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62

2008.11.25

오바마는 아내보다 한 수 아래?

미셸, 로펌 때 선배로서 실무지도… 몇 년 전까지 연봉도 더 받아

  • 전원경 객원기자 winniejeon@hotmail.com

    입력2008-11-20 12: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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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바마는 아내보다 한 수 아래?

    위성 비디오로 아버지 버락 오바마와 대화하는 두 딸과 아내 미셸. 오바마의 ‘여인’들이다.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47) 대통령 당선인은 언제나 침착하고 냉정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제이 레노를 비롯한 미국 코미디언들이 오바마가 대통령이 된 후를 걱정하고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들릴 정도다(부시 대통령은 잦은 실수로 TV 코미디의 단골 소재였다).

    그런 오바마가 대선 전날인 11월3일(현지 시각) 시카고에서 마지막 유세를 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바로 자신을 키워준 외할머니 매들린 던햄의 사망 소식을 전하면서였다. 이날 연설을 하며 오바마는 얼굴이 다 젖도록 많은 눈물을 흘렸고, 미국인들은 ‘강하고 스마트한 남자’ 오바마의 인간적 면모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오바마에게 영향을 끼친 가족들은 대부분 여성이다. 오바마가 케냐에서 고위 관료로 일하다 교통사고로 사망한 친아버지 버락 오바마 시니어를 한 번밖에 만나지 못했고 성장기 대부분을 외조부모와 함께 하와이에서 보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변호사인 미셸 오바마(44)와 결혼한 뒤 얻은 아이 둘도 모두 딸이다.

    오바마 TV 출연해 “모르는 문제는 아내에게 물어본다”

    ‘오바마의 여인들’ 중 핵심은 뭐니뭐니 해도 아내 미셸 오바마다. 미국 대선 선거운동이 한창이던 당시, 오바마가 TV 토론회에서 이 같은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당신은 잘 모르는 문제에 부딪혔을 때 누구에게 물어봅니까?” 그러자 오바마는 방청석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저기 앉아 있는 아내 미셸에게 물어봅니다. 왜냐하면 미셸은 나보다 아는 것이 더 많기 때문이지요.” 방청석에서 폭소가 터져나왔다.



    그 후 CNN TV의 ‘래리 킹 라이브’에 출연한 미셸은 “정말로 남편이 모르는 문제를 당신에게 물어보느냐”는 래리 킹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버락은 모르는 게 있으면 누구에게든 묻기를 주저하지 않는 겸손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주위의 도움을 받을 줄 아는 열린 사고를 지녔지요. 무엇보다 그는 리더가 꼭 갖춰야 할 항목인 ‘유머’를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오바마가 케냐 출신 아버지와 캔자스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인도네시아와 하와이에서 성장기를 보낸 ‘국제적’ 인물인 데 비해, 미셸은 시카고의 전형적인 흑인 가정에서 자랐다. 미셸의 아버지 프레이저 로빈슨은 시청에 고용된 수도공사 기술자였기 때문에 그녀의 집은 극단적인 빈민계층은 아니었다. ‘래리 킹 라이브’에서 미셸은 “우리 부모님은 교육받은 계층은 아니었어도 훌륭한 상식의 소유자였다”고 말했다. 로빈슨 가족은 주말 저녁마다 다같이 모노폴리 게임을 했고, 부모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야 한다’거나 ‘선생님을 존경해라’ 같은 기본적 덕목을 가르쳤다. 미셸은 제시 잭슨 목사의 딸인 산티타 잭슨과 고교 동창이기도 하다.

    미셸은 흑인으로는 드물게 동부 명문대학인 프린스턴을 졸업했다. 오빠 크레이그가 농구 특기생으로 한 해 먼저 프린스턴대학에 진학했기 때문에 미셸은 자신도 아이비리그에서 공부하겠다는 꿈을 키웠다. 프린스턴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그녀는 하버드대학 로스쿨에 진학해 지적재산권을 전공했다. 변호사가 된 미셸은 시카고로 돌아가 로펌 ‘시들리 오스틴’에서 일하게 된다. 그녀가 이곳에서 일한 지 3년 만인 1991년, 여름 기간 인턴으로 버락 오바마가 로펌에 합류했다.

