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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RTAGE

빈소 밤샘·술·음식 한국 장례문화 수용했다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3無 폐지 …강한 뿌리의식 남이 아닌 한식구로 슬픔 나누기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빈소 밤샘·술·음식 한국 장례문화 수용했다

  • #전남 해남에 사는 김수민(36) 씨는 4년 전 서울 신촌의 한 ‘러브호텔’에서 회사 동료들과 하룻밤을 묵는 기이한(?) 경험을 했다. 직장 상사의 부친상 때문에 신촌세브란스병원 연세장례식장에 조문을 갔는데, 장례식장이 ‘밤샘 조문’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결국 김씨 일행은 장례식장에서 소주를
  • 마시며 고스톱을 치다 이튿날 내려가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모텔에서 어색한 잠을 청했다.
  • #4월21일 개그우먼 송은이 씨의 부친이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사망했다. 하지만 정작 빈소가 차려진 곳은 서울 종로구 연건동의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연예계 ‘마당발’인 송씨는 빈소와 떨어져 있는 별도 식당에서 조문객을 대접하는 게 마음에 걸려 다른 병원을 선택했던 것이다.
빈소 밤샘·술·음식 한국 장례문화 수용했다

연세장례식장이 있는 연세의료원 종합관 전경,연세장례식장이 보유한 국내 최대 빈소,연세장례식장이 3무 정책을 폐지하면서 술병이 밥상위에 올라가게 됐다(왼쪽부터).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연세장례식장은 술, 음식, 도박, 밤샘을 금하는 이른바 4무(無) 장례식장이었다. 조용히 고인을 추모할 수 있어 좋다는 의견과 조문객 대접이 불편하다는 상반된 의견이 늘 있었는데, 아무래도 후자 쪽이 더 거셌던 듯하다. 1999년을 정점으로 신촌세브란스병원 연세장례식장의 연도별 빈소 사용 건수는 완만한 하락세를 보였다(표 참조).

연세장례식장이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4무 정책을 고수한 것은 ‘한국의 장례문화를 바꾸겠다’는 의지에서였다. 연세의료원 홍보실 직원 류성 씨는 “술 담배 고스톱이 고인을 추모하는 좋은 방법은 아닐 것”이라며 “진정으로 고인을 생각할 기회를 갖도록 하자는 게 4무 정책의 취지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5월1일 연세의료원 종합관에 새 장례식장이 문을 열면서 연세장례식장은 4무 정책 가운데 도박을 제외한 나머지(술, 음식, 밤샘)를 깨끗이 포기했다. 이날부터 여느 장례식장처럼 빈소에서 술 마시고 음식 먹는 일이 허용된 것. 물론 밤샘도 가능하다.

의료원 종합관 3개 층 사용 … 국내 최대 빈소 보유

새 장례식장은 연세의료원 종합관 지상 1층과 지하 2개 층을 사용한다. 전용면적 9917㎡(3000여 평)로 빈소는 모두 17개. 특히 660㎡(200평형) 빈소의 경우 이웃한 165㎡(50평형)대 빈소를 같이 쓸 수 있어, 둘을 합치면 826㎡(250평형) 규모의 국내 최대 빈소가 만들어진다.



실제 내부는 장례식장으로 보기 어려울 만큼 깔끔하게 정돈된 모습이다. 각 층마다 고급스런 탁자가 배치돼 있고, 3개 층 높이의 큰 조형물도 설치돼 호텔 로비에 와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

저녁 7시를 넘어서자 장례식장을 찾는 사람들 수가 늘기 시작했다. 가족끼리, 회사 동료들끼리 삼삼오오 짝지은 조문객들이 빈소를 찾았다. 이제는 식사를 하러 빈소와 떨어진 식당으로 옮겨갈 필요가 없다. 빈소에 둘러앉아 음식을 나눠먹으며 얘기하는 모습이 여느 장례식장과 다를 바 없다. 탁자 위엔 소주병과 맥주병이 ‘버젓이’ 올라 있고, 사람들은 술잔을 기울이며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과 회포를 풀었다.

구(舊) 장례식장에서는 술이 금지돼 있어 몰래 들고 오다가 발각돼 압수당하는 해프닝도 자주 벌어졌다. 빈소와 분리된 식당에서 식권을 내고 밥을 먹다 보니 상주가 빈소와 식당을 오가는 광경도 흔히 볼 수 있었다. 구 장례식장에서 두세 번 조문해봤다는 김용석(45) 씨는 그동안 묻어둔 불만을 털어놨다. “결혼식장이나 장례식장에 와서야 그동안 보지 못했던 친척, 친구들을 만나 술 한잔 하며 얘기를 나누곤 하는데, 예전 연세장례식장은 그런 기회를 원천봉쇄했다. 나뿐 아니라 다들 조의금만 내고 올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불만이 많았다.” 술과 음식을 허용한 것에 대해 상주들도 반기는 눈치다. ‘개정된’ 연세장례식장에서 부친상을 치르고 있는 상주 박상현(26) 씨는 “먼 길 오신 손님들에게 술과 음식을 대접하는 게 예의인데, 이런 기본적 예의를 차릴 수 있게 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유독 혼자서만 고집하던 4무 정책을 대부분 포기하는 게 머쓱해서일까. 연세장례식장은 ‘과도한 음주로 장례식장 분위기를 흐트러뜨리는 일이 발생하지 않을 만큼 국민의식이 성숙했음’을 강조했다.

하지만 한국인의 정서적 측면에서 장례식장에서 술, 음식, 밤샘을 금지하는 것이 맞지 않다는 지적도 많다. 장례식장에서 함께 밥 먹고 술 마시는 것이 한국인만의 슬픔을 표현하는 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기동 성균관대 교수(유교동양학부)는 “한국인은 외형적으로 남남이지만 뿌리를 통해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의식이 강하다”고 말한다.

