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32

2008.04.22

딸 가진 부모들 불안해 못 살겠다

성범죄자 DB조차 없는 등 관리 ‘뻥’ 붙잡혀도 실형 짧고 대다수 집행유예 ‘솜방망이 처벌’

  •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입력2008-04-14 15: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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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근 아동 상대 강력범죄가 급증하면서 성폭력 전과자 관리체계가 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전국의 부모들을 공포로 몰아넣은 안양 초등학생 납치 살해사건이나 일산 초등학생 납치미수 사건에서도 나타났듯, 성폭력 사범들은 아무런 감시와 제약을 받지 않고 아이들 주변을 활보하고 있다. 나날이 변신을 거듭하는 성폭력 사범들. 이들은 어떻게 법망을 빠져나갈 수 있는 것일까. - 편집자 -
    딸 가진 부모들 불안해 못 살겠다

    일산 초등학생 납치 미수 사건 수사본부를 찾은 이명박 대통령.

    “성폭력 전과자들을 일일이 스크린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봐야죠.”

    “구멍이 ‘뻥’ 뚫려 있습니다.”

    얼마 전 기자가 사석에서 만난 경찰 관계자와 교도소 교정 관계자는 ‘성폭력 전과자 관리’에 대한 물음에 이렇게 토로했다. 그만큼 성폭력 전과자들에 대한 관리가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먼저 관련 기관인 법무부와 경찰청이 파악한 전과자의 기본적인 현황부터 살펴보자. 성폭력 혐의 유형의 판단기준과 시점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으나 두 기관 모두 당해 입건자 수를 기준으로 삼고 집계한 수치치고는 너무나 큰 차이를 보인다. 이는 가장 초보적이랄 수 있는 데이터 관리의 중요성에 비춰본다면 쉽게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의 성폭력 범죄는 1만5325건이 발생했으며 1만6500명이 입건됐다. 하지만 법무부는 같은 해의 성폭력 범죄 입건자 수를 1만2363명으로 집계했다. 수치상으로 4000명 이상이 증발한 셈이다.



    어찌 됐든 올해 입건된 범죄자들 말고도 수년간 누적된 동종 초·재범 전과자와 현재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자, 집행유예자, 여기에 한 번도 수사기관에 걸려들지 않은 잠재 성폭력 범죄자까지 합한다면 그 수는 크게 늘어난다. 단지 수천에 그치지 않는 수만, 수십만 이상의 ‘성폭력 바이러스 보균자’가 어린이들을 노릴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성폭력 혐의로 수사기관에 검거된 범죄자들이나마 사법망이 제대로 감시하고 있는 것일까. 답은 ‘아니다’다. 먼저 구속단계에서 상당수 성폭력 혐의자들이 법망을 빠져나가 일반인 속으로 흡수된다.

    법무부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입건된 성폭력 혐의자 1만2363명 중 구속된 경우는 2471명이다. 이는 전체의 20%에 그친다. 나머지는 불구속 처리되거나 무혐의로 풀려난 것이다.

    아동 성폭력 사범에 최하 25년형 미국과는 하늘과 땅 차이

    딸 가진 부모들 불안해 못 살겠다

    영화 ‘추격자’의 한 장면.

    한국형사정책연구원도 지난해 12월 발표한 ‘성폭력 범죄의 유형과 재범억제 방안’ 연구보고서에서 지난 10년간 성폭력 혐의 입건자 중 평균 65%에 대해 검찰이 ‘공소권 없음’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혐의 없음’ 비율도 17.6%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2006년에는 ‘공소권 없음’ 결정 비율이 전체 성폭력 사건의 71%에까지 달했다.

    게다가 실형 선고 비율도 현저하게 떨어져 성폭력 사범들의 사회 침투 양산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지난해 국가청소년위원회가 청소년 대상 성범죄자 9031명의 최종 형량을 조사한 결과에서도 그 비율은 20.7%(1869명)에 그쳤다. 설사 실형을 선고받았다 해도 중형을 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결과적으로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범죄 구성과 입증이 어렵다는 형사 사법망의 한계가 고스란히 성폭력 범죄자들에게 ‘혜택’으로 돌아가고 있는 셈이다.

