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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최영미가 사랑하는 詩

여행길에 병드니

여행길에 병드니

여행길에 병드니
여행길에 병드니

-마쓰오 바쇼(1644~1694)



여행길에 병드니

황량한 들녘 저편을

꿈은 헤매는도다.





*마쓰오 바쇼가 오사카에서 죽기 전에 쓴 시다. 평생을 여행길에서 보낸 방랑시인의 애절한 우수가 짧지만 충분하게 배어 있는 걸작이다.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이루지 못한 꿈을 안타까워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절규지만 감상으로 격하되지 않은, 근대적인 품격이 그를 불멸의 시인으로 만들었다.

우리 모두는 고독한 여행자가 아니던가. 그처럼 나도 여행하다 길에서 쓰러지기를 원했는데, 그와 같이 절묘한 ‘백조의 노래’를 남길 수 있을는지. 바쇼는 일본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존경받는 하이쿠의 대가다. 일본 전역을 여행하며 고전시가인 하이쿠를 완성한 시인이라는데, 처음 한글로 번역된 그의 시집을 보고 나는 ‘아, 이처럼 짧은 시도 있었구나’ 하며 감탄했다.

하이쿠는 단지 17자로 끝난다. 아무리 옛날이라지만, 17세기에도 인생사는 복잡할 만큼 복잡했을 텐데 어찌 그리 아찔한 형식 안에 회포를 다 풀 수 있었을까. 오늘날 서양인들이 하이쿠에 열광하는 것도 일본적인 현상이라 할 만한 그 정제된 압축미에 있지 않을까 싶다. 어떤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용기 혹은 잔인함. 일본.

그런데 그처럼 짧은 시에 웬 해설이 이리 긴가. 차라리 바쇼의 다른 하이쿠를 음미해보자.

여행길에 병드니
해묵은 연못이여 개구리 뛰어드는 물소리

이걸 읽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차라리 글자에 눈을 마주친다고 함이 옳지 않은지.

[출전] 마쓰오 바쇼 지음/ 김정례 역주, ‘바쇼의 하이쿠 기행1 - 오쿠로 가는 작은 길’, 바다출판사, 1998



주간동아 2008.10.28 658호 (p68~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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