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43

2008.07.08

대한민국에선 지금 뒤늦은 웹2.0 열풍

  • demian@donga.com

    입력2008-06-30 17: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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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의 김모 경감은 얼마 전 자체 보안시스템 이름을 고민하던 중 ‘보안 2.0’을 떠올렸다. 사용자 참여를 극대화하겠다는 의미의 작명이었지만 주위의 반응은 시원치 않고, 오히려 반대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전까지는 1.0 방식이었다는 얘기야? 선배들이 뭔가 잘못했다는 거잖아?”

    최근 촛불집회로 ‘웹2.0식 정치’를 운위하는 학자들이 많아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향후 펼칠 자신의 정치를 ‘민주 2.0’이라고 작명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신문을 펼쳐보면 ‘웹2.0이란 참여, 공유, 개방의 인터넷 속성’이라는 설명이 눈에 밟힐 정도다. 또 주위를 둘러봐도 각종 보통명사에 2.0, 심지어 3.0까지 붙였다.

    하긴 ‘2.0’ 붐을 이룬 미국의 실리콘밸리에서는 ‘런치 2.0’이라는 행사가 벌어지기도 했다. 물론 넓은 홀에서 같은 기호를 가진 이들이 점심을 함께 하며 ‘인맥을 쌓자’는 번개모임에 불과했지만, 업그레이드됐다는 2.0이 따라붙은 단어는 왠지 신선한 느낌을 전달한다. 그런 2.0 열풍이 늦게나마 국내 주류 미디어에서 꽃을 피운 셈이랄까.

    그러나 인터넷 업계에서 ‘웹2.0’을 함부로 거론했다가는 “인터넷 개통을 축하드립니다”라는 조롱을 받을 만큼 시대가 급변했다. 첨단문화를 뒤쫓는 IT(정보기술) 종사자들에게 2003년 미국에서 유행한 ‘웹2.0’이란 표현을 2008년 한국에서 여전히 사용한다는 것은 ‘굴욕’일 수 있다는 자존심도 작용한 듯싶다. 혹은 IT업계는 이미 웹2.0이 일반화됐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한 블로거는 인터넷의 대명사인 ‘웹(web)’의 철학이 사회에서 유행한 첫 사례라는 점을 들어 “이젠 IT업계가 전 세계 지성계를 이끌고 있다”는 자부심을 내비친다. 실제로 최근 경제학, 법학, 사회학, 경영학 등 사회과학계에서는 인터넷 네트워크 안에서 벌어지는 현상에 대한 고찰 없이는 첨단 학문을 해나갈 수 없을 정도라는 말이 나온다.

    한 IT업계 대표는 기자에게 웹2.0식 소통이 이뤄지는지 아닌지를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을 귀띔했다.

    “사내 게시판을 보면 그 회사의 상황을 바로 알 수 있어요. 예를 들어 회사 최고경영진이 e메일을 보낸다면 웹1.0이라 할 수 있고, 자유게시판에 댓글을 달고 직원의 의견을 반박할 정도면 웹2.0이 정착됐다고 보면 돼요.”

    다시 경찰청의 사례로 돌아가자. 보안 2.0이 보안 1.0보다 우월하다는 얘기가 아니다. 무엇인가 잘못됐다는 것도 아니다. 단지 앞으로 소통이 막힌 조직은 정체할 수 있다는 얘기다. 사실 그런 조직이 우리 사회에 어디 한두 개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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