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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의 人文기행 (25) | 명창 만정 김소희

가슴속 恨 소리에 담아 남도 하늘에 날려보내리

애절한 ‘새타령’ 판소리 명반 꼽혀 … 신재효·서정주와 더불어 ‘가객 삼합’명성

  • 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가슴속 恨 소리에 담아 남도 하늘에 날려보내리

가슴속 恨 소리에 담아 남도 하늘에 날려보내리

만정 김소희(왼쪽)의 맑은 음색은 동편제의 지평을 넓혔다.

산하 곳곳에 눈물 어리지 않은 곳이 달리 없지만, 전북의 서해안으로 소요하다 보면 어느새 맘속으로 눈물이 흘러 그 까닭으로 다음 행로를 잡지 못한 채 지나가는 바람이며 하늘거리는 꽃잎을 핑계 삼아 한두 시간이고 더 머무르게 된다. 이 연재를 통하여 변산반도의 서정이며 군산항의 밤 풍경에 대해 언급한 바 있지만, 그 사이의 작은 고을과 폐허지와 나지막한 언덕들 또한 언제 찾아가도 깊은 정한으로 낯선 자의 방문을 조용히 허락한다.

내 오래 전에 알던 여인이 한 사람 있었는데, 그 사람은 대학을 마치자마자 운 좋게 고등학교 선생이 되었다. 초등학교를 한 해 일찍 들어갔고 그 후로 재수나 휴학을 한 적 없어 고교 선생이 되었을 때는 스물세 살이 될까 말까 했으니, 자기보다 겨우 대여섯 살 아래의 건장한 사춘기 학생들을 앞에 놓고 교단에 올랐던 것이다.

부임 첫해 가을 어느 날 고교 2학년 국어 시간에 새타령을 틀어놓고 수업을 했었다. 새타령 하면 김세레나, 하춘화, 조용필 등 가요계 큰 별들이 트로트 리듬에 ‘신민요’조로 불러서 그 가벼운 흥취가 명절 때마다 텔레비전으로 오랫동안 송수신되었지만, 판소리의 고졸한 가객들이 부르는 원바탕의 새타령은 ‘흥겨운 한마당’ 같은 흔한 표현과는 거리가 먼 지극히 슬픈 소리였으되, 내 오래 전에 알던 사람은 만정 김소희의 새타령을 까까머리 고교생들과 함께 들었다. 아마도 국어책에 나오는 ‘판소리계 문학’ 같은 수업을 효과적으로 진행하려고 일종의 시청각 교재로 삼았을 것이다.

그랬는데, 우선 학생들의 감상 태도가 달랐다. 아이들은 천하장사 씨름대회에서나 들었을 법한 새타령이 그토록 애절한 줄 처음 느꼈던 것이다. ‘새가 날아든다. 왼갖 잡새가 날아든다’ 하던 트로트계 새타령만 듣던 학생들이 무려 12분 가까이 진행되는 원판 새타령에 가슴을 조아렸고, 그중 예민한 감성의 여학생은 울먹거렸다고 내 오래 전에 알던 여인이 말했었다.

열세 살 때 판소리 입문…일제 때 판소리 적통 계보 이어



삼월 삼짇날 연자 날아들고 호접은 편편, 나무 나무 속잎 나 가지 꽃 피었다 춘몽은 떨쳐/ 원산은 암암, 근산은 중중, 기암은 충충, 뫼산이 울어 천리 시내는 청산으로 돌고/ 이 골 물이 주루루루루, 저 골 물이 콸콸 열의 열두골 물이 한트로 합수쳐/ 천방자 지방자 월턱쳐 굽우쳐 방울이 버큼져 건너 평풍석에다 마주 꽝꽝/ 마주 때려 산이 울렁거려 떠나간다/ 어디메로 가잔 말 아마도 네로구나 요런 경치가 또 있나.

이렇게 앞머리를 시작한 만정 김소희(1917~1995)의 새타령은 ‘새 중으는 봉황새, 만수문전에 풍년새’를 비롯하여 ‘말 잘허는 앵무새, 춤 잘 추는 학, 두루미, 소탱, 쑥국, 앵매기, 뚜리루, 대천의 비우 소로기’를 다 불러내고 ‘저 두견새 울음 운다. 저 두견새 울음 운다 야월공산 깊은 밤에 저 두견새 울음 운다. 이 산으로 가며 귀촉도, 저 산으로 가며 귀촉도’ 하며 가슴 밑바닥까지 드리워지는 깊은 설움의 소리를 이어가더니 ‘저 집 비돌기 날아든다. 막동이 불러 비돌기 콩 주라’ 하면서 장엄하게 마무리를 지어간다.

가슴속 恨 소리에 담아 남도 하늘에 날려보내리

고창읍 사포리에 있는 만정 김소희의 생가. 2002년 복원했다.

