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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김정일 ‘사진정치’ 세계언론 놀아난다

김정일의 프로파간다 도구 ‘1호 사진’ 집중 분석…“최근 공개한 사진, 조작 가능성 낮다”

  • 변영욱 동아일보 사진부 기자 cut@donga.com

김정일 ‘사진정치’ 세계언론 놀아난다

김정일 ‘사진정치’ 세계언론  놀아난다

11월5일=영국 BBC는 이 사진을 두고 ① 사진 속 김 위원장의 무릎 뒤쪽 계단에는 검은 선이 없지만 나란히 선 군인들의 뒤쪽에는 검은 선이 선명하다 ② 김 위원장의 그림자는 12시 방향으로 곧은 데 비해, 양옆 군인들의 그림자는 11시 방향으로 비스듬하다 ③ 김 위원장의 왼발 부분을 확대해본 결과 발과 배경의 사진 픽셀이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며 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기자는 조작설의 근거가 그다지 설득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진 조작설에 대한 자신감의 포석인 듯 이 사진은 이전의 ‘1호 사진’과 달리 큰 사이즈로 외부에 공개됐다.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만 대중에게 전달하는 것은 거의 모든 권력자의 로망일 것이다. 대부분의 사회에서 이러한 바람은 백일몽에 그치지만 북한에서는 현실로 이뤄진다. 북한 언론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심기를 거스를 만한 사진은 싣지 않는다. 틀에 맞춰 촬영한 정중한 모습의 사진만 게재한다. 사진기자들은 김일성 주석의 오른쪽 목 뒤 혹을 가리기 위해 왼쪽 얼굴을 중심으로 사진을 찍었으며, 김 위원장의 키높이 구두를 가리려고 굽이 보일 수 있는 측면이 아닌 정면에 주로 카메라를 둔다.

북한 언론에는 500명이 넘는 인원과 함께 찍은 김 위원장의 사진이 실리기도 하고 (‘노동신문’ 1989년 6월22일자), 6개 면에 불과한 ‘노동신문’에 김 위원장의 얼굴이 아홉 번 등장하기도 한다(‘노동신문’ 2001년 12월17일자). 북한 신문 1면에 김 위원장이 아닌 다른 정치인이 등장하는 예는 없다.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얼굴이 신문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는 것이다.

북한 언론학 교과서들은 김 주석과 김 위원장의 얼굴이 들어간 사진을 ‘영상 사진’이라고 일컫는다. 그러나 복수의 탈북자에 따르면 북한 주민들은 최고지도자의 사진을 ‘1호 사진’이라 부른다. 김 주석과 김 위원장이 독점적으로 사용하는 도로를 ‘1호 도로’라고 일컫거나, 전용 열차를 ‘1호 열차’, 관련 행사를 ‘1호 행사’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김 위원장의 동정 보도를 전담하는 아나운서는 ‘1호 방송원’이다.

‘1호 사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1호’에 대한 불필요한 정보를 최대한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북한 사진기자들은 한국 사진기자들보다 훨씬 가까운 거리에서 김 위원장을 촬영하지만 얼굴을 클로즈업해서 찍지 않는다. 서울에서 보는 김 위원장의 클로즈업된 사진은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또는 2002년 러시아 방문 때 외국 통신사 기자들이 촬영한 것이다. 북한 매체에 실린 전신 사진의 얼굴 부분을 확대하면 파일이 깨져 보이므로 안면의 세세한 변화를 체크하기 어렵다. 김 위원장의 사진 속 얼굴을 확대해 건강상태를 점검하려는 외부 관찰자의 시도가 근거 부족의 추측으로 끝나는 까닭이다.

신문뿐 아니라 방송에서도 그대로 활용



‘1호 사진’은 신문뿐 아니라 방송에서도 그대로 활용된다. 사진 한 장을 TV 화면에 10초 정도 띄워놓고 아나운서가 ‘노동신문’ 기사를 그대로 읽는다. 1~2분짜리 동정 보도에 10여 장의 사진이 연속해서 등장한다. 30초짜리 방송광고는 20컷 정도의 빠른 화면으로 이뤄진다. 이러한 장면에 익숙한 서울에선 평양의 방송 보도가 단조롭게 느껴진다. 서울에서 익히 봐온 김 위원장을 촬영한 동영상은 촬영 시점이 한참 지난 뒤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제작해 송출한 화면이다. 단,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때는 이례적으로 한국 방송사들이 회담 장면을 생방송한 지 5시간 만에 북한 주민들에게도 동영상 뉴스가 보도됐다.

TV와 영화를 선전, 선동의 중요 도구로 여기는 사회에서 최고지도자의 동정 보도가 동영상이 아닌 사진을 통해 행해지는 까닭은 통제가 쉽기 때문이다. 동영상에 비해 사진은 구체적인 정보가 덜 포함된다. 동영상보다는 덜하지만 사진도 행보를 노출하게 마련이다. 따라서 행보를 추측할 수 있는 정보는 최대한 사진에 드러내지 않는다. 김 위원장의 건강 이상설이 회자된 올 가을 평양이 공개한 사진에 시간과 장소가 표기되지 않은 것은 일반적인 보도 방식이다.

