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77

2017.03.01

김민경의 미식세계

오래돼 좋은 건지, 좋아서 오래된 건지

서울 신촌의 냉동삼겹살 식당

  •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입력2017-02-27 15: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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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겹살 한 점에 추억 한 조각 서리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기분이 좋아서, 기분이 좋지 않아서, 돈을 벌어서, 돈을 잃어서, 사랑에 빠져서, 사랑이 떠나가서 등 수없이 많은 이유로 우리는 삼겹살을 먹어왔다. 삼겹살이 지글지글 익어가는 불판 건너편에는 우리의 수많은 이유를 들어줄 누군가가 꼭 있었다. 우리는 왜 불고기나 돼지갈비가 아닌 삼겹살을 사이에 두고 그 많은 이야기를 해왔을까.

    우리나라에서 삼겹살구이를 즐겨 먹은 지 30여 년이 됐다고 한다. 현재 우리 사회의 허리를 이루는 30~50세 전후는 삼겹살과 함께 성장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꽝꽝 언 냉동삼겹살, 거대한 솥뚜껑에 구워 먹는 삼겹살, 와인 등으로 숙성시킨 삼겹살, 대패로 민 듯 얇은 삼겹살, 칼집을 넣어 부드럽게 만든 삼겹살, 3초 만에 구워 먹는 삼겹살을 거쳐 최근에는 두께가 2~3cm 되는 두툼한 생삼겹살이 인기다. 찍어 먹는 소스도 고추장과 된장, 쌈장, 막장, 식초간장, 참기름장을 거쳐 콩고물, 견과류, 마늘가루, 볶은 소금, 젓갈 등으로 다양해졌다 .

    서울 신촌에 가면 삼겹살의 원로 격인 냉동삼겹살을 맛볼 수 있는 곳이 있다. 1977년 신촌 골목에 자리 잡은 ‘대구삼겹살’이다. 처음에는 대구 출신의 아무개가 족발을 팔던 가게였는데 신통치 않아 삼겹살로 품목을 변경했고, 이를 김남토 사장이 인수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현재는 이 식당의 나이(41)보다 어린 딸(40)이 운영하고 있다. 메뉴는 삼겹살뿐이다. 볶음밥이 있지만 삼겹살을 먹지 않으면 맛볼 수 없다.

    상마다 있는 불판은 한번 영업이 시작되면 문 닫을 때까지 식을 일이 없다. 상이 7~8개밖에 없어 손님 빌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번철에는 쿠킹 포일을 여러 겹  깔아 탈 때마다 ‘판’을 바꿔준다. 재미있는 것은 두 사람이 가면 젓가락 5개, 세 사람이 가면 7개 를 준다. 짝 없는 젓가락 1개는 삼겹살 기름을 빼는 용도.

    단단하게 언 삼겹살 위에 소금과 후춧가루가 뿌려 있다. 삼겹살은 뜨거운 번철에 올리자마자 우윳빛에서 누룽지 색깔로 변하며 금세 익기 시작한다. 냉동삼겹살은 얼었다 녹으면서 수분이 빠져나가 특유의 쫄깃하고 탄력 있는 맛을 갖는다. 김치, 감자, 양파, 버섯이 삼겹살 기름에 익어가는 동안 잘 익은 삼겹살에 대파무침을 얹어 먹는다. 쫀득하고 고소한 삼겹살은 고추장에만 찍어 먹어도 맛있다. 삼겹살을 다 먹고 나면 남은 고기와 채소를 잘게 썰고 대파무침, 김치, 참기름장을 넣어 고소하고 구수한 볶음밥을 만들어 먹는다. 찌개가 없어 아쉽다 하니 주방이 너무 좁아 따로 불을 써 요리할 공간이 없다는 답이 돌아온다.



    통로가 좁아 손님이 어깨를 움츠려야 하는가게, 삼겹살구이 냄새가 빠질 날 없는 이곳에 매일 사람이 그득하다. 툭 치면 20년 단골, 삼겹살보단 서로에게 빠진 앳된 커플, 소주도 없이 삼겹살을 잘도 먹는 학생들, 파란 눈에 금발의 외국인까지 손님도 다양하다. 우리가 삼겹살에 매료되는 진짜 이유는 연기와 기름을 함께 뒤집어쓰며 둘러앉아 먹는 정 때문이 아닐까 싶다.


    대구삼겹살 서울 서대문구 명물길18, 02-392-6801, 오후 5시~다음 날 오전 3시(연중무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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