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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섭의 시네마천국|이경미 감독의 ‘미쓰 홍당무’

엉큼 교사와 엉뚱 학생 웃음과 연민의 이중주

  • 영화평론가·대구사이버대 교수

엉큼 교사와 엉뚱 학생 웃음과 연민의 이중주

엉큼 교사와 엉뚱 학생 웃음과 연민의 이중주

한 여성의 성장담일 수도, 지독한 비극일 수도, 섬뜩한 복수극일 수도 있었던 ‘미쓰 홍당무’는 결국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부조리극이나 블랙코미디에 안착한다.

여자에게 사랑의 독해력이 없다는 것은 짝짓기 무대에선 치명적 결함이 아닐 수 없다. 영화 ‘미쓰 홍당무’의 양미숙은 바로 그런 경우다. 시도 때도 없이 얼굴이 빨개져 ‘미쓰 홍당무’라 불리는데, 그것도 예쁜 여자한테라야 귀여운 것이지 무뎃포, 무다리에 무전취식, 즉 ‘삼무(無)’의 대가이신 양미숙이 안면홍조증이라면 그건 그냥 궁상이나 주책 혹은 질병, 징후 정도에서 그치고 마는 것이다.

게다가 고아 출신으로 사랑에 굶주린 그녀는 세상 모든 ‘싸인’을 자신에게 관심이 있다는 쪽으로 해석하는 중증 도끼병(도끼만 들어도 자신을 찍으려 든다고 믿는, 좀더 유식하게는 idea of reference 즉 관계사고)까지 걸려 있다. 즉 양미숙은 생각은 꽈배기이고,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매력 전무’ ‘내숭 불가’의 여자다. 분명 한국영화 역사상 새롭고 기발하고 놀랄 만한 캐릭터의 진화가 아닐 수 없다. 최근 본 영화 중 ‘멋진 하루’의 하정우 캐릭터와 함께 대한민국 영화계에 새로 등장하는 ‘찌질이 캐릭터’의 여성 원조격 되시겠다.

매력 전무·내숭 불가의 독특한 캐릭터가 펼치는 블랙코미디

여기서부터 ‘미쓰 홍당무’의 감독 이경미의 도발은 시작된다. 그 풍자와 도발의 메스는 기존의 가부장제, 권위적 학교제도, 성 담론, 여성에 대한 판타지 등 대한민국 제도 전방위에 가해진다. 그녀는 원래 러시아어 선생이었지만 졸지에 영어 선생이 돼버린 ‘울학교 ET(English Teacher)’인 데다, 서종희에게 다음과 같이 훈수를 둔다.

“1등에 목매느니 차라리 목매겠다.”



게다가 영화는 매우 엉큼발랄하게 성 담론의 성적 기능을 원래 맥락에서 벗어나게 만들어 관객의 배꼽을 쥐고 흔든다. 서종철과 러브 라인에 서 있는 이유리를 골려주려 인터넷 채팅을 할 때 카마수트라가 참고서로 펼쳐지는 양미숙-서종희 대 이유리의 쾌도난담은 말만 보자면 시각적 이미지가 없는 극단의 포르노에 가깝다. 그러나 주인공 모두는 결국 성적 쾌락이 아니라 복수니 질투니 하는 다른 부차적 감정으로 몸을 떤다.

예쁜 것들을 마음껏 질투하고 탈(脫)신비화하자는 전략을 세우고 자의식 없는 여자, 제 몸만 챙기는 여자, 콤플렉스와 질투의 화신인 여자, 무채색 트렌치코트만 고집하는 여자, 삽질이 취미인데 진짜 삽질만 하는 여자, ‘미쓰 홍당무’는 실상 ‘미쓰 황당녀’다. 양미숙은 대한민국이 여성 캐릭터들에게 허하지 않은 모든 발칙한 감정을 긁어모으고, 대한민국이 여성 캐릭터에게 부여했던 모든 판타지를 탈탈 털고 일어난다.

엉큼 교사와 엉뚱 학생 웃음과 연민의 이중주
그래서 판타지 영역에서의 동일시와 숭배 대신, ‘미쓰 홍당무’와 관객의 접합 지점은 유쾌 상쾌 통쾌이고 웃음과 연민이다. 영화는 자꾸 궤도 이탈을 하는 고장난 기관차처럼 레일을 벗어나 주류적 시선과 거리를 확보한다. 양미숙이 영화의 마지막, ‘내가 애정표현이라 느꼈으면 애정표현인 것’이라고 외치는 그 지독한 자기중심성마저 세상을 살아갈 힘이라는 적극적 긍정으로 마음속 깊은 연민이 뭉클하게 샘솟는다.

한 여성의 성장담일 수도, 지독한 비극일 수도, 섬뜩한 복수극일 수도 있었던 ‘미쓰 홍당무’는 결국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부조리극이나 블랙코미디에 안착한다. 양미숙이 사모하는 서종철과 그의 딸 서종희가 등장하면서 학생 왕따인 서종희와 선생 왕따인 양미숙이 교내 학예회에서 발표할 연극의 제목이 ‘고도를 기다리며’인 것이다. 또 이들 세 명의 문제적 어른과 문제적 아이 한 명이 막판에 영어 자습실에서 각자의 의견을 소명하고 단죄하는 장면이 일종의 마당극이나 법정극을 닮았기에, 이런 가설은 더욱 어떤 심증이 들게 된다.

개인적으로 보자면 ‘미쓰 홍당무’는 영화적인 동시에 연극적이고, 신인 감독 이경미의 것이 있는가 하면 제작자인 박찬욱 감독의 색깔도 어른거린다. 좀더 이경미 감독다워져야 하고, 좀더 영화 찍기 자체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숙제가 남았지만, 이 신인 감독의 데뷔작으로 미뤄보건대 감독은 미래가 있고 패기가 있고 재기도 있다(칭찬 한마디 더, 감독의 전작이자 인상적이던 단편 ‘잘돼가? 무엇이든’에는 주인공이 화가 나서 휴대전화에 대고 서서히 서울 표준말에서 부산 사투리로 어투를 변해가는 장면이 있다. 이 감독은 그 정도로 사람에 대한 관찰력이 뛰어나다). 그런 면에서 ‘미쓰 홍당무’는 아이의 엉뚱한 상상력과 어른의 엉큼함이 함께하는 수작이다.

엉큼 교사와 엉뚱 학생 웃음과 연민의 이중주
영화에서 양미숙은 커튼 뒤에 무엇이 있을까 늘 설레는 마음으로 자신 뒤에 가려진 커튼을 갑자기 열어젖히곤 한다. 때론 커튼 뒤에 커다란 벽이, 어느 때는 야유하는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녀는 늘 자신 앞의 커튼을 설레는 마음으로 열어젖힐 것이다. 그리고 이 서른 중반 여성 감독의 데뷔작 커튼을 열어보니 거기에는 환호하는 청중이 가득하다. 그야말로 장막을 걷어라. 영화의 나라로 갑시다. 한국영화의 침체기에 ‘추격자’ ‘영화는 영화다’와 함께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또 한 명의 여성 감독을, 또 한 명의 신인 감독을 얻는 기쁨이 크다.



주간동아 2008.10.28 658호 (p84~85)

영화평론가·대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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