    경찰대 이웅혁 교수(행정학)의 말이다.

    “형량 기간이 길기만 해도 어느 정도 관리되는 측면은 있겠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특히 아동 성폭력 사범의 경우 기소된 범죄자 중 무려 3분의 2가 집행유예로 빠져나간다. 나머지 실형을 선고받는 경우도 형기가 평균 1년6개월이 채 안 된다. 미국은 ‘제시카법’(2005년 미국 플로리다에서 아동 성폭행 전과자에게 살해당한 9세 소녀 제시카 런스포드의 이름을 딴 법. 아동 성폭력자에게 평생 전자발찌를 채워 감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것으로 현재 미국 44개 주에서 시행되고 있다)이 제정된 이후 아동 성폭력 사범에게 법정형을 최하 25년으로 선고하고 있다. 이런 점에 비춰보면 우리나라 형사사법 제도하에서 성폭력 범죄자들의 관리 문제를 논의하는 자체가 사실상 무의미하다고 볼 수 있다.”

    집행유예 선고를 받은 성폭력 사범 중 일부는 법무부에서 집중보호관찰대상으로 지정해 지도 감독을 받고 있긴 하다. 2006년 서울 용산에서 여자 초등학생이 성폭력 전과 9범인 50대 남성에게 살해당한 사건이 일어난 뒤 법무부가 보호관찰대상을 확대하면서 성폭력 사범이 포함됐다.

    경찰·법무부 연계 부족…사건 터져야 동종 전과자 확인 수준

    그러나 관찰 대상으로 분류된 인원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법무부 보호관찰과에 요청해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보호관찰을 받고 있는 성폭력 사범은 2648명이었다.

    2006년 2377명에서 300여 명이 늘었지만 매년 1만5000여 명이 성폭력 범죄를 저지르고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재범인 점, 또한 성폭력 사범에 대해 전반적으로 불구속 처벌이 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그리 많은 숫자는 아니라는 게 관련 전문가들의 견해다.

    보호관찰관은 성폭력 사범들의 등급을 매긴 뒤 직접 사무실로 출석시켜 면담을 하거나 주거지 방문을 실시하고 있다. 법무부 보호관찰과 관계자는 “성폭력 사범의 경우 범죄 경력에 재범 사실이 있으면 집중보호관찰대상으로 분류된다. 등급에 따라 보호관찰관이 1주 또는 한 달에 1회 정도 주거지를 방문해 감독하며, 보호관찰 기간에 범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될 때는 외출을 제한하는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 시스템상 보호관찰관이 성폭력 전과자뿐 아니라 다른 전과자도 다수 관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경찰 또한 성폭력 전과자들의 관리 문제에 대해선 난처한 처지다. 아직 법무부, 교도소와의 연계가 부족해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동종 전과자들의 입건 당시 자료를 파악해 수사에 활용하는 단계에 그치고 있다.

    이러다 보니 성폭력 사건의 사전 예방은 물론 사건 발생 후 신속한 대응이 필요함에도 시간과의 싸움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최근 안양 초등학생 납치 및 살해 사건이나 일산 초등학생 납치미수 사건에서도 사건 발생 지역에서 성폭력 전과자들에 대한 파악에 난관을 겪는 등 문제점을 드러냈다. 현재로서는 경찰청에서 이들에 대한 정보를 전산화해 각 경찰서에 통보하거나 관리하는 시스템이 전무한 실정이다.

    성폭행 사범 관리가 경찰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전제한 경찰청 이금형 여성청소년과장은 “현재까지 데이터베이스화가 잘되지 않은 면이 있다”고 인정하면서 “경찰도 성폭력 전과자들의 정보를 범죄유형별로 세분화해 프로파일링(범인의 성향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차후 일어날 수 있는 범죄를 예측하는 것) 작업이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구축하는 중”이라고 전했다.

