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32

..

진보세력 ‘초라한 몰락’ 제 목소리 낼 수 있을까

싸늘한 민심·간판인물 부재 이중고 … 색깔 있는 정치엔 너무 높은 보수의 벽

  •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입력2008-04-14 15:35: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아,1만 표만 더….” 진보신당의 정당득표는 4월10일 새벽 50만4434표(2.94%)에서 멈춰 섰다. 0.06% 미달. 약 1만 표만 더 얻었다면 비례대표 1석을 얻어 원내에 진출할 수 있었을, 진보신당으로서는 아쉬운 수치였다. 심상정, 노회찬이라는 두 정치인의 얼굴 이외엔 묘수가 없던 1개월 된 ‘신당(新黨)’의 한계였다.

    한 당직자는 “10년간 피땀 흘려 쌓아온 당의 브랜드인 ‘민주노동당’(이하 민노당) 간판을 고스란히 넘겨준 채 빈손으로 뛰쳐나온 것을 감안하면 선전(善戰)이다”라고 애써 자위했지만, 결과는 뒤바뀔 수 없었다.

    민노당은 권영길(경남 창원을), 강기갑(경남 사천) 후보의 당선으로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저간의 사정을 알고 나면 웃을 형편은 아니다. 당초 10명이던 국회의원 수가 절반으로 줄어드는 데다 정당지지율마저 13%에서 5.6%로 급락했다. 지난 17대 국회에서 국회의원 세비와 보좌관들의 월급을 모아 의정활동비로 충당했던 이력을 감안할 때 당의 전력(戰力)도 그만큼 줄어든 셈이다.

    이번 18대 총선에서 드러난 민노당의 본질적 위기는 분당 사태로 인해 대중에게 ‘종북주의(從北主義)’라는 낡은 이미지로 각인됐다는 데 있다. 실제 진보신당과 맞붙은 대부분의 지역구에서 ‘동생(진보신당)’에게 밀리는 성적표를 받아들어야 했다. 새로운 인물과 강령으로 당을 혁신하지 않고는 진보진영의 상징성마저 퇴색할 만큼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셈이다.

    새 인물로 당 혁신 없이는 상징성마저 퇴색 위기



    진보진영의 위기는 진보신당이나 민노당보다는 오히려 제1야당인 통합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더욱 크게 느낄 수 있다. DNA 측면에서 따진다면 ‘진보’로 분류될 수 있는 이인영 우상호 임종석 등 이른바 386 민주화세력과 시민사회단체 출신 후보들이 ‘쑥대밭’이라는 표현이 걸맞을 정도로 참패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민주당 내 진보계열의 대표격인 김근태 후보(전 열린우리당 대표)마저 뉴라이트 그룹을 대표한 신지호 후보에게 석패하며 진보진영의 몰락을 상징적으로 드러냈다.

    보수혁명으로 일컬어지는 이번 총선의 가장 큰 패배자는 진보세력임이 명확하다. 관점의 차이는 있지만, 진보세력은 물론 민주당과 창조한국당까지 포괄하는 범진보세력을 모두 합쳐도 개헌저지 의석인 100석에 10석 가까이 부족하다는 점은 충격적이다. 17대 국회에서 열린우리당과 민노당은 국가보안법이나 비정규직 법안 등에서 선택적 공조체제를 선보였다. 그러나 이제는 진보진영이 국회 모든 상임위원회에서 보수진영에 밀리며 ‘비즈니스 프렌들리 법안’ 등을 몸으로 막아야 할 위기상황에 봉착했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진보세력을 대표할 얼굴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물론 지역구에서 재선에 성공한 권영길 의원과 이번 총선 최고의 ‘깜짝스타’인 강기갑 의원을 떠올릴 수 있다. 그러나 권 의원은 지난 대선에서 참패에 가까운 성적표를 받아든 패장이자 분당 사태의 책임을 진 인물. 강 의원 역시 농민대표라는 상징성은 있지만 진보세력을 상징하기엔 중량감이 부족하다.

    이 때문에 범진보진영 관계자들은 누구보다도 심상정, 노회찬 두 후보의 탈락을 안타깝게 여기는 눈치다. 의정활동이 1, 2위를 다툴 만큼 출중했고 대중적 인지도 역시 높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기대감은 ‘보수 바람’에 날아가버렸다.

    원외 정치인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보궐선거에 나가서 재기하거나 4년을 무작정 기다리는 것뿐. 민주당 내에서도 “아무리 두 인물이 훌륭해도 금배지 없는 정치인은 논외 대상”이라는 견해를 보인다. 제1 야당과의 연결고리 구실을 할 수 있는 새로운 진보세력으로 창조한국당을 떠올려볼 수 있지만 아직도 ‘정치인 문국현’의 정체성에 의심을 품는 분위기가 강해 이 또한 불확실하다(상자기사 참조).

