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36

2008.05.20

멈춰선 협궤열차의 추억 파도에 떠밀려 가슴에 요동치네

싱싱한 해산물과 이를 즐기는 사람들의 정겨운 풍경

  • 정윤수 문화평론가 prague@naver.com

    입력2008-05-13 16:46: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멈춰선 협궤열차의 추억 파도에 떠밀려 가슴에 요동치네

    소래포구는 역사가 아스라하게 숨쉬는 공간이다.

    한반도 구석구석을, 은밀한 밤에 서로의 속살을 따뜻이 위무해주는 연인처럼, 그렇게 구석구석을 기행하며 눈물 몇 점은 묻어 있을 법한 산문을 남긴 시인 곽재구는 저서 포구기행에서 “한없이 고요했던 그 시간들 속에서 나는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법을 배웠다. 나의 시들이 천천히 날갯짓하는 것을 보았고 가능한 그 날갯짓이 더욱 격렬해지기를, 세상에 대한 더 깊은 연민과 지혜와 열정을 지니기를” 원했다고 썼다.

    그것이 이뤄졌을까. 섬세한 시인의 눈으로는, 그러니까 초기 시 전장포 아리랑에서 다음처럼 기막힌 노래를 부른 시인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해본다.

    아리랑 전장포 앞바다에

    웬 눈물방울 이리 많은지

    각이도 송이도 지나 안마도 가면서



    반짝이는 반짝이는 우리나라 눈물 보았네

    보았네 보았네 우리나라 사랑 보았네

    재원도 부남도 지나 낙월도 흐르면서

    한 오천 년 떠밀려 이 바다에 쫓기운

    자그맣고 슬픈 우리나라 사랑들 보았네.

    - 곽재구 ‘전장포 아리랑’ 중에서

    작은 섬들을 보면서, 자그맣고 슬픈 사랑을 생각하는 시인의 마음으로는 나트륨등이 밝혀진 포구에 들어서면서 ‘세상에 대한 더 깊은 연민과 지혜와 열정을’ 길러내거나, 적어도 그와 같은 상념을 진실된 마음으로 어루만져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시인은 아닌 법. 시인들이야 세상만물이 시이고 누구나 겸손해지면 시인이 된다고 말하지만, 그래도 직업으로나 그 엄밀성으로 보나 시인이 시인인 까닭은 달리 있는 것이다. 그것은 기교도 아니고 심취도 아니고 다만 열정으로 획득될 수 있는 지평도 아닌, 그 모든 것을 감싸안으면서 넘어서는 어떤 숙명이자 경지이기 때문에 솔직히 누구나 시인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반세기 달리던 수인선 협궤열차 1995년 운행 정지 … 안산시 생태공간 조성 노력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일도 아니다. 누군가는 시를 짓는 고통스러운 의무를 가졌다면, 우리는 그들의 시를 읽는 즐거운 권리를 갖고 있지 않은가. 그리하여 우리는 시인의 손길을 따라 포구의 밤으로 스며들어가 보는 것이다.

    서울이나 수도권에서는 오랫동안 소래포구가 각별한 사랑을 받아왔다. 대도시와 가까운 곳이고 서해에서 막 도착한 해산물이 넘쳐나는 곳이며, 무엇보다 수인선 협궤열차가 있어 소래포구는 거의 시의 지평에 도달한 곳이었다.

    물론 1995년의 마지막 날, 12월31일에 수인선 협궤열차는 그 숨가쁜 운행을 멈추었다. 1937년 일제가 수탈한 쌀을 반출하기 위해 개통된 뒤 반세기 넘도록 인천 송도와 수원을 오간 ‘꼬마열차’는, 맹렬한 속도의 뒤편에서 전사하였다. 안산시가 고잔역 일대를 ‘협궤열차 생태문화 공간’으로 조성하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지만, 그래서 혹시 과거의 기억들이 애틋했던 사물들로 인하여 복원될 수는 있지만, 트럭과 부딪쳐도 쓰러지곤 했다는 꼬마열차도 더는 달리지 않는다면 열차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그 열차가 다시 달리기 위해서는 세월을 거꾸로 돌려야만 가능한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인천시 남동구에 자리한 소래포구에는 깊게 파고들어온 서해의 물길을 잠시 가로지르는 철교에 의하여 옛 기억을 충분히 회상할 수 있는 여지가 남아 있다. 주말이면 인산인해를 이루는 포구의 즐비한 가게들을 벗어난 사람들은 물길 위의 철교를 걸으면서, 정말 두 사람이 마음 놓고 스쳐지나가기에도 불편한 ‘협궤’를 걸으면서 멈춰선 열차와, 또 그렇게 멈춰버린 과거의 기억 사이를 서성거린다.

