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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의 편지

웬만해선 너를 속일 수 없다

  • 이형삼 hans@donga.com

웬만해선 너를 속일 수 없다

웬만해선 너를 속일 수 없다
삼겹살 구울 때 기름을 빨아들이라고 프라이팬 테두리에 식빵 조각을 댑니다. 고기를 다 구워먹은 뒤 노랗다 못해 황토빛으로 절어버린 식빵을 한 입 베어물면 순간적으로 미각을 마비시킬 정도의 고농축 액상 동물성 지방이 주르륵 뿜어져 나옵니다. 가끔 그 맛을 즐겼습니다. 그 수준이라면 제 먹을거리 취향에 대해 더는 설명이 필요 없겠죠.

지방, 그 자지러지도록 고소한 유혹의 끝은? 비만도 143%, 체지방률 30.1%, 혈압 170/110mmHg, 콜레스테롤 299mg/dl, 중성지방 200mg/dl, 지방간 중증, 허혈성 심장질환 의심…. 몇 년 전에는 융프라우 꼭대기 레스토랑에서 호기롭게 와인잔을 비워대다 픽 쓰러져 한국인 가이드, 인도인 의사, 스위스인 웨이터의 국제 공조 덕에 깨어나는 국제 망신도 당했습니다. 40대 돌연사 초위험군. 남자 상제(喪制) 하나 없는 썰렁한 상가에서 풀 먹인 소복 맞춰 입고 눈물 훔치는 모녀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지난 여름, 회사 근처 헬스클럽에서 1년 회원권을 일시불로 결제했습니다. 식사약속이 없으면 점심시간에, 아니면 퇴근 직후 헬스클럽으로 달려가 갖가지 기구에 몸을 내맡겼습니다. 운동 후엔 개당 135kcal짜리 다이어트바와 녹차로 끼니를 때웠습니다. 불가(佛家)에서 108배(拜)로 아침을 열듯, 108회의 푸시업으로 하루를 시작한다는 50대 중반 선배의 감화를 받고 따라했습니다. 처음엔 20회를 겨우 채웠지만 요즘은 50회도 거뜬합니다. 외출할 때는 1kg이 좀 넘는 모래주머니를 발목에 차고 다녔습니다. 저녁 모임이 있는 날에는 아침과 점심 식사량을 최소화해 총 섭취열량을 조절했습니다. 안주로 나온 삼겹살은 5점, 등심은 7점 이상 손대지 않았습니다.

꼭 5개월 만에 11kg을 감량했습니다. 기분 따라 유난 떨지 않았기에 들쭉날쭉한 데 없이 완만한 하향곡선을 그렸습니다. 외로운 유산소운동, 단조로운 근력운동에 싫증내지 않은 것은 ‘몸의 재발견’ 덕분입니다. 트레드밀 모니터에 갖가지 정교한 수치들로 제 상태를 드러내는 몸은, 정말 무섭도록 정직했습니다. 갈고 닦는 만큼 벼려지고, 닳고 쉬는 만큼 둔해졌습니다. 점심에 소주 한 잔만 곁들여도 저녁운동 때 숨 차오르는 시점이 당겨졌습니다. 한 주 내내 운동을 빼먹지 않으면 다음 주엔 6km를 걷고 달리는 데 평균 40초가 단축됐습니다.

‘내’가 몸을 지배할 수 있다는 생각, 그래서 가끔은 슬쩍 속일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은 착각이었습니다. 몸은 나와 하나인 게 아니라 내 안의 누군가였습니다. 지배할 수도, 속일 수도 없다면 그와 대등한 공생을 도모할 수밖에요. 나도 똑같이 정직해지는 수밖에요. 내가 손을 내밀면 그도 내밉니다. 뿌리치면 그도 돌아섭니다. 지금 그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무섭지 않나요?



Happy New Year, Happy New Body.



주간동아 2009.01.06 668호 (p10~10)

이형삼 han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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