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62

2008.11.25

경제 변동 심할수록 전망 효용 극대화

대다수 전문가 튀려다 망신보다 무능 선택 … 전망 취사선택의 책임은 소비자 몫

  • 김방희 생활경제연구소장·KBS1 라디오 ‘김방희의 시사플러스’ 진행자 riverside@hanafos.com

    입력2008-11-20 09: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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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 변동 심할수록 전망 효용 극대화

    세계은행이 글로벌 금융위기로 자금난을 겪고 있는 개발도상국에 3년간 1000억 달러를 추가 지원한다는 뉴스를 실은 11월12일자 파이낸셜 타임스.

    지난해 이맘때 어느 중견기업의 임직원들을 모아놓고 2008년 경제전망을 제시할 때 일이다. 당연히 전망 내용은 부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 가계는 빚더미에 올라앉아 있었고, 금융기관은 못 미더웠다. 불확실한 저성장 경제가 불가피한 가운데 금융불안까지 예고된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런 전망이 경영진 귀에 거슬렸던 모양이다. 하긴, 당시는 주식과 부동산 시장의 거품이 여전하던 때였다. 그런 호시절에 장기 불황의 전조를 알리는 내가 기분 좋은 취객들에게 찬물을 끼얹는 방해꾼으로 비쳐졌을 것이다.

    경영진 가운데 한 명이 쉬는 시간을 이용해 대화를 청했다. 그는 내 전망이 지나치게 비관적이라고 반박했다. 무엇보다도 그런 전망을 무색하게 할 일이 벌어지지 않았느냐고 주장했다. ‘경제를 살리겠다’는 새 대통령의 탄생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나는 조목조목 반박했다. 한국경제는 엔진(성장동력)과 엔진의 힘을 차체에 전달하는 전장품(분배시스템)에 문제가 생긴 자동차와 흡사하다, 가속페달(경제정책)을 아무리 밟아도 속도가 잘 나지 않는다, 운전자 한 사람 바꾼다고 이런 차가 속도를 낼 리 만무하다…. 결국 말문이 막힌 이 임원은 쐐기를 박듯 한마디 하고 돌아섰다. “어쨌든 그런 부정적인 전망은 더 이상 안 돼요!”

    그의 말은 그 후로도 계속해서 경제전망을 하는 이들의 숙명을 암시하는 말로 뇌리에 남아 있다. 경제전망은 그것을 소비하는 대상이 있고, 결국 그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어 지난해 10월경 중국펀드가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무렵, 내가 진행하는 경제방송에서는 이 이상과열 현상을 여러 차례 지적했다. 베이징올림픽을 전후해 중국경제의 거품이 꺼질 게 분명한데도 중국펀드가 인기 있는 것은 확실히 비정상이었다. 그러나 당시 경고는 열기에 파묻혀버렸다.

    모델의 수치 비슷 윤색하는 과정서 큰 차이



    소비자들이 들으려 하지 않는 전망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 점이 중요하다. 지금 와서는 지난해에 비슷한 경고를 했다는 이들이 꽤 많다. 그러나 대중의 인기를 얻으려는 목적이 아닌 이상, 뒤늦은 고백이 무슨 소용 있단 말인가. 단지 몇 명이라도 경고를 귀담아들어 중국펀드 가입을 포기했더라면 오히려 조금이나마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소비자와의 관계가 아니더라도 경제전망은 본질적으로 한계가 있다. 그러나 경제전망이 대충 감(感)으로 아무렇게나 하는 것이라고 오해해서는 곤란하다. 기상예보가 자주 틀린다고 해서 예보관이 아무렇게나 예보하는 것은 아니다. 기상청은 슈퍼컴퓨터까지 동원하지만 변화무쌍하기 그지없는 기상 상황을 다 파악하지 못할 따름이다.

    경제전망을 하는 전문가들에게 기상청의 슈퍼컴퓨터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경제예측 모델이다. 대부분의 경제전망 기관들은 자신들만의 모델을 갖고 있다. 우리 경제의 주요 변수들과 그 변수들 간의 상관관계를 나타내는 상수로 이뤄진 연립방정식 모델이다. 어떤 모델들은 수백에서 수천 가지 변수와 과거 자료에서 얻은 엄밀한 가중치들로 구성돼 있다.

    그러나 경제전망에서 흥미로운 대목은 이런 기술적인 분야가 아니다. 이렇게 해서 도출된 전망치는 기관별로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경제전문가들은 모델을 통해 나온 수치를 시장의 분위기나 심리를 고려해 약간씩 수정한다. 물론 다른 기관들의 전망치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이때 각 전망기관은 나름의 색채를 띠게 된다. 경제부처의 전망치는 목표치에 근접해야 하기에 가장 낙관적인 쪽이라면, 한국은행은 보수적인 편이다.

