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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동아’ 가 만난 따뜻한 세상⑪

삭막한 도심에 핀 예술 나눔의 꽃

공공미술집단 프리즘, 독산洞 프로젝트

  •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삭막한 도심에 핀 예술 나눔의 꽃

삭막한 도심에 핀 예술 나눔의 꽃
4월20일 오후 서울 금천구 독산3동 산기슭 길에 자리한 P교회에서는 ‘아름다운 물건 발표회’가 열렸다. 20명 남짓한 참석자들은 낡고 오래됐지만 자신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아름다운 물건’과 그에 얽힌 사연들을 소개했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물려준 은반지에서부터 고등학생 딸이 유치원 시절에 만든 공작품, 10여 년 전 짝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작곡한 노래를 들려주는 이까지 종류도 가지가지다.

“제 것은요, 돌아가신 친정어머니가 만들어주신 우리 큰아이 배냇저고리예요. 처음 이것을 받았을 땐 촌스러워서 실망했는데요. 어머니가 당신 막내딸을 위해 동네 이불집에 특별히 주문해 만든 것이었어요.”(주부 윤은미 씨)

“이 메달은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전교 2등을 해서 받은 겁니다. 당시 부모님이 처음으로 학습지라는 걸 구독하게 해주셨는데 그걸 열심히 한 덕분인지 난생처음 전교생 앞에서 이 메달을 받았습니다. 그때 부모님도 무척 좋아하셨는데…. 이후로는 그런 성적을 내지 못했습니다.(웃음)” (회사원 이동석 씨)

발표회는 서울 금천구의 ‘문화가 숨쉬는 좋은 마을 만들기’ 프로젝트 중 일부다. 이날 소개된 물건과 사연은 전업작가들이 따로 사진을 찍어 작품으로 만든 뒤 산기슭 길(금천구 장미1길) 옆 35m 옹벽에 설치된다. 그야말로 주민들 개개인의 역사가 예술가의 손을 거쳐 벽화작품으로 탄생되는 셈이다.

“마을 문화를 내 손으로” 남다른 추억 만들기



공공미술단체 ‘프리즘’은 금천구의 의뢰를 받아 2월부터 이 프로젝트를 총괄하고 있다. 한 달여 간 주민자치회, 구청 등과 협의를 거쳐 전체 계획을 세운 뒤, 3월 중순부터 본격적인 마을 꾸미기를 시작했다. 프리즘의 전유라 팀장은 “단순히 마을의 미관을 살리는 데 치중하기보다는 마을 주민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데 의미를 뒀다”고 설명한다. 지난 3개월간 동네 약수터 길은 마을 주민의 시(詩)에 독산고등학교 미술부 학생들의 그림이 더해진 시화작품으로 채워졌고, 마을 내 영남초등학교의 담은 4, 5, 6학년 학생들이 참여한 벽화로 채워졌다. 흉물스러웠던 공원 내 비상급수 시설의 외관 역시 주민의 참여로 모양새가 변화하고 있는 중이다.
삭막한 도심에 핀 예술 나눔의 꽃
“저희가 도와드리고 떠나더라도 계속 주민들이 이런 경험을 토대로 모임을 갖고 마을의 문화를 만들도록 하는 거죠.”(프리즘 전유라 팀장)

마을 환경이 개선된 것 외에도 마을을 아름답게 만드는 데 참여한 경험은 주민들에게 동네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갖게 한다. “학교를 졸업한 뒤 좋은 추억이 될 것”이라는 어머니의 권유로 벽화 그리기에 참여한 영남초등학교의 한 6학년 학생은 “실제 해보니까 학교에 내 것이 있는 것 같아 무척 좋다”는 소감을 밝혔다. 또 다른 4학년 학생도 “등굣길에 학교 벽에 붙은 내 그림에 자꾸 눈길이 간다”며 자랑했다.

