정받으려 노력하는 일 자체가 윤활유와도 같다. 회사 업무에 최대한 빨리 적응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면서 “언제 조직 내의 부적격자로 찍혀 퇴출순위에 오를지 모를 일이기에 인정받기 위한 노력을 한시도 소홀히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인정투쟁이 경력 쌓기의 첫걸음이라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신입사원 원모(26·여) 씨는 “경쟁이 치열할 뿐 아니라 소위 ‘스펙’이 좋고 능력 있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에 끊임없이 노력해 인정받지 않으면 곧 도태된다”면서 “능력을 인정받아야 연봉이 오르고 인센티브도 많이 받아 훗날 다른 직장으로 옮길 때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LG텔레콤 신입사원 김성태(28) 씨는 회식 자리에 빠짐없이 참석하는 것은 물론, 음주가무로 분위기를 주도한다. 회식 다음 날 선배들을 위해 꿀물이나 비타민 음료를 챙겨가는 것은 기본. 점심시간에는 속 푸는 데 좋은 차를 끓여 내놓기도 한다. 그저 선배들의 비위만 잘 맞추는 것은 아니다. 김씨는 업무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는다. 6주간의 인턴 과정을 거쳐 취업에 성공한 김씨는 주어진 프로젝트를 밤을 새워가며 완수해 선배들에게 인정받았다. 김씨는 “업무능력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인성 면에서 인정받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인사 하나는 누구보다 잘하자는 마음으로 열심히 안면을 터간 것이 선배들에게 인정받는 데 큰 도움이 됐다”며 ‘비법’을 공개했다.

    중소 해운회사 신입사원 한경훈(30) 씨는 수첩에 자신의 임무를 빽빽하게 적어놓았다. ‘퇴근시간 연장해서 일하기’ ‘가습기의 물 갈기’ ‘프린터에 A4 용지 채우기’ 같은 잔일에서부터 솔선수범, ‘대화할 때는 절대 상대방의 말을 끊지 않고 천천히 들으면서 제스처 취하기’ 등

    A to Z가 모두 담겨 있다. 한씨는 직장에 들어오기 전부터 선배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나름대로 전략을 세웠다고 한다.

    난, 인정받기 위해 열라 뛸 뿐이고

    전문가들은 선배들 역시 신입사원의 업무능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고차원적 ‘인정’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LG텔레콤 NAS팀이 회의를 하고 있다.

    조급증 원인 등 1년 내 퇴사율 27.9%

    신입사원들의 인정투쟁에 대한 선배들의 반응은 일단 긍정적이다. LG텔레콤 NAS팀 홍의돈 팀장은 “어떤 일을 해야 할까 두려워하지 않고 일단 몸으로 부딪쳐 인정받으려는 과감성에 높은 점수를 준다”며 “그 연장선에서 자신이 하고 싶고 할 수 있으며 해야만 하는 일과, 조직이 하고 싶고 할 수 있으며 해야만 하는 일을 잘 조화시킨다면 ‘인정투쟁’은 조직에 플러스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평가했다. 7년차 직장인 이준호(34) 씨도 “선배 처지에서는 인정받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후배들이 예쁘게 보일 수밖에 없다”며 “불성실하고 딴 생각으로 가득 찬 후배들은 업무에 지장을 주기 때문에 선배들이 처리해야 할 임무가 그만큼 늘어나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인정투쟁이 긍정적인 평가만 받는 것은 아니다. 연차가 크지 않은 선후배 간 경쟁이 심해져 팀워크가 흐트러지기도 한다. 신입사원이라면 선배들에게 조언을 구하거나 야단을 맞는 게 당연한데, 오히려 한 차례의 실수도 하지 않고 단번에 인정받으려는 신입사원들의 태도가 선배에게 부담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4년차 직장인 이찬희(28) 씨는 “신입사원들이 잘 보이려고 선배들에게 너무 맞추다 보면 ‘약았다’ ‘줏대 없다’는 핀잔을 듣기도 한다. 또한 자기가 다 안다는 이유로 선배들을 제쳐놓고 여기저기 알아보고 앞서나가면 신입사원다운 면이 안 느껴진다. 선배들은 가르치는 재미를 기대하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우리투자증권 인사부 이성진 차장은 “어떤 조직도 신입사원에게 단기간에 성과물을 내놓으라고 요구하지는 않는다. 조직이 그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조직의 활력소 구실”이라며 “장기적으로 역량을 축적해나가려 하지 않고, 빨리 인정받으려는 욕심만 지나쳐서 오히려 업무를 그르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서두르다 보면 선배들과 충돌하거나 빨리 지치기 쉬우므로

    2, 3년간 차근차근 역량을 쌓아나간다는 생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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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와 달리 업무 면에서 조직에 어떤 도움이 되느냐가 인정을 받기 위한 주된 평가 요소로 작용한다.