1990년대 초에 발매된 만정의 음반은 ‘김덕수패 사물놀이’를 비롯하여 김무길(거문고), 박종선(아쟁), 이생강(대금), 안옥선(가야금) 등의 당대 최고 명인에 더하여 방윤초, 이명희, 안숙선 등의 중진들이 그의 소리를 뒤에서 받쳐주는 진경을 보여주는 명반으로, 이 음반에 수록된 구음이며 상주 아리랑이나 새타령은 비록 짧은 소리들의 모음이지만 만정의 거룩한 세계로 들어가는 입문의 창으로 더없이 훌륭하다. 특히 새타령의 뒷부분에서 만정이 ‘저 노인새가 울어, 저 할미새가 울어 묵은 콩 한 섬에 칠푼오리 허여도 오리가 없어 못 팔어먹는 저 빌어먹을 저 할미새’ 하고 부를 때는, 한 시대의 명창이 장엄하게 소멸해가는 아득한 기품까지 느껴진다. 방금 막 연애의 춘풍에 들떴던 사람일지라도 새타령을 끝까지 듣고 나면 눈앞에 먹먹해지는 그런 소리였으니, 내 오래 전에 알던 그 여인이, 어떤 사연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교실 창가에 서서 주르르 흐르는 눈물을 손수건으로 찍어내야 했던 느낌을 내 이제야 조금은 느낄 수가 있다.

그런 아득한 마음 때문에 고창이나 부안, 이 낮은 땅의 작은 마을들을 지나갈 때면, 국도변의 골짜기와 언덕과 나무와 숲에서 ‘먼산에 앉어 우난 새는 아시랑허게 들리고 근산에 앉어 우는 새는 둔벙지게도 들린다 이 산으로 가며 쑥국쑥국, 저 산으로 가며 쑥쑥국 쑥국’ 하는 만정의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오래 전해오는 신화적인 이야기로 구한말의 이날치와 일제강점기의 이동백 명창이 새타령을 하면 그 이름이 불린 새들이 날아와 앉았다고도 하거니와, 오늘날에는 그 소리들을 ‘유성기 복각판’으로 겨우 들을 수밖에 없는 형편이어서 아무래도 그런 신화적인 전승은 만정의 음반으로 제대로 구현될 뿐이다.

가슴속 恨 소리에 담아 남도 하늘에 날려보내리

김소희 생가(왼쪽), 고창읍 신재효 생가.

만정 김소희는 1917년 고창군 흥덕면 사포리에서 태어났고 열세 살 때 당대 명창 이화중선의 소리를 듣고 소리꾼이 되기로 결심하여 전남 구례 출신의 동편제 대가 송만갑 문하에서 심청가와 흥보가를 전수하였고, 전북 익산 출신의 정정렬에게서 춘향가와 수궁가를 배워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로 이어지는 판소리 적통의 계보를 잇는 명창이 되었다.

가슴속 恨 소리에 담아 남도 하늘에 날려보내리

고창 읍성(왼쪽), 신재효 생가 앞, 전북 고창군 사포리의 서정은 만정의 소리를 닮았다.

고창에는 기억과 고증 토대로 지은 만정의 ‘생가’ 존재

만정의 생가인 사포리에 가면, 아 물론 그 옛날의 ‘생가’가 여전히 유지되어온 것은 아니고 기억과 고증을 토대로 ‘새로 지은’ 생가인데, 그곳에 가면 뒷산 너머에서 새떼들이, 김형경의 소설 제목처럼 ‘제 이름을 부르면서’ 날아다닐 것만 같다. 미당 서정주는 시 춘향유문을 썼는데, ‘유문’이란 유서와 같은 것으로, 이 짧은 시에서 미당은 전북의 어떤 서정을 보여준다.

안녕히 계세요./ 도련님./ 지난 오월 단옷날. 처음 만나던 날/ 우리 둘이서, 그늘 밑에 서 있던/ 그 무성하고 푸르던 나무같이/ 늘 안녕히 안녕히 계세요./ 저승이 어딘지는 똑똑히 모르지만,/ 춘향의 사랑보단 오히려 더 먼/ 딴 나라는 아마 아닐 것입니다./ 천 길 땅밑을 검은 물로 흐르거나/ 도솔천의 하늘을 구름으로 날더라도/ 그건 결국 도련님 곁 아니에요?/ 더구나 그 구름이 소나기가 되어 퍼부을 때/ 춘향은 틀림없이 거기 있을 거예요.

가슴속 恨 소리에 담아 남도 하늘에 날려보내리
만정의 생가 인근에 큰 고을 고창이 있다. 그곳은 조선 말기에 온 재산을 털어 판소리의 사설을 정리하고 또한 각 고을의 명창을 불러 평생을 가객들과 더불어 한 예술 장르의 극한을 모조리 거두고 섭렵했던 동리 신재효 선생의 생가가 있다. 또한 자동차로 20분 거리에 미당 서정주의 시세계가 드리워진 선운사의 가을마저 깊어지고 있어서, 남도 아래에 ‘삼합’이라는 음식 명칭이 달리 있기도 하지만, 고창과 부안 사이는 동리 신재효와 미당 서정주와 만정 김소희로 인하여 ‘가객 삼합’이란 말이 달리 있을 법도 한 것이다.



주간동아 2008.10.14 656호 (p68~70)

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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