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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와 분노’ 美서 억울한 옥살이 11일

여행객 김영호 씨 마약소지 혐의 체포 ‘날벼락’ … “정밀검사 후 이상 없다” 사과 한마디 없이 석방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공포와 분노’ 美서 억울한 옥살이 11일

‘공포와 분노’ 美서 억울한 옥살이 11일

김영호 씨는 구금 당시 충격으로 정신과의 약물치료를 받고 있다.

4월2일 수요일 오후 4시 인천국제공항. 미국 하와이로 휴가를 떠났던 김영호(48) 씨가 예정된 일정보다 6일 늦게 귀국했다. 그의 품에는 와이키키 해변에서 찍은 기념사진 대신 200자 원고지 250장 분량의 ‘옥중수기(獄中手記)’가 있었다.

김씨는 3월21일 하와이 호놀룰루국제공항에서 마약 반입 혐의로 체포돼 연방구치소에 수감됐다가 3월31일 풀려났다. ‘미칠 것 같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옥중수기에는 11일간 겪었던 공포와 분노, 그리고 아내에 대한 걱정이 절절하게 배어 있다. 휴가를 겸해 하와이에 사는 지인을 만나러 한국을 떠났던 그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발단은 미꾸라지였다. 김씨는 하와이에 사는 지인 K씨에게 전해주기 위해 미꾸라지 2kg이 얼음 포장된 아이스박스를 가지고 있었다. 20년 넘게 서로 잘 알고 지내는 C씨로부터 K씨에게 전해달라고 부탁받은 물건이었다. 그러나 살아 있는 해산물을 반입하는 것이 미국에서는 금지돼 있어 김씨는 세관에서 조사를 받게 됐다. 호놀룰루국제공항의 세관 직원들은 미꾸라지를 얼리는 데 쓰인 얼음을 의심스럽게 여겼다. 김씨는 이내 연방 마약단속청(Drug Enforcement Administration)으로 넘겨졌고, 이날 마약 반입 혐의로 미 사법당국에 체포됐다.

미꾸라지 포장 얼음에서 마약 성분 양성반응?

마약단속청 관계자의 증언에 따르면, ‘살아 있는 뱀장어(live eels)’를 검사하는 과정에서 △김씨가 매우 불안한 모습을 보였고 △서울에서 도쿄를 거쳐 하와이까지 10시간이 넘는 비행에도 아이스박스 안에 든 얼음이 녹지 않았으며 △이 점이 의심스러워 얼음 조각을 검사해본 결과 마약 성분인 메탐페타민에 대해 양성반응을 ‘추정할 수 있는’ 결과가 나왔다(resulting in a presumptive positive indication for the presence of methamphetamine).



이에 연방법원은 김씨가 도주할 위험이 있다는 점 등을 이유로 보석 없이 연방구치소에 수감해야 한다는 검찰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3월26일 현지 언론 호놀룰루 애드버타이저(Honolulu Advertiser)는 김씨가 50g 이상의 마약을 소지한 혐의를 받고 있으며, 10년 이상의 형에 처해질 수 있다고 보도했다.

종일 누워 천장만 바라보았다. 속이 메슥거리고 창자가 뒤틀리는 것같이 배가 아프다. 신경을 너무 많이 써서인가? 아니면 탈이 난 것일까? 계속 설사가 나온다. 힘이 하나도 없다. 아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이 상황이 너무 힘들다. 비몽사몽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끊임없이 불러보았다. 잠시라도 내 생각에 그들이 머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가슴 터져라 불러보았다. 룸메이트가 이상한지 들여다본다…. -김영호 씨의 옥중수기 중에서

연방구치소에 갇힌 11일 동안 김씨는 그야말로 ‘공포의 세월’을 보냈다. 말이 잘 통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요, 한국에 있는 가족이나 하와이의 지인들에게 연락을 취할 수도 없었다. 식사를 할 수도, 잠을 이룰 수도 없어 건강 또한 악화됐다. 그는 수기로 스스로를 달랬다. 깊은 밤에는 자신의 울음소리가 룸메이트의 수면을 방해할까봐 수건을 입에 물고 글을 썼다. 김씨는 “내가 모르는 마약이 내 짐에서 나왔고, 그 때문에 10년형에 처해질 것이라는 얘기를 조사관들에게서 여러 차례 들었다. 내가 연루된 마약조직을 털어놓으면 형이 5년으로 줄어들 수 있다고도 했다. 난 마약과 아무 인연 없이 평생을 산 사람이다. 몹시 무서웠다”고 털어놓았다.

