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52

2008.09.09

철저한 마르크시스트 인간해방 꿈 물거품?

  • 엄상현 기자 gangen@donga.com

    입력2008-09-01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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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저한 마르크시스트 인간해방 꿈 물거품?
    서울중앙지방법원은 8월28일 국가보안법(이하 국보법) 위반 혐의로 청구된 오세철(65·사진) 연세대 명예교수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오 교수는 철저한 마르크시스트다. 그는 4년 전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마르크시즘의 중요성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 시대에 들어 마르크시즘은 인간 해방의 학문으로서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가 갖는 구조적 모순을 꿰뚫어볼 수 있게 하는 이론적 틀을 제공하는 유일한 실천적 학문입니다.”

    그렇다고 그가 공산주의자거나 친북 인사는 아니다. 북한 핵에 대해서는 분명한 반대론자다. 지난해 한 월간지와의 인터뷰 내용 가운데 일부다.

    “모든 마르크스주의자들은 핵을 반대한다. 비핵도 아닌 반핵이다. 북한 핵이 미국 자본으로부터의 자위를 위한 수단이라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바로 북한의 정치권력이 자기 체제를 보존하기 위해 민족주의와 핵을 이용한 것이다. 미국이 이 위기를 전쟁위기로 몰아갈 수도 있었는데, 만일 그랬다면 노동자들이 민족의 깃발을 들고 나간 전쟁터에서 또 죽을 것 아닌가.”

    1965년 연세대 상학과를 졸업하고 75년 미국 노스웨스턴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30년 넘게 자본주의의 첨병이라는 ‘경영학’을 가르친, 국내에선 극히 드문 마르크시스트다. 연세대 상경대학장과 한국경영학회 회장을 역임하는 등 국내 원로 경영학자이면서 진보학자로 분류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가 마르크시즘에 빠져든 것은 노스웨스턴대 유학 시절 마르크시즘이 심리, 사회, 조직을 아우르는 통합 프로그램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봤기 때문. 하지만 1976년 연세대 교수 시절 ‘유신철폐’를 외치다 경찰에 끌려간 한 제자의 모습을 보기 전까지 그의 학문은 이론적 탐구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그 사건을 계기로 실천과 괴리된 이론은 쓸모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87년 민주항쟁의 기폭제 구실을 한 제자 이한열 씨의 죽음은 그를 현실 정치로 뛰어들게 만들었다.

    그 후 그는 ‘민주화를 위한 전국 교수협의회’ 총무간사에 이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대학위원회 위원장, 민중정치연합 대표를 역임했다. 2003년 가을 학기를 마치고 명예퇴직으로 교수직을 내던진 그가 선택한 길은 ‘사회과학대학원’ 설립이었다. “기존 자본주의가 쌓아온 최소한의 공공성마저 파괴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 맞서 싸울 정통 마르크시즘 연구자를 키워내기 위함”이 목적이었던 것.

    기존 제도권 학문체계와는 전혀 다른 교과과정을 준비하는 것부터 만만치 않았다. 다행히 뜻을 함께한 학자들과 오랜 기간 논의 끝에 지난해 오 교수는 대학원 설립에 앞서 5개 강좌를 개설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 사회주의노동자연맹(사노련)이 체제 전복 시도와 이적 표현물 제작 등의 이유로 이적단체로 규정되면서 그의 꿈은 물거품이 될 위기를 맞았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보수와 진보, 양 진영의 국보법 존폐를 둘러싼 논란은 또다시 뜨거워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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