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62

2008.11.25

해외 비자금 찾아내 달러 가뭄 해결?

국세청 “유럽 조세 피난처 추적” 이례적 행보 … 1000억~2000억 달러 은닉 분석

  • 한상진 기자 greenfish@donga.com

    입력2008-11-20 1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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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 비자금 찾아내 달러 가뭄 해결?
    11월 초 국세청은 “유럽의 대표적 조세 피난처인 리히텐슈타인과 스위스 등의 비밀계좌 정보 입수에 나섰다”고 밝혔다. 국내에 신고되지 않은 개인 및 기업의 해외 소득, 해외에 은닉된 비자금을 찾아내 탈세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국세청이 이례적으로 해외에 은닉된 한국인 명의의 재산을 추적하는 속사정은 무엇일까.

    국세청이 지목한 조세회피 국가 리히텐슈타인은 인구 3만명의 유럽 소국이다. 스위스와 함께 오랫동안 전 세계 기업인과 정치인들이 애용해온 조세 피난처로, 우리 금융당국은 이 나라의 은행에만 1000개가 넘는 한국인 명의의 비밀계좌가 존재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러한 국세청의 움직임은 9월 초 한상률 국세청장의 독일 방문 때 이미 감지됐다. 2박3일 일정으로 독일을 방문한 한 청장은 당시 독일 국세청 관계자들과 접촉하면서 해외 조세회피와 관련된 의견을 나누고 정보 교류를 약속한 것으로 전해진다. 9월4일 열린 ‘한·독 국세청장 회의’에서 양국 국세청장은 과세정보 교환과 실무자급 회의를 통해 갈수록 지능화하고 있는 다국적 기업의 공격적 조세회피 행위에 효과적으로 대응키로 의견을 모았다. 국세청 측은 “독일 국세청은 최근 리히텐슈타인 소재 금융기관의 공격적 조세회피를 차단하기 위해 미국 영국 프랑스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회원국과 협력관계를 강화해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정부 관계자는 “한 청장이 이미 리히텐슈타인 외에도 3~4곳의 대표적인 조세회피 국가에 정보 공개를 요청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해외에 감춰진, 조세회피를 목적으로 은닉된 자금을 정부가 추적하겠다고 나선 것은 비단 우리나라만이 아니다. 많은 선진국은 수년 전부터 이를 위한 작업에 착수했고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독일 정부가 최근 리히텐슈타인에 존재하는 독일 기업의 해외 재산을 파악해 탈세혐의를 조사 중인 것도 대표적인 사례다. 최근 영국 국세청도 “조세회피를 목적으로 리히텐슈타인에 10억 달러(약 1조원) 이상의 세금을 회피한 자국의 부유층 300명을 탈세 혐의로 조사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미국 상원에는 최근 “스위스에 본사를 둔 스위스유니언뱅크(UBS)에만 미국 거주자의 계좌가 2만여 개(약 200억 달러)로, 그중 1만9000여 개(약 180억 달러)가 미국 국세청에 신고되지 않았다. 또한 해외에 빼돌린 미국 거주자의 자금은 전 세계 50여 곳 조세 피난처에 1조5000억 달러(약 1500조원)에 이르며, 그에 따른 세금 포탈액이 연간 1000억 달러(약 100조원)에 달한다”는 내용의 보고서가 제출돼 파장을 일으켰다.

    [알립니다]



    ‘주간동아’ 662호 17쪽 ‘해외 비자금 찾아내 달러 가뭄 해결?’ 제하의 기사 중 국내 외환보유고 수치를 기록한 2600만 달러와 2100만 달러는 각각 2600억 달러와 2100억 달러의 오기이기에 바로잡습니다.


    해외 비자금 찾아내 달러 가뭄 해결?

    한상률 국세청장은 9월4일 독일 베를린에서 플로리언 쇼이얼레 독일 국세청장을 만나 다국적 기업의 조세회피 행위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오른쪽). 10월21일 열린 OECD 고위급 대표회의에 참석한 한 청장.

    현재 우리 금융당국은 국민과 기업이 해외 조세회피 지역에 보유한 비밀계좌가 적게는 수천 개, 많게는 1만 개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금액으로는 1000억~2000억 달러에 달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은행의 외환보유고가 약 2100억 달러(2008년 10월 말 기준)인 점을 고려하면 외환보유고의 절반 이상에 이르는 자금이 외국 은행에 탈세를 목적으로 잠겨 있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국세청의 이번 행보는 해외 재산 은닉 기업과 개인에게 보내는 일종의 ‘경고’메시지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세무조사를 통해 은닉 재산이 확인되기 전에 자진해서 재산을 국내로 들여오라”는 ‘빨간 불’인 셈이다. 세계 경제침체로 비상이 걸린 외환보유고를 확대하기 위한 방편으로 정부와 국세청이 이 조사를 기획했다는 분석이 정부 주변에서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들여와라” 기업과 개인에 ‘경고’ 메시지

    이러한 분석은 이미 국세청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10월21일 OECD 회원국 고위급(재무장관 및 국세청장) 대표회의와 관련해 국세청이 낸 보도자료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어 눈길을 끈다.

    “이번 회의는 최근의 금융위기가 헤지펀드와 투자은행이 고객의 탈세를 위해 조세 피난처와 파생금융상품을 이용해 국제금융 탈세기법을 개발, 남용한 데 일부 요인이 있다고 보고, 최근 유럽의 대표적 조세 피난처인 리히텐슈타인 은행(LGT)과 스위스 은행(UBS) 등에서 일어난 대규모 역외탈세 사건과 관련해…, 긴급하게 소집됐음.”

    각국이 겪고 있는 외환보유고 감소의 원인 가운데 하나로 해외 은닉 재산의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올해 1월 2600억 달러가 넘던 우리나라 외환보유고는 10월 말 현재 2100억 달러 규모로 줄어들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정부가 기업들에게 보유 외환을 풀라고 해도 나오는 것은 수백만 달러에 불과하다. 해외에 은닉된 개인과 기업의 자금이 국내에 들어올 수만 있다면 외환보유고 문제는 한 번에 해결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국세청이 해외 은닉 재산을 추적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국세청은 2002년에도 국외의 조세 피난처를 이용한 탈세 혐의가 있는 65개 법인과 개인에 대해 세무조사를 할 계획이라 밝히고 수백억원의 세액을 추징했다. 당시 국세청이 파악한 탈세 규모는 4110억원 정도였다. 2003년에도 국세청은 외환거래법 위반으로 적발된 법인 가운데 외환거래 때 생긴 이익에 대해 정상적으로 세금을 내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은 기업을 조사하면서 역외탈세에 대한 조사도 함께 벌였다.

    그러나 이번 조사는 이전과 다르다는 게 정부 측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이전의 경우는 국내 조사에서 드러난 탈세 조사의 확대 성격이었다면, 이번에는 해외 은닉 자금에 대한 전수조사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조세회피 국가들로부터 직접 명단을 통보받는 식의 저인망 조사가 이뤄진다면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조사가 될 수도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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