북한은 ‘1호 사진기자’의 정보도 철저히 비밀에 부친다. 북한 신문에 실리는 모든 사진에는 사진기자의 이름이 명기돼 있지만 ‘1호 사진’ 밑에는 ‘본사 정치보도반’이라는 명칭만 보인다. 이러한 관행은 ‘김일성 유일체계’를 확립한 1967년 이후부터 이어지고 있다. 그 전까지 김 주석의 사진은 여러 매체에서 직접 촬영했지만 이때부터는 특별한 기자들에게만 촬영을 허가했다.

‘1호 사진’을 촬영할 때 현장 기자들의 느낌이나 독자와 주민의 ‘알 권리’는 중요하지 않다. 하물며 외부 세계의 ‘알 권리’는 북한 언론의 고려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올 가을 북한 언론은 외부 세계의 ‘알 권리’(?)를 충족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김정일 ‘사진정치’ 세계언론  놀아난다

10월11일 = 북한이 두 달 남짓 만에 공개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왼쪽에서 세 번째) 사진. 김 위원장의 옷차림과 머리 모양, 선글라스 등이 8월14일 군부대를 시찰했을 때의 모습과 거의 차이가 없다. 10월 날씨와 사진의 배경이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왔다.(좌)
11월2일 = ‘2008년 가을에도 김 위원장은 건재하다’는 의미로 북한이 공개한 이 사진에 대해 남측 언론들은 ‘왼팔이 이상하다’고 지적했다. (우)

8월15일 이후 건강 이상설 급속 확산

북한 신문의 지면을 독점하던 김 위원장 얼굴이 8월15일 보도 이후 보이지 않자, 확인되지 않은 여러 소문이 꼬리를 물었고 세계는 김 위원장의 건강 이상설을 기정사실화했다.

북한은 10월 중순부터 대응하기 시작했다. 조선중앙방송이 10월11일 김 위원장의 여군(女軍) 포병부대 시찰 사진 10여 장을 뉴스를 통해 보도했고 조선중앙통신이 2장의 컬러 사진을 공개했다. 이에 대해 서울의 언론들이 사진 속 숲과 잔디의 색깔이 한반도 북부의 가을 날씨치곤 지나치게 푸르다며 병을 앓기 전 촬영한 사진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자 북한 언론은 김 위원장이 축구경기를 관람하는 사진을 내보냈다(11월2일). 그런데 VIP룸에 앉아 경기를 지켜보는 김 위원장의 사진은 예전 사진과 비교할 때 수행원의 얼굴이 뚜렷이 보이지 않았으며 앵글도 기존 관행에서 벗어나 있었다. ‘1호 사진’은 북한의 역사여서 누가 함께 등장하는지는 북한 내부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먼 산의 단풍에 카메라 노출값을 맞추고 플래시를 터뜨리다 보니 수행원들의 얼굴이 뚜렷이 보이지 않고 검게 보인 것이다.

또한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김 위원장의 왼팔을 둘러싸고 ‘팔에 마비가 있는 것 같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러자 북한은 11월5일 전형적인 ‘기념사진’을 공개하면서 ‘왼팔도 멀쩡하다’는 것을 증명하겠다는 듯 손뼉 치는 사진도 곁들였다. 이날 공개한 사진은 전형적인 북한 ‘1호 사진’의 특징을 갖췄다. 구체적인 날짜와 촬영자에 대한 정보가 빠져 있으며 군부대 명칭을 숫자로 표시했다. 김 위원장을 중심으로 좌우의 인원과 여백이 자로 잰 듯 동일하다. 또한 등장인물 수가 각각 190명, 124명에 이르는 대규모 기념사진이라는 점에서 건강 이상설이 불거진 8월15일 이전 사진과 유사하다. 이들 사진은 촬영의 전문성 면에서 볼 때도 기존의 것들처럼 완벽하다. 우선 앞줄부터 맨 뒷줄의 인물 모두에 선명하게 초점이 맞춰졌으며, 태양에 의해 생기는 그림자가 옆 사람의 얼굴을 가리지 않는다.

기자는 2005년부터 북한 ‘노동신문’을 연구했다. 1946년 창간한 북한의 공식 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은 북한의 공식 견해와 권력관계를 대변해왔다. 최고지도자 사진의 특징과 변화과정을 다룬 논문과 단행본을 지난해 2월과 올 6월 세상에 내놓았기에 이번 김 위원장 사진 논란 때 연구단체와 언론으로부터 질문도 받았다. 이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김정일 사진이 진짜냐, 가짜냐” 하는 점이다. 진짜라면 건강 이상설이 과장된 것이고, 가짜라면 김 위원장 유고설을 확정하는 증거로 삼겠다는 투다.