    이 과장은 성폭력 관련 특별법이 국회에서 제정, 통과되는 과정에서 경찰 인력 확충과 예산 증액 등 법 운용의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는 방안이 함께 다뤄지지 않은 부분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10월부터 전자발찌 부착하는 법률 시행

    “실종아동 전담반, 성폭행 사건 전담반 등에 대한 요구의 목소리는 많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 성폭력 사건을 담당할 여성청소년계가 신설된 지 6년이 흘렀지만 지난해 7월에야 전국 238개 경찰서 중 128개소에 여성청소년계가 생겼을 정도다. 피해자들을 위한 법을 만드는 것은 좋은데 이를 현장에서 이행하는 경찰인력 확충 등에 관한 법 제정 문제는 고려되지 않고 있다. 직접 행정안전부나 기획예산처에 들어가 사정을 말하면 ‘그런 얘기들은 나중에 하라’고 한다. 그때마다 마치 개인 일을 사정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넓게 보면 성폭력 사범 관리는 경찰만의 책임은 아니다. 법원의 양형이 엄해지고 동시에 경찰에서는 성폭력 사건을 담당할 지구대, 여성청소년계 인력이 강화돼야 한다. 성폭력 사범들의 신상도 이제 인터넷으로 열람할 수 있게 공개해야 하며 CCTV 등 사회안전망 확충도 필요하다.”

    10월부터는 재범 가능성이 높은 성폭행 전과자의 범죄를 차단하기 위해 특정 성폭력 범죄자에게 전자발찌를 부착하는 법률이 시행된다. △성폭력 혐의 2회 이상으로 상습성이 인정되는 자 △13세 미만 대상 성폭력 범죄자 등은 최장 5년 동안 위치추적 장치가 달린 전자발찌를 차고 24시간 내내 보호관찰관의 강도 높은 감독을 받게 된다. 성범죄자들의 대한 치료감호법 개정안도 국회에 제출된 상태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2월 안양 초등학생 납치 및 살해 사건 이후 사후약방문식으로 나온 대책들이 과연 아무 문제 없이 신속히 추진될 수 있느냐는 의문이 그것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이미경 소장의 말이다.

    “제발 지금까지 제기돼온 대안만이라도 실현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전자발찌만 해도 그렇다. 법무부가 전자발찌를 시범적으로 운영하겠다고 77명의 해당 인원을 행정안전부에 요청했는데 반려됐다고 들었다. 국민들은 기관이 어떤 계획을 발표하면 ‘잘되겠거니’ 하는데 솔직히 염려가 된다.”

    이웅혁 교수도 “땜질식 대안만 늘어놓는 것보다는 성폭력 범죄 가 정치, 사회적으로 중요 의제로 설정되게끔 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선결 조건”이라고 지적했다.

    조선시대 아동 성폭력범 어떤 처벌 받았나

    교형·참대시 등 대부분 극형 처해져


    조선시대에 아동을 강간한 자들은 어떤 처벌을 받았을까. 기자가 최근 온라인으로 열람할 수 있는 조선왕조실록을 검색한 결과 당시에도 여성아동에 대한 성폭력 사건이 무수히 벌어졌으며, 범죄를 저지른 자는 즉시 교형(絞刑·목을 졸라 사망케 하는 형벌)에 처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태조 7년(1398)에는 11세 여자아이를 강간한 노비가 교형에 처해졌으며, 세종 8년(1426)에도 8세 여자아이를 강간한 죄수에게 교형이 내려진 것으로 전해진다.

    연산군 7년(1501)에는 승지가, 양반가의 10세 여자아이를 강간한 죄수에 대해 “참대시(斬待時·겨울에 목을 베어 죽이는 형벌)에 해당하므로 초복(初覆·처음 죄인을 심문하는 일)합니다”고 아뢰었고, 연산군은 율에 따르라고 명했다.

    영조 13년(1737)에는 경남 창녕에서 문모 씨가 8촌 관계인 17세 여성을 강간하려다 실패했는데, 이 여성은 수치심을 못 이겨 독약을 마시고 자살한 사실도 기록돼 있다. 영조는 강간미수로 감사도배(減死島配·섬으로 귀양 보내는 벌)를 명한 것으로 돼 있다.

    고종 36년(1899)에도 경북 안동에서 선비 집안의 처와 어린 딸을 강간한 김모 씨에게 법무대신이 교형에 처하는 안건을 올렸고, 왕이 이를 윤허했다고 기록돼 있다. 조선시대에는 이처럼 간통을 다스리는 법인 범간율(犯姦律)에 의거해 강간자를 엄히 다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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