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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 女 필리핀 피살 영구 미제로 남나

유력한 증거 녹음CD 감식 수포 … 가족간 청부살해 의혹 못 밝혀 사건 장기화

60대 女 필리핀 피살 영구 미제로 남나

60대 女 필리핀 피살 영구 미제로 남나
최근 필리핀에서 한인이 연이어 피살돼 충격을 안겨준 가운데 4월 바탕가스 주에서 발생한 60대 한인 여성 재력가 피살 사건은 여전히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고 있다.

다른 사건들은 현지 경찰에 의해 범인이 검거되면서 빠르게 수습되고 있지만 유독 이 사건만은 ‘오리무중’ 상태다. 사건 당시 목격자가 없는 데다, 사건 발생 직후 현지 경찰의 초동수사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아 범인을 추론할 수 있는 단서조차 없다.

결국 불똥은 한국 경찰에게 튀었다. 현지 경찰의 협조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한국 경찰은 피살된 박모 씨의 주변을 집중적으로 탐문하고 증거 확보에 나섰지만, 범행을 확정지을 만한 증거를 찾지 못해 미제 사건으로 남을 가능성이 커졌다.

“딸 음성 맞지만 운전기사와 평범한 대화”

처음 경찰은 △박씨가 큰딸 A씨와 필리핀을 여행하던 중에 헤어진 뒤 곧바로 피격을 당했고 △사건 발생 후 박씨의 남동생이 A씨가 이번 사건에 개입됐음을 우회적으로 지목하고 문제를 제기하자 A씨를 용의선상에 올려놓은 채 ‘퍼즐 찾기’식 수사를 펼쳤다. 경찰에 진정을 넣은 박씨의 남동생 역시 수사 대상에 올려놓았다. 이에 발맞춰 언론도 재산 혹은 가족간 갈등으로 인한 청부살인 쪽에 무게를 두고 이 사건을 집중 보도했다.



그러던 중 6월 필리핀 경찰이 사건 당시 모녀의 차를 운전했던 현지 운전기사와 A씨의 휴대전화 통화내용이 담긴 녹음CD를 보내오면서 지지부진했던 수사는 탄력을 받았다. 통화내용에서 청부살인을 암시하는 대화가 포착된 것. 수사진에서는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일이 실제로 드러날 것 같은 분위기가 형성됐고, 박씨의 복잡한 가족 및 재산 관계가 더욱 부각됐다(‘주간동아’ 641호 참조). 경찰은 곧바로 녹음CD에 등장하는 목소리의 성문 분석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의뢰했으며, 사실상 사건 수사에 방점 찍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유일무이한 증거인 녹음CD에 대한 한 달여의 성문 분석 결과, 예상과 달리 청부살인 정황을 입증하는 단서는 나오지 않았다. 수사를 맡은 서울 서초경찰서 강력4팀 관계자는 “A씨의 목소리는 확실하지만 거래가 아닌 단순한 통화였다”고 전했다.

1분이 채 되지 않는 통화내용에서 의문이 제기된 부분은 현지 운전기사에게 “So you can keep the money”라고 말한 대목이다. 전후 내용상 청부살인을 암시하는 말일 가능성이 높다고 지목된 부분. 그러나 경찰 관계자는 “감식 결과 운전기사가 어떻게 하면 서울에서 돈을 벌 수 있는지를 묻고 A씨가 별 뜻 없이 답한 내용이라는 결론이 나왔다”고 밝혔다.

경찰 “참고인 중지로 송치, 추가 수사 계속”

60대 女 필리핀 피살 영구 미제로 남나

숨진 박씨의 두 딸은 자신들을 의심하며 경찰에 사건을 진정한 외삼촌 재산에 대해 법원에 가압류 신청을 한 상태다(맨 왼쪽 서류). 박씨가 사망한 후 200억원이 넘는 서울 가양동 골프연습장 건물과 토지의 소유권이 외손녀와 두 딸에게 차례로 이전됐다.

물론 현지 운전기사가 A씨와의 통화내용을 녹음한 배경에 대한 의문은 남아 있다. 하지만 사건 해결의 결정적 실마리가 될 것으로 보였던 녹음CD에서 별다른 정황을 찾지 못한 경찰은 난감한 처지다. 수사팀 관계자는 “솔직히 이젠 누가 의문이 있다고 공식적으로 말하는 것 자체가 민감하고 부담스럽다”며 지금의 심경을 털어놓았다.

한편 수사가 진행되는 사이, 박씨가 사망 직전인 3월 중순에 작성한 유언장대로 박씨의 재산 소유권이 두 딸과 외손녀에게 이전된 것으로 확인됐다. 실거래가가 200억원대를 훌쩍 넘는 서울 가양동 골프연습장 건물과 토지 소유권의 절반이 4월30일 외손녀 전모 양에게 유증(遺贈)으로 넘어갔고, 7월22일 나머지 소유권도 2분의 1씩 나뉘어 상속 원인으로 박씨의 두 딸에게 이전됐다.

수사 과정에서 “외삼촌(박씨의 남동생)이 평생 하는 일도 없이 어머니의 돈을 얻어 썼을 뿐 아니라 사건 이후에도 인감을 바꾸고 남은 돈을 빼갔다”고 주장한 A씨는 외삼촌 소유의 서울 화곡동 60평형 고급아파트에 대해 부동산가압류(청구금액 8억원) 소송을 걸고 현재까지 취하하지 않고 있다.

녹음CD가 증거 능력을 상실하면서 수사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여러 의심스러운 정황에 대한 추가 증거가 나오지 않자 경찰 관계자들의 판단도 흔들리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사건을 무혐의로 종결할 의사는 없다”는 게 경찰 측의 입장이다. 수사팀 관계자는 “현지 운전기사를 우리가 직접 조사하는 게 시급하다. 당장 사건을 종료하는 것은 아니고, ‘참고인 중지’ 처분으로 검찰에 사건을 송치한 뒤 이후에도 계속 추가 수사를 해나갈 방침”이라고 전했다.

미스터리만 남긴 이 사건의 진실은 언제쯤 밝혀질까. 녹음CD가 한국 경찰에 전해진 직후 외부와 연락을 끊은 채 상반된 입장을 보이고 있는 박씨의 두 딸과 남동생. 그들만이 진실에 근접해 있다.



주간동아 2008.08.19 649호 (p12~13)

  •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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