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62

2008.11.25

돈지랄 세상

  • 김진수 jockey@donga.com

    입력2008-11-20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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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노력해서 성취를 이뤘지만 인생의 가장 큰 보람은 사회에 공헌하는 것, 그리고 사람들을 더 낫게 만드는 것이다. 내 재산을 사회에 기부해 사회의 진보와 복지에 기여하려고 한다. 너희가 충분히 이해하고 동의할 것을 희망한다.”

    자수성가해 대만 최대 기업을 일궈낸 왕융칭(王永慶) 대만플라스틱그룹 회장이 10월15일 세상과 작별하면서 남겼다는 편지 내용 일부입니다.

    ‘경영의 신(神)’으로 불린 동시에 68억 달러(약 8조9700억원)의 개인 재산을 지녀 대만 제2 부자였던 그는 11월11일 공개된 이 편지에서 ‘개인의 사리를 도모하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기를 바란다’는 뜻을 자녀들에게 비쳤습니다.

    공교롭게도 다음 날, 8년간 대만 총통을 지낸 천수이볜(陳水扁) 전 총통이 대만 검찰에 구속됐습니다. 대만의 민주화운동을 이끈 뒤 2000년 정권 교체에 성공한 그가 선거자금 및 정치자금의 돈세탁, 정부 비밀업무 추진비인 국무기요비 유용 등 네 가지 혐의를 받은 때문이라지요. 한때 고결하고 청렴한 이미지를 주던 그가 이젠 수갑을 차고 ‘부패 정치인’이란 낙인마저 찍히게 됐으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두 대만인의 지극히 상반된 사례에서 오버랩되는 것은 ‘돈’입니다. 굳이 대만 사회까지 들여다볼 필요도 없을 듯합니다. 최근 며칠 사이 우리 언론에 비친 사건들을 보면 장탄식이 절로 나옵니다.



    연예인, 정치인 부인 등 서울 강남지역 부유층이 연루되고 피해액이 최소 1000억원대에 이른다고 해서 유명세를 탄 이른바 귀족 계모임 ‘다복회(多福會)’ 사건도 그렇거니와, 유명 MC 강병규 씨가 포함돼 누리꾼(네티즌)의 비난 여론이 들끓은 억대 인터넷 바카라 도박 사건도 마찬가집니다.

    그뿐입니까? 한 나라의 세정(稅政) 최고 책임자였던 이주성 전 국세청장이 프라임그룹의 대우건설 인수 청탁 등의 명목으로 강남의 19억원짜리 아파트를 뇌물로 받고, 7000여 만원에 이르는 오디오 및 가구 구매 비용, 개인 선물비까지 기업체에 대리 결제하게 했다는 소식을 접하니,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거나 한 달 내내 뼈빠지게 일한 대가로 몇 푼 되지 않는 월급 받아 쪼개 쓰는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은 그야말로 가진 자들의 ‘돈지랄’(이거, 욕 아닙니다!)에 돌아버릴 지경입니다.

    온통 ‘돈귀신’에 홀린 듯한 세상. 서두에 언급한 왕 회장의 유훈이 새삼 돋보이는 까닭입니다.

    “재부(財富)는 하늘이 우리에게 잘 관리하고 쓰라고 맡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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