이들은 4월 초 한 주 동안 매일 하교 후 마을과 집, 자신이 꿈꾸는 우리 마을을 주제로 발표한 뒤 그 생각들을 토대로 벽에 그림을 그리고 타일을 붙였다. 덕분에 의미 없는 캐릭터들로 채워졌던 학교 벽이 벽화에 참여한 학생 개개인의 이야기로 메워졌고, 자신이 사는 공간에 대한 아이들의 이해도 훌쩍 자랐다. 아이들은 마을뿐 아니라 도시라는 공간, 나아가 환경문제에까지 관심을 갖게 됐다.

“(벽화에 그린) 이 그림은 지구를 배경으로 한 우리 마을이다. 친구 집에 가기까지 지구가 어떻게 도움을 주고 있는지 그림으로 그렸다. (중략) 그런데 우리는 자연을 빽빽한 건물로 채우고 지구를 이용한다. 친구 집에 가기까지의 지도지만 자연의 소중함을 넣었다.”(영남초등학교 6학년 유빈 군의 벽화그림 설명 중)

삭막한 도심에 핀 예술 나눔의 꽃

서울 금천구 독산3동의 ‘문화가 숨쉬는 좋은 마을 만들기 프로젝트’ 중 약수터 길(맨 왼쪽)과 영남초등학교 꾸미기에 나선 작가와 지역 초등학생들.

이와 같은 공공미술 프로젝트는 단지 마을 주민뿐 아니라 젊은 예술가들을 고무시킨다. 2003년 처음 프리즘을 만든 유다혜 대표는 “유명작가가 되는 일 말고도 예술가가 할 수 있는 사회적 소임이 무엇인지 고민하던 끝에 공공미술 영역에 뛰어들었다”고 말한다. 이러한 고민은 이곳 활동에서 프리주밍(프리즘의 자원활동가)으로 활동하는 주연우 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섬유미술을 전공한 그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고민하던 중 프리즘에서 자원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예술에서는 소통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내가 누구를 위한 작업을 해야 할 것인가 고민이 됐죠. 그러다 공공미술 활동을 하면서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조금씩 깨닫게 됐어요.”

물론 먹고살기도 팍팍한 세상에서 예술을 매개로 소통에 이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엔 재정이 너무 부족하고 문화가 척박한 상황에서 마을 주민을 비롯해 공무원들을 설득하는 일은 쉽지 않다.

“처음에 주민들을 모으는 게 가장 힘들어요. 도시에 살다 보니 이웃이라는 개념이 많이 사라지고, 언뜻 문화라는 개념이 생소하잖아요. 쑥스럽기도 하고 귀찮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렇게 한 번 두 번 주민들과 접촉해가며 활동의 의미를 설명하고, 그 결과물이 조금씩 드러나는 것을 확인하면 반응이 달라지는 걸 느껴요. 나중에는 주민들이 먼저 나서서 참여하세요.”(전유라 팀장)

마음벽 허물고 서로간 관계 확장

마을 행사에 참석하기엔 발표회가 열린 일요일 오후가 너무 나른했기 때문일까. 기자가 찾았던 ‘아름다운 물건 발표회’의 주민 참여율은 전체 주민 수에 비하면 무척 저조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발표회의 분위기는 고조됐다. 시작 때만 해도 뒷짐진 채 미심쩍은 표정을 짓던 이들이 하나둘씩 행사를 진행하는 활동가에게 다가와 다음 주에 자신의 물건을 가져와도 되는지 물었다. 이날 발표회에 참석한 주부 김자영 씨는 “자신이 내놓은 물건이 벽에 설치된다고 생각하니 은근히 기대된다”고 말했다.

“예술적 가치를 모든 사람들이 완벽히 이해하기는 어렵죠. 하지만 공공미술을 하면서 (예술을) 이해하는 폭이 달라지는 걸 느껴요. 두 번 세 번 만날수록 예술과 미술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서로간의 관계가 확장되는 걸 깨닫죠.”(유다혜 대표)

프리즘의 공공미술 활동은 그 이름처럼 빛을 굴절시켜 아름다운 색을 보여주는 프리즘 자체를 닮은 듯했다. 이들과 함께 마을 꾸미기에 참여하면서 주민들 역시 무심히 지나쳤던 일상과 주변 공간들에서 아름다운 빛깔을 발견하게 됐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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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동아 2008.05.06 634호 (p60~61)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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