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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의 편지

스티븐 킹&스티븐 강

  • 이형삼 hans@donga.com

스티븐 킹&스티븐 강

스티븐 킹&스티븐 강
‘캐리’ ‘샤이닝’ ‘미저리’ 등 소름 끼치는 미스터리 공포소설로 유명한 작가 스티븐 킹은 파란만장, 청산유수의 이야기꾼일 뿐 아니라 치밀한 구성과 군더더기 없는 문체로 독자의 시선을 빨아들이는 당대의 문장가입니다. 그가 작가 지망생들을 위해 쓴 창작론 중에 흥미로운 대목이 있습니다. 수동태와 부사의 남발을 경계하라는 당부입니다. 비단 소설뿐 아니라 보도문 등 다른 글쓰기 장르에서도 귀담아들을 만한 충고입니다.

킹은 “소심한 작가들이 수동태를 좋아하는 까닭은 소심한 사람들이 수동적인 애인을 좋아하는 까닭과 같다”고 비꼽니다. 자신감이 부족하기에 ‘회의 시간은 7시입니다’라고 당당하게 쓰지 못하고 ‘회의는 7시에 개최될 예정입니다’라며 발을 뺀다는 겁니다. 킹은 빅토리아 여왕의 말까지 빌려와서 수동태의 폐해를 거푸 강조합니다. 빅토리아 여왕은 첫날밤을 앞두고 잔뜩 긴장한 딸에게 “넌 그저 눈을 지그시 감고 누워 영국의 미래만 생각하면 돼”라고 했다지요.

부사를 많이 쓰는 것도 자기 생각을 분명하게 표현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동사, 형용사만 놔두면 독자들이 잘 이해하지 못할까 두려워 습관처럼 그 앞에다 ‘~하게’들을 끼워 넣는 겁니다. 킹은 부사를 민들레에 비유합니다. 잔디밭에 민들레 한 포기가 돋아나면 예쁘고 독특하지만 그때 바로 뽑아내지 않으면 얼마 안 가 잔디밭은 ‘철저하게’ ‘완벽하게’ ‘어지럽게’ 민들레로 뒤덮이고 만다는 거죠.

연쇄살인범 강호순이 자신의 범죄 행각을 책으로 펴내 아들에게 인세 수입을 물려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기가 찰 노릇이지만, 그가 책을 쓴다면 스티븐 킹의 가르침을 제대로 실천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는 수동태 문장을 쓰지 않을 겁니다. 아니, 쓰지 못할 겁니다. 그의 세계관 속엔 자신만 존재할 뿐, 타인의 자리는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감정을 배려하는 중추가 마비돼 있습니다. 내가 뭘 했느냐만 중요하지, 다른 사람이 어떤 일을 당했느냐는 고려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그의 책에서 타인은 목적어일 뿐 주어가 될 수 없습니다. 주어라곤 오직 ‘나’밖에 없는 극단적 능동태 문장들이 이어질 겁니다. 나는 그녀를 차에 태웠다, 겁탈했다, 목 졸랐다, 묻었다….



그는 부사도 웬만해선 쓰지 않을 겁니다. 그 여인들이 살려달라며 얼마나 ‘처절하게’ 애원했는지, 그의 손아귀에서 얼마나 ‘고통스럽게’ 죽어갔는지, 그 가족들이 그들을 얼마나 ‘간절하게’ 기다렸을지는 단 한순간도 그의 관심사가 아니었을 테니까요.

강호순, 아니 ‘스티븐 강’의 소원을 들어줍시다. 죽는 날까지 하루 밥 세 끼 먹을 때 빼곤 손가락 퉁퉁 붓고 쌍코피 터지도록 글만 쓰게 합시다. 그래서 밤마다 ‘미저리’ 꿈을 꾸게 합시다. 애니 윌크스의 포로가 된 폴 셸던처럼, 자신에게 희생당한 여인들로부터 밤마다 고문당하며 진저리치게 합시다. 가끔은 교수대에 오르는 꿈도 꾸게 합시다. 제 목숨은 아까워서 벌벌 떨고 있는 그에게 집행관이 속삭입니다.

“넌 그저 눈을 지그시 감고 서서 흉악범 없는 대한민국의 미래만 생각하면 돼.”



주간동아 2009.02.17 673호 (p10~10)

이형삼 han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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