‘공포와 분노’ 美서 억울한 옥살이 11일
미꾸라지를 전달받기로 한 하와이의 한인교포 K씨 또한 이 일로 어려움을 겪었다. 김씨를 마중 나갔던 K씨는 공항에서 사법당국으로부터 조사를 받았다. 그리고 이날 집과 자신이 운영하는 식당에 대해서도 압수수색이 이루어졌다. K씨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마약탐지견 몇 마리를 데리고 와서 집 안과 식당을 샅샅이 뒤졌다”며 “마약이 검출됐다면 내가 지금 이렇게 자유로울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3월31일, 김영호 씨는 지옥과 천당을 함께 경험했다. 오전 11시에는 연방구치소로 찾아온 호놀룰루총영사관 민원담당 영사를 만났다. 그러나 그는 영사에게서 미국은 마약 범죄를 엄중히 다루기 때문에 현재 상황이 매우 어렵다는 얘기를 듣고 실망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4시간 뒤, 김씨는 ‘극적으로’ 자유의 몸이 됐다.

“제2 피해자 안 생기도록 당한 일 재판 통해 판례 남기고파”

“오후 3시경 갑자기 모두 자기 방으로 들어가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평소에는 이런 적이 없었다. 그리고 내 방 문이 열리고 간수가 들어와서 ‘Young Kim! You go home’이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나를 다른 어딘가로 끌고 가는 줄 알고 안 나간다고 버텼다. 연방구치소를 떠나 나를 담당했던 국선변호인을 만났다. 그는 내가 왜 풀려났는지는 잘 모른다고 했다. 다만 나에 대한 ‘케이스가 끝났다’고 했다. 그는 내 여권을 돌려주며 ‘당신 비자에 전혀 문제가 없으니 못한 관광이나 천천히 하라’고 했다. 국선변호인이 떠나고 길거리에서 한 시간가량 나를 데리러 온다는 영사를 기다렸다. 흰색 티셔츠에 카키색 바지의 죄수복을 입은 채였다. 내 옷은 돌려받지 못했다.”(김영호 씨)

김씨는 영사의 안내로 한국인이 운영하는 호텔에서 하루를 묵고 4월1일 오전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4월2일 오후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검찰과 경찰 등 관계기관으로부터 조사를 받았다. 4월21일 기자와 만난 그는 “심리치료를 받고 있으며, 정신과에서 처방받은 약을 복용 중이다. 아직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해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다”고 호소했다.

‘공포와 분노’ 美서 억울한 옥살이 11일

휴가차 갔던 하와이에서 마약 밀반입범으로 몰려 구치소에 갇히는 동안, 미칠 것 같았던 당시 심경과 상황을 옥중수기로 기록해 귀국한 김영호 씨.

10년형에 처해질 것이라던 김씨는 왜, 그리고 어떻게 풀려나게 된 것일까. 김씨의 석방 이유에 대해 현재까지 한국 정부가 미국 정부로부터 공식적으로 통보받은 바는 없다. 그러나 김씨 사건을 내사하고 있는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이 미 연방 마약단속청에 확인한 바에 따르면, 김씨가 소지한 아이스박스 속 얼음조각들이 간이검사에서는 양성반응을 나타냈지만 추후 정밀검사에서는 음성반응을 나타냈다고 한다. 김씨, 그리고 그에게 아이스박스를 건네준 C씨 모두 마약 관련 전과가 없는 것으로도 확인됐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본인이 마약 소지 혐의를 부인하고, 마약단속청 검사 결과도 네거티브(negative)이기 때문에 마약 소지 여부를 입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영호 씨는 “무고한 사람을 10일 넘게 붙잡아두고도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은 점이 가장 화가 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김씨는 또 “비자면제가 실시되면 더 많은 한국인들이 미국에서 나처럼 억울한 일을 당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때문에 내가 당한 일을 재판을 통해 판례로 남겨놓고 싶다”고 밝혔다.

미국 마약단속청은 엉뚱한 사람을 잡아놓고 사건을 만들려다가 안 되니까 나를 놓아준 것이다. 이럴 수가. 어찌 미국이 이런 치졸한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이 비인간적인 처사를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주간동아 2008.05.06 634호 (p14~15)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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