    놀라운 사실은 경제전망의 성과가 모델에서 나온 수치를 윤색하는 과정에 달려 있다는 점이다. 얼마나 복잡한 모델을 보유하고 있느냐 여부는 정작 중요하지가 않다. 시장의 분위기와 심리를 사심 없이 능숙하게 반영하는 기관이나 전문가일수록 전망치가 실제치에 가깝다. 올해 상반기 유가전망에서 시쳇말로 ‘대박’을 터뜨린 삼성경제연구소의 경우도, 금융불안과 그로 인한 경기침체 가능성을 염두에 뒀기 때문이지 유가예측 모델이 뛰어나서가 아니었다.

    시장의 분위기나 심리를 반영하는 과정에서 경제전망 기관이나 전문가가 가장 쉽게 빠지는 오류가 바로 구조적 요인을 놓치고 주기적 분석에 매몰되는 것이다. 미래 역시 과거의 경제주기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전제하에 예측하는 경우다. 일단 시장이나 경제가 어떤 구조적 요인에 의해 정상 궤도를 벗어나면 이런 전망은 방향감각을 상실하고 만다. 지난 3년간 매 상반기에 우리 경제가 회복될 것이라고 봤던 기관들이 대표적인 예다. 이들은 경제회복 주기를 믿었고, 더욱이 그에 부합하는 듯한 양상을 보인 일부 소비 관련 지표에 현혹됐다. 돌이켜보면 그런 지표들은 주식과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소비 여력이 생긴 상위계층이 좀 써서 그런 것일 뿐이었다.

    또한 경제전망을 하는 전문가들은 늘 ‘경영 컨설턴트의 역설(Consul- tants’paradox)’이라는 상황에 놓인다. 경영자에게 조언을 해야 하는 경영 컨설턴트들의 처지를 생각해보자. 만일 이들이 경영자가 수용하기 힘들 만큼 엉뚱한 조언을 한다면, 경영자들은 컨설턴트들을 평가절하한다. 그렇다고 경영자들이 수용하기 쉽도록 편한 조언만 하면 다 아는 얘기라고 폄훼한다. 결국 경영 컨설턴트들은 중간 지대를 선택하게 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들에게 보수를 지불하는 경영자의 처지를 더 고려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가능하면 경영자의 판단에 가깝게 조언하되, 약간 색다른 얘기만 가미할 뿐이다.

    기억력 짧은 시장에 쉴새없이 예측 쏟아져

    경제전망을 하는 전문가들도 마찬가지다. 혼자 정확한 전망을 했을 때의 편익보다 홀로 틀려 망신당할 위험을 더 높게 평가한다. 그래서 기꺼이 틀린 경제전망을 내놓는 ‘무능 동맹’의 대열에 합류하게 된다. 소비자가 정부든 기업이든, 그리고 국민 전체든 매한가지다.

    그런데도 왜 각 기관과 전문가들은 틀릴지도 모를 경제전망을 계속해서 내놓는 것일까? 그게 직업이라서?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경제의 변동성이 커져 경제전망이 어려워질수록 정확한 전망의 효용이 극대화되기 때문이다. 내가 일 때문에 접촉했던 한 조선업체가 대표적인 예다. 이 회사의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같은 업계 경영자들이 신봉한 전망과 정반대 예측을 더 신뢰했다. 다른 조선업체 경영진은 환율이 더 떨어질 것으로 보고 헤징(위험 회피)을 시도했다. 대신 그는 환율이 오르리라 보고 역헤징을 했다. 그 결과 이 회사는 엄청난 환차익을 보았다. 앞으로 조선업계를 비롯한 중화학공업 인수·합병(M·A)의 최대 강자로 떠오를 전망이다. 경제전망은 본질적인 한계가 극대화될수록 정확한 전망에 대한 보상도 커지게 마련이다.

    한 달 전쯤 어느 기관이 주최한 내년 경제전망 세미나의 사회를 본 적이 있다. 그 가운데 한 세션에서 못 볼 장면을 보고 말았다. 한 자산운용사 임원이 자신 있게 자신은 지금과 같은 주식시장 상황을 예견했노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내 기억이 옳다면 그는 지난해 말 우리 코스피지수가 3000까지 가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했다. 제기랄. 당장 욕지기가 치밀어올랐지만 끝내 참고야 말았다. 그렇다. 비이성적인 대중과 광기에 휩싸인 시장은 붕어만큼이나 짧은 기억력을 갖고 있다. 그래서 어제도 오늘도 쉴새없이 경제전망이 쏟아져나온다. 전망을 취사선택한 데 따르는 책임은 개인과 기업 등 ‘전망의 소비자들’이 짊어져야 할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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