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54

2008.09.30

미스터리 첩보물에 코믹 추가요!

  • 현수정 공연 칼럼니스트

    입력2008-09-24 13: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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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스터리 첩보물에 코믹 추가요!
    제목부터 수수께끼 같은 연극 ‘39계단’(패트릭 버로 각색)은 스파이를 소재로 한 미스터리물이다. 원작은 1915년 발표된 소설인데, 연극의 스토리라인에 직접적 영향을 끼친 것은 앨프리드 히치콕의 동명 영화(1935)다. 소설과 영화 모두 ‘미스터리하고 긴박한’ 분위기로 채워져 있지만, 연극에는 ‘코믹’ 코드가 추가됐다.

    배경은 1935년 런던. 리처드 해니는 ‘미스터 메모리’라 불리는 남자가 기억력을 뽐내는 ‘미스터 메모리 쇼’를 관람하러 간다. 그는 그곳에서 처음 만난 애나벨라와 자신의 아파트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애나벨라는 영국 공군의 기밀을 빼돌리려는 스코틀랜드의 스파이들에게 쫓기고 있다는 둥 ‘39계단’을 찾으라는 둥 뜻 모를 이야기만 남기고 살해된다. 해니는 ‘39계단’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면서 그녀가 언급한 교수를 찾기 위해 스코틀랜드로 날아간다. 그리고 그 교수가 바로 스파이단의 두목임을 알게 된다.

    한편 애나벨라를 살해한 혐의를 받고 경찰과 스파이단 모두에게 쫓기는 처지에 놓인 해니는 파멜라라는 한 여인을 만난다. 그녀는 처음엔 해니를 경찰에 신고하려 했으나 결국 그를 믿고 돕는다. 우여곡절 끝에 런던으로 돌아온 해니는 ‘미스터 메모리 쇼’에서 사건의 실마리를 발견한다.

    영화를 연극 무대로 옮길 때 가장 어려운 점이 장면 전환이다. 연극에 비해 영화의 장면 수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작품은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실내와 야외를 넘나드는 기본 무대를 바탕으로 창문, 문, 가로등, 의자 등 소품을 활용해 박진감 있게 극이 진행된다. 또 배우들의 제스처는 영화의 다양한 효과를 대신한다.

    이 작품은 올리비에상과 토니상의 여러 부문에서 수상한 화제작이다. 국내 공연의 경우 해외 연출자(캐롤라인 레슬리)를 초빙해 제작의 완성도를 기했다. 하지만 유머를 한국말로 번역하면서 재미가 반감되고, 배우들의 연기도 아쉬움을 남긴다. 해니 역의 이원재는 극 중 멘트처럼 ‘찰랑대는 머리와 귀엽고 깜찍한 외모’를 자랑했으나, 타고난 듯한 동안(童顔)과 경직된 연기 때문에 해니의 근엄한 표정과 재기발랄한 제스처의 부조화가 주는 웃음의 코드는 잘 살리지 못했다. 애나벨라, 파멜라, 마가렛 역의 조수정은 캐릭터 변화가 미미했다. 권근용과 김하준은 멀티맨으로서 극에 활력을 북돋웠지만, ‘미스터 메모리’의 경우 바보스러움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세련미를 떨어뜨린 감이 있다. 이러한 부분은 공연을 거듭하면서 나아지리라 기대해본다.



    연극 ‘39계단’은 영화에서 느낄 수 있는 다양하고 심오한 디테일이 거세된 면은 있지만, 연극 무대에 맞도록 명확하게 재구성된 플롯의 힘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극 중 ‘39계단’은 뜻밖의 의미를 갖고 있음에도 숫자의 상징성에 대해 추측하게 함으로써 미스터리한 여운을 남긴다.

    ●추천작


    ‘세계국립극장 페스티벌’

    ~10월30일, 국립극장

    고전적 경극 소재를 재해석해 호평을 얻은 중국 국가희극원의 ‘패왕가행’에 이어 세계 각국의 수작들이 10월 말까지 이어진다. 러시아 말리극장은 안톤 체호프의 ‘세 자매’, 프랑스 오데옹 국립극장은 풍자희극 ‘소녀, 악마, 그리고 풍차’와 ‘생명수’ 등을 선보인다. 중국 장예모 감독이 자신의 동명 영화를 각색한 무용극 ‘홍등’도 기대를 모은다.

    연극 ‘쉐이프’

    ~10월26일, 동숭아트센터 소극장

    연극 ‘섬걸즈’의 작가 닐 라뷰트의 또 다른 대표작. 2001년 영국 초연 당시 흥행을 거뒀고 2003년에 영화화됐다. 예술을 전공하는 한 매력적인 여자와의 사랑으로 삶이 송두리째 바뀌는 평범한 남자의 이야기다. 좌충우돌하는 러브스토리의 말미를 장식하는 반전이 관전 포인트.

    연극 ‘경남 창녕군 길곡면’

    ~9월28일, 연우무대

    ‘가벼움의 미학’에 편승하지 않고 진중함을 추구하는 극단 백수광부가 새롭게 내놓은 작품. 1970년대 독일 작품을 국내 상황에 맞게 각색한 연극으로, 비정규직으로 일하며 근근이 먹고사는 서민층 부부의 이야기를 잔잔하게 풀어낸다. 잘 버무려진 무게감과 재치가 진정성 있는 슬픔을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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