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32

2008.04.22

“라인 다르면 밥도 같이 안 먹어”

치열한 경쟁 청와대 파벌 갈등 심화… 세세한 출신성분까지 따지는 상황

  •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입력2008-04-14 14: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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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인 다르면 밥도 같이 안 먹어”

    3월4일 오전 청와대 연무관에서 열린 새 정부 첫 청와대 직원조회에 참석한 수석비서관들이 류우익 대통령실장의 인사말을 경청하고 있다.

    올해 초 서울 삼청동(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산재했던 MB(이명박 대통령) 측근들은 자연스레 ‘청와대행(行)’과 ‘총선 출마’로 양분됐다. 길을 달리한 ‘명마(明馬)’들은 잠시나마 상대방의 처지를 부러워했다고 한다. 그러나 MB의 청와대에 입성한 인사들에게 쏟아졌던 ‘부러움 반 시샘 반’의 시선은 사라진 지 오래다. 다름 아닌 청와대 내부에 깊숙이 퍼진 치열한 경쟁시스템과 이를 부채질하는 파벌 갈등 때문이다.

    새 정부의 등장과 함께 업그레이드된 청와대 인사시스템에는 이전 참여정부 때와 달라진 점이 한 가지 있다고 한다. 바로 인사기록카드 맨 하단에 추가된 ‘추천인’란이다. 말 그대로 누구의 추천으로 청와대에 입성했는지를 밝히게 한 최첨단(?) 조직관리 시스템인 셈이다.

    정부를 구성하기 직전까지 MB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사람은 그의 친형인 이상득 국회부의장과 이재오 최고위원, 그리고 기획·정무·언론 등을 아우르는 정두언 의원이었다. 이 밖에도 적지 않은 실세들이 신진인사들의 청와대행을 추천했겠지만, 아무래도 추천인으로 가장 많이 거론된 인사는 앞서 언급한 3총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청와대 내부에 권력 변화의 이상 기류가 감지됐다. 바로 ‘정두언계의 몰락’과 ‘영남계 독주’ 현상이 그것이다. 정두언계의 몰락이 정 의원이 주도한 ‘상왕(上王) 이상득 불출마론’이 터진 3월 중순에야 가시화됐다면, 영남계 독주