    문학평론가 오생근이 ‘시대적 변화 속에 황폐해진 내면적 공허를 증언’해왔다고 평가한 소설가 윤후명. 그가 오래전에 쓴 소설 협궤열차는, 동시에 시인이기도 했기에 같은 제목으로 쓴 시 협궤열차와 함께, 이 일대를 가장 아름답게 기억할 수 있게 하는 우리 모두의 외장 하드다.

    멈춰선 협궤열차의 추억 파도에 떠밀려 가슴에 요동치네

    소래포구에서 자동차로 15분 거리에 자리한 시화 방조제.

    1992년 출간된 소설집 협궤열차는 여덟 가지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오랜 세월을 협궤열차에 실려 보낸 역장의 죽음을 뼈대로 하여 여인 ‘류’에 대한 열정과 상실의 기억들, 그리고 자살한 아내를 찾아나선 어느 사내의 이야기 등이 흡사 그 꼬마열차를 제 몸 위로 달리게 했던 협궤처럼 이어진다. 그중 표제작이라고 부를 만한 협궤열차에 관한 보고서에서 윤후명은 이렇게 썼다.

    한번 간 사랑은 그것으로 완성된 것이다. 애틋함이나 그리움은 저세상에 가는 날까지 가슴에 묻어두어야 한다. 헤어진 사람을 다시 만나고 싶거들랑 자기 혼자만의 풍경 속으로 가라. 그 풍경 속에 설정되어 있는 그 사람의 그림자와 홀로 만나라. 진실로 그 과거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자신은 그 풍경 속의 가장 쓸쓸한 곳에 가 있을 필요가 있다. 진실한 사랑을 위해서는 인간은 고독해질 필요가 있는 것과 같다. 그리하여 나는 그 포구의 가장 쓸쓸한 내 장소로 간다.

    막강한 위용 자랑하는 아파트들 포구의 기억 희미하게 지워

    그러나 이제 그 ‘쓸쓸한 장소’는 어제의 그런 곳이 아니게 되었다. 그 광막한 서해까지 달려온 아파트, 대도시를 장악한 뒤 마침내 온 산하 구석까지 막강한 위용을 자랑하는 아파트는 포구의 기억들을 희미하게 지워버린다. 저 거대한 아파트는 흡사 바다 깊은 곳까지 침투할 듯, 아니 그 깊은 곳에서 대지를 지향하며 불쑥 탄생한 듯 소래포구의 인상을 전면적으로 확보하고 있다. 과연 ‘자기 혼자만의 풍경’은 어디서 찾을 수 있단 말인가.

    거대한 물신(物神)이 우리 삶의 내밀한 기억에까지 침투하고 있는 오늘날에도 누군가 시심(詩心)을 잃지 않으려 하고, 또 그중에 예민한 감성을 지닌 어떤 이가 시인이 되어 이 헛헛한 시대에도 시를 쓰게 된다면, 그는 아마도 이 소래포구에서, 윤후명의 아래 시와는 꽤나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참으로 비감한 마음으로 포구의 속살들을 바라봐야만 할 것이다.

    저놈의 열차는

    금방 무덤에서 나온 듯

    도시에 나타나 어 저게 저게 하는 동안

    뒤뚱뒤뚱 아마 고대공룡전(古代恐龍展)으로 사라진다니까

    거무튀튀한 몸통뼈 안에 그러나

    흔들리는 삶

    아직 살아서 뒤척이는 꿈

    날품팔이 아낙네의 질긴 사랑

    나도 그래야 한다 사랑해야 한다.

    - 윤후명 ‘협궤열차’ 중에서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