    진보진영은 이번 총선에서의 참패 원인으로 새로운 인물 부재, 열린우리당(386세력)의 실패, 분당 사태를 손꼽는다. 진보신당 노회찬 후보는 “386세력의 실패로 인해 진보진영까지 그 구도에 매몰돼 도매금으로 평가받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선거 현장의 분위기는 이와 상이했다. ‘종북주의 논쟁’으로 지루한 NL-PD 논쟁을 재연함으로써 미래의 대안세력이 아니라 구태의연한 진보의 모습을 내비쳤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진보진영에 미래는 있는가? 4년 뒤에도 다시 진보의 위기를 논하게 될 것인가? 민노당 비례대표 3번으로 국회 등원이 확정된 이정희(38) 변호사는 하루빨리 지금과 같은 정치지형을 척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현실과 민생 문제를 한발 앞서 파악하고, 그것을 풀 수 있는 방법과 대안을 내놓는 것이 새로운 진보의 모습이라 생각합니다.”

    창조한국당 진보 맞나?

    3석 확보 약진… 향후 행보 주목


    진보세력 ‘초라한 몰락’ 제 목소리 낼 수 있을까
    지난 대선에서 6.7%라는 예사롭지 않은 지지율을 올린 창조한국당의 문국현(사진) 대표가 이번 총선에서 제대로 일을 냈다. 이명박 정부 최고 실세인 한나라당 이재오 후보를 10% 이상 대파하는 이변을 연출한 것이다. 민주당 의원들이 몸을 사릴 때 ‘한반도 대운하 반대’를 기치로 내건 ‘뚝심’이 빛을 발한 셈이다. 벌써부터 “카리스마를 갖춘 뚜렷한 지도자가 사라진 야권에 새로운 지도자의 대안으로 부각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된다.

    그러나 여의도 정치의 생리를 잘 아는 이들이 ‘정치인 문국현’을 바라보는 눈초리는 싸늘할 정도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문 대표가 이제까지 타협이 불가능한 독불장군식 정치를 펼쳐왔기 때문에 간단하게 우군(友軍)으로 보기는 힘들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실제로 한때 창조한국당에 몸담았던 정범구 씨 등 옛 민주당 출신 인사들은 문 대표의 ‘독선적 당운영’에 불만을 품고 대부분 민주당으로 복귀하기도 했다.

    전통적인 진보세력 역시 창조한국당의 ‘진보성’ 자체를 의심하기는 매한가지다. 과연 창조한국당은 진보진영에 속할까?

    우선 겉으로 드러난 창조한국당과 문 대표의 정치적 지형은 진보진영의 그것과 흡사하다. 대운하 반대를 기치로 내건 ‘환경주의’, 노동시간 축소, 유한킴벌리의 ‘4조 2교대 실험’ 등 친(親)노동주의 정책 역시 20, 30대 젊은 개혁세력이 창조한국당을 주목하는 이유가 된다.

    그러나 진보진영에서 바라보는 창조한국당의 색깔은 진보라기보다는 ‘세련된 보수주의’에 가깝다. 진보진영의 한 관계자는 “깨끗한 보수 또는 ‘발전된 보수’에 가까운 이유는 창조한국당의 강령에 ‘노동자’는 없고 ‘근로자’만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요약한다. 실제 창조한국당의 지지 근간은 블루칼라가 아니라 친기업적인 화이트칼라. 이는 당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문국현 이용경 모두 최고경영자(CEO) 출신이라는 점과 중소기업 중시 정책에서도 확인된다. 또한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후보가 7% 성장론을 내걸 때 창조한국당은 한술 더 떠 “녹색경제로 8% 이상 성장이 가능하다”는 뜬구름 잡기식 경제정책을 내건 점도 진보진영이 그를 ‘위장된 보수’로 보는 시각을 거들었다.

    그럼에도 창조한국당의 발전 가능성을 높이 평가하는 시각도 없지 않다.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는 “문국현의 대안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보는 입장이다. 이제껏 거시적인 목표와 이념적 방향성에 매몰된 진보진영에서 문 대표의 정치적 내용을 발상의 전환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것.

    일각에선 “지금까지 진보진영이 취해온 순혈주의를 버릴 때가 됐다”는 반성도 흘러나온다. 문 대표가 강조하는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가 정통 사회주의는 아니지만 이 시대가 요구하는 진보의 또 다른 모습일 수 있다는 해석에서다. 원내 3석을 확보한 창조한국당이 과연 어떤 모습으로 국민에게 다가갈지 주목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