    조급증 때문에 자신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어렵게 들어온 직장을 떠나기도 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지난해 9월 전국 100인 이상 345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입사 1년 이내의 퇴사율이 27.9%에 달했다. 모 기업 인사팀 관계자는 “신입사원들은 대부분 1년 정도 지나면 ‘내가 왜 이런 일을 하고 있지? 좀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은데…’라고 생각한다”며 ”그래서 조직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이직을 심각하게 고려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인간성보다 업무능력이 평가 기준

    인정투쟁의 양상은 과거와 달라졌다. 10여 년 전만 해도 인정받기 위한 신입사원들의 첫걸음은 술자리 같은 비공식적인 자리에 얼마나 잘 참석하는가, 커피 심부름이나 복사 같은 궂은 잡일을 얼마나 솔선해서 하는가였다. 하지만 요즘은 조직의 분위기에 얼마나 빨리 익숙해지고, 업무 면에서 선배들에게 어떤 도움이 되느냐가 인정투쟁의 주된 평가지표가 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인정투쟁이 조직에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하려면 신입사원과 선배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신입사원은 경력 개발을 인정투쟁의 강한 동기로 삼는 만큼, 자기계발을 통해 역량을 쌓는 노력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한국인재전략연구원 신원동 원장은 “요즘 직장 상사들은 신입사원들이 허드렛일을 자청하거나 뭐든 몸으로 때우려는 식으로 인정받으려 하는 것을 으뜸으로 치지 않는다. 궂은일에 솔선수범하는 것은 물론, 플러스알파로 창의성과 도전성도 갖춰야 높게 평가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선배들도 그저 ‘잘한다’ ‘수고했다’는 저차원적인 인정에서 벗어나 신입사원의 업무능력 향상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고차원적으로 인정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사위지기자사, 여위열기자용(士爲知己者死, 女爲悅己者容·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여자는 자기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위해 얼굴을 꾸민다).’ 자신을 인정해주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한다는 뜻이다. 신입사원들의 힘겨운 인정투쟁은 오늘도 계속된다.

    신입사원이 직장에서 인정받는 6가지 전략

    무조건 많은 일 하는 ‘리베로’가 돼라


    신입사원들의 인정투쟁에도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무역 전문 취업포털사이트 트레이드인(www.tradein.co.kr) 진혁재 본부장은 신입사원들이 직장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6가지 전략을 제시했다.

    1 복사를 잘하면 일도 잘한다 신입사원에게 전문적인 일이 주어질 리 만무한 만큼 잡무가 많을 수밖에 없다. 신입사원들은 복사가 가장 시시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복사하는 서류가 자신의 관심 분야라면 스스로를 위해 한 부 더 복사하는 센스를 발휘하자. 언젠가 찾아올 기회에 대비해 자료를 모아두면 특정 업무에 대해서는 모두가 본인에게 물어오게 될 것이다.

    2 양을 질로 바꿔라 많은 신입사원들이 처음부터 질로 승부하려고 든다. 하지만 이제 막 입사한 처지에 그것이 가능하겠는가. 신입사원 때는 무조건 많은 양의 일을 해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일하다 보면 양이 질로 바뀌는 순간이 반드시 찾아온다.

    3 야단맞는 사람이 돼라 상사에게 잔소리를 듣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야단맞는 사람은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다. 상사는 가장 뛰어난 신입사원을 야단칠 때가 많다. 일 잘하는 신입사원을 야단침으로써 다른 신입사원들도 긴장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야단맞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신입사원은 절대 성장하지 못한다. 야단을 많이 맞는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다는 뜻이다.

    4 보고를 철저히 하라 업무지시를 받고 실행했으면 반드시 그에 대해 보고해야 한다. 실행 과정에서도 수시로 상사에게 보고해 일의 진행 상황을 인지시켜야 한다. 이는 과오를 사전에 막는 좋은 방법이다. 상사에게 보고할 때는 정확한 자료를 바탕으로 한 보고서를 준비하는 것이 기본. 또한 보고는 밝고 긍정적인 태도로 해야 한다. 안 좋은 내용을 보고해야 할 때는 변명을 늘어놓지 말고 자신의 실수를 겸허하게 인정한다.

    5 메모 습관을 들여라 상사에게 업무지시를 받을 때, 보고하기 전에, 전화를 받을 때 반드시 메모하는 습관을 들인다. 꼼꼼한 자기관리의 시작인 동시에 업무의 효율을 높이는 방법이다.

    6 멀티플레이어가 돼라 기업에서 원하는 인재상이 달라지고 있다. 과거처럼 애사심, 충성심만으로는 급변하는 기업 환경을 따라갈 수 없다. 기업은 당장 실무에 투입할 수 있는 인재를 원한다. 업무가 상명하달로 운영되던 과거와 달리 프로젝트별로 팀이 운영되기 때문에 자기 업무에만 밝아서는 살아남기 어렵다. 경우에 따라서는 고객과 협상을 해야 하며, 현장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바로 해결할 수 있을 만큼 다방면에서 능력을 길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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