연도별 빈소 사용 건수
1996년 1997년 1998년 1999년 2000년 2001년 2002년 2003년 2004년 2005년 2006년 2007년 합계
1,382 1,960 2,092 2,276 2,153 2,098 2,003 1,867 1,723 1,609 1,670 1,619 22,452
*안치실 사용 건수 제외


빈소 밤샘·술·음식 한국 장례문화 수용했다

연세장례식장에 들어선 ‘추모의 길’ 조형물.

“사람들과 음식 나누며 고인 추모 많은 위안”

이 교수의 설명을 따라가보자. 위와 같은 의식은 본질적으로 인간은 선하다는 성선설(性善說)로 이어진다. 반면 서양이나 일본은 ‘자신과 남은 다르다’는 생각이 밑바탕에 깔려 있어 서로 싸우고 경쟁하는 의식이 강하다. 이는 인간은 본질적으로 악하다는 성악설로 이어진다. 성악설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속마음을 정반대로 드러낸다. 속이 아프더라도 겉으로는 절제하는 것이 미덕이다. 장례의식도 조용하게 진행된다. 그러나 성선설이 밑바탕에 깔린 한국 사회에서는 ‘겉과 속이 다르다’는 건 곧 욕이다. 속이 착하면 겉도 착해야 한다. 슬프면 슬픔을 드러내고, 상주가 남이 아닌 만큼 함께 밤을 지새우며 슬픔을 나눠야 한다. 이 교수는 “정서가 전혀 다른 게 현실인데, 서양에서 껍데기만 가져오면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힘들다”고 강조했다.

지인의 부고 소식을 듣고 슬픔에 겨워 세 끼를 전혀 먹지 못하다 빈소에서 비로소 밥술을 뜨게 됐다는 조문객 조은하(42) 씨는 “여기서 사람들과 음식을 나눠먹으며 고인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다 보니 큰 위로가 됐다”고 했다. 조씨의 경우에서 보듯, 음식 나눔을 통해 ‘우리는 남이 아닌 하나, 한식구’라는 점을 다시금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4무에서 3개를 폐지한 것은 연세장례식장이 ‘선진’ 장례문화만을 고집하지 않고 한국인의 정서를 반영하겠다는 신호로 읽힌다. 조문객들은 이러한 연세장례식장의 변신을 반가워할까, 아니면 예전의 조용한 추모 분위기를 그리워하게 될까. 이문열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주인공 한병태는 옛 은사의 상가를 방문하면서 어릴 적 동무 엄석대에 대한 생각에 잠긴다. 이렇듯 엄숙한 추모 분위기도 좋지만, 옛 인연들을 만나 술 한잔 기울이며 추억에 젖을 수 있는 상갓집이 한국적 정서에 더 맞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후자에 한 표를 던지고 싶다.

국내 첫 도입 무인조의금납부시스템

신용카드 결제 … 이용자 아직 많지 않아


빈소 밤샘·술·음식 한국 장례문화 수용했다
새로 개장한 연세장례식장 1층 로비에 들어서면 현금인출기와 비슷하게 생긴 기계 2대가 나란히 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기계는 국내 최초로 도입되는 ‘무인조의금납부시스템’(사진). 신용카드로 조의금을 결제하는 기계다.

4무 정책을 폐지하는 대신 새로운 4유(有) 정책(효, 문화, 새로운 생명, 유비쿼터스)을 주창한 연세장례식장은 유비쿼터스 정책의 하나로 이 시스템을 도입했다.

연세대 법인사업처 백영철 주임은 “상주와 조문객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돈을 찾아 봉투에 담는 부수적 행위를 줄임으로써 고인을 추모하는 데 많은 시간을 갖게 하자는 의도에서 비롯됐다”고 시스템 도입 취지를 밝혔다.

이 기계는 장례식장 곳곳에 모두 7대가 설치됐는데, 상주는 빈소에 설치된 컴퓨터를 통해 실시간으로 접수된 조의금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용자는 많아 보이지 않았다. 몇몇 조문객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버튼을 눌러보긴 했지만 실제 결제를 하진 않았다.

5월6일 현재 5개 빈소가 차려졌지만, 이 시스템을 이용하겠다고 신청한 상주는 한 명도 없었다.

실제 이용 건수도 단 1건에 불과했다.

연세장례식장사업소 박병익 소장은 “아직까지는 홍보가 부족하다”면서 “상을 당해 경황없는 상주들에게 이런 서비스를 찬찬히 설명할 수 없는 어려움도 있다”고 말했다.

기자는 직접 ‘무인조의금납부시스템’을 이용해봤다.

조의금 결제 버튼을 누른 다음 빈소를 선택한 뒤 신용카드를 이용해 결제하면 된다.

이후 과정은 평소 신용카드를 사용할 때와 같다. 서명한 뒤 영수증을 출력받으면 끝. 신용카드로 경조사비를 냈다고 해서 소득공제가 되는 건 아니다.

그리고 이 시스템은 신청한 빈소에 한해서만 이용할 수 있다.

언뜻 편리한 시스템으로 보이지만, 신용카드로 조의금을 결제하는 것에 대해 조문객들은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조문객 최길호(58) 씨는 “조의금은 돈을 봉투에 넣어 직접 전달하는 것이 예의에 맞다”며 씁쓸한 반응을 보였다.

반면 대구에서 온 김지희(38) 씨는 “바쁘다 보니 현금을 챙겨오지 못할 때가 많은데, 그럴 때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어 좋을 것 같다”며 반가워했다.

조의금을 신용카드로 결제하는 시스템은 예를 중시하는 한국적 정서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 아직은 좀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주간동아 2008.05.20 636호 (p36~38)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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