결론부터 말하면 최근 공개된 사진에서 조작 흔적을 찾기는 어렵다. 그렇더라도 김 위원장 신변에 아무 일이 없었다고 확정할 수는 없다. 최근 촬영한 것으로 확인되는 동영상이 공개되거나 외교사절과의 직접 면담이 없는 한 사진만으로 건강 이상 여부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다만 북한 사진에서 연출 사진은 흔하지만 조작 사진은 흔하지 않다는 기자의 결론과 ‘1호 사진’의 역사가 40년에 이른다는 점을 고려할 때 평양이 금방 탄로날 실수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점은 언급하고 싶다.

김정일 ‘사진정치’ 세계언론  놀아난다

11월2일 = 이 사진의 특징은 김 위원장의 훈시를 듣는 현지 관계자들이 아무도 수첩을 들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가을 배경을 보여주기 위해 연출된 상황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좌)
11월5일 = 이날 오전 공개된 기념사진에 대해 각국 언론들이 ‘왼팔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자 북한은 같은 날 오후 이 사진을 공개했다.(우)

김정일 신변 어떤 문제 발생은 분명

일부에서는 이번에 공개된 사진들에 대해 조작 가능성을 제기한다. 영국 BBC는 김 위원장의 군부대 시찰 사진에 조작 의혹이 있다고 11월9일 보도했다. 우리 정부는 건강 이상설에 이은 사진 조작설에 난감한 표정이다. 김호년 통일부 대변인은 11월3일 “북한 당국에서 발표한 ‘1호 사진’에 대해 합성 여부를 말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며 “국가가 공식 매체를 통해 공식적으로 발표한 사진은 그대로 믿어주는 게 관례”라고 밝혔다.

평양이 11월5일 배포한 사진은 ‘조작은 없다’는 점을 웅변하는 듯하다. 이날 공개한 기념사진 2장이 기존의 사진과 다른 점은 사이즈가 크다는 것이다. 그동안 조선중앙통신이 전송한 ‘1호 사진’은 200~400KB 크기의 JPEG 파일이었으며 1000KB가 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11월2일 축구경기 관람 사진은 127KB와 165KB였으며, 10월11일 공개한 여군 부대 방문 사진은 265KB. 하지만 11월5일 공개한 사진은 각각 2513KB와 1986KB다. 이는 포토샵 프로그램으로 사진을 저장하면서 압축 정도를 낮춰, 사진을 확대해도 해상도가 변하지 않게 했다는 뜻이다. ‘조작인지 아닌지 크게 확대해서 보라’는 북한식 자신감의 표현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번 공개된 사진이 김 위원장의 와병설을 잠재울 수 있을까. 앞서 언급했듯 사진 자체로는 진실성 여부에 여러 이견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건강 이상설 이후 처음 사진이 나오기 시작한 10월11일까지 50여 일간 북한 신문이 보여준 보도 방식에 비춰볼 때 김 위원장의 신변에 어떤 문제가 있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김 위원장의 사진이 신문과 방송에서 사라진 기간에 ‘노동신문’의 보도 방식은 특이한 점이 적지 않았다. 북한 사진에서 화면 정가운데 선에 자리한 인물은 주인공을 의미한다. 여러 사람이 사진을 찍었을 때 대체로 주인공이 가운데에 오게끔 한다. 일반적인 사진구도에서는 주체가 되는 요소를 화면의 가운데에 놓지 않고 황금분할비에 따라 화면의 가로 또는 세로를 3분할한 지점에 놓지만, 북한은 불화나 성화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좌우대칭형 구도를 선호한다.

기자가 논문으로 정리한 ‘북한 1호 사진의 변화’에 따르면, 화면의 가운데에 김 위원장의 몸 또는 초상화가 자리하는 사진이 전체의 70~80%에 이른다. 하지만 지난 50여 일간 공개된 북한의 ‘정치 사진’ 중에는 아무 의미가 없는 행렬(‘노동신문’ 9월10일자 1면 노동적위대 열병식)이 자리잡거나 김 주석과 김 위원장의 초상화가 나란히 (‘노동신문’ 9월6일자 1면 전시회 사진) 실리는 등 이전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김 위원장의 얼굴이 사라진 동안 북한 신문은 다양한 방법으로 그의 동정을 보도했다. 8월18일부터 열흘간은 ‘노동신문’ 1면 왼쪽 상단에 기사를 싣고 동정을 알렸는데, 라오스 이집트 에콰도르 언론이 김 위원장의 동정을 보도했다면서 외신 기사를 인용했다. 8월 말부터 보름가량은 백두산에 있는 김 위원장의 친필 비석을 비롯한 ‘김정일 상징물’과 김일성종합대학, 조선혁명박물관 등 사회주의 성과물의 사진을 실었다. 8월16, 17일과 9월8, 9일에는 북한 신문에서 한동안 사라졌던 김일성 주석의 동상과 사진이 등장했다.

※ 글쓴이 변영욱은 북한 언론이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찍은 이른바 ‘1호 사진’을 분석해 지난해 북한대학원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올해 ‘김정일.JPG’(도서출판 한울)를 펴냈다.



주간동아 2008.11.25 662호 (p48~51)

변영욱 동아일보 사진부 기자 c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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