    미국 일간지 ‘뉴요커’와의 인터뷰에서 미셸은 “귀여운 인턴이 들어왔어”라는 직장동료의 귀띔에 오바마를 눈여겨보게 됐다고 회상했다.

    “직장에서 슈트를 입은 흑인 남자를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그날은 기억에 남았어요.”

    미셸은 여름 내내 실무를 가르쳐주고 옷 입는 법을 조언하거나 로펌의 중요 인사들을 소개해주는 등 오바마의 멘토 역할을 했다. 그리고 여름이 끝나가던 무렵 두 사람은 스파이크 리 감독의 ‘똑바로 살아라(Do the right thing)’를 보며 첫 데이트를 했다. 2004년 마샤스 빈야드에서 열린 파티에서 처음 스파이크 리를 만난 오바마는 “당신에게 큰 신세를 졌습니다”라고 인사를 건넸다. 영화를 보던 도중 오바마가 미셸의 무릎에 손을 얹었고 미셸은 뿌리치지 않았던 것이다.

    부모의 자유분방한 결혼생활을 본 오바마는 결혼 자체에 회의적이었다. 반면 미셸은 ‘아무런 약속이나 계약 없이 평생을 지속할 수 있는 관계란 없다’고 주장했고, 두 사람은 늘 이 문제로 언쟁을 벌였다. 1992년 여름 레스토랑에서 오바마는 ‘꼭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며 이 문제를 다시금 꺼냈다. 이렇게 논쟁을 벌이던 중 미셸은 디저트 접시에서 뜻밖의 물건을 발견했다. 오바마가 미리 부탁해 미셸의 접시에 넣어둔 반지였다. 두 사람은 1992년 10월 시카고에서 결혼했다.

    결혼 전에도 후에도 미셸은 늘 남편보다 잘나가는 변호사였다. 결혼 후 시카고대학의 행정본부로 직장을 옮긴 그녀는 행정 담당 학장보로, 시카고대학병원 행정부원장으로 승승장구했으며 시카고 시의 공공정책 자문역을 맡기도 했다. 선거전 당시 한 인터뷰에서 오바마는 “당신보다 미셸의 수입이 더 많다는 것이 사실이냐”는 물음에 “과거에는 그랬지만 지금은 내 책 두 권(‘내 아버지로부터의 꿈’과 ‘담대한 희망’)의 인세 때문에 내 수입이 더 많다”고 대답한 적이 있다. 실제 2005년 미셸의 수입이 27만 달러를 넘은 데 비해 상원의원 오바마의 연봉은 15만 달러였다.

    두 딸도 디즈니 TV 출연 요청 받는 등 언론 관심 뜨거워

    오바마 부부의 딸 말리아 앤(10)과 보통 ‘사샤’로 불리는 나타샤(7) 역시 디즈니 TV 드라마의 출연 요청을 받는 등 언론의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큰딸 말리아는 160cm가 넘는 큰 키에 엄마를 빼닮은 미인이다. 말리아가 지미 카터 대통령의 딸 에이미와 클린턴 부부의 딸 첼시에 이어 ‘대통령의 딸’ 신드롬을 일으킬 기미도 엿보인다.

    오바마 부부는 모두 운동에 소질이 있다. 오바마는 선거 당일에도 농구를 할 정도로 농구광이다. 대선 전 TV 토크쇼에 출연해 예사롭지 않은 춤솜씨를 선보이기도 했다. 오바마 부부는 아이들에게 탭 댄스, 스케이트 등 각종 운동을 과외활동으로 가르치고 있다. 아이들과 시간이 날 때 온 가족이 가끔 훌라후프를 하는데 이 가족의 ‘훌라후프 퀸’은 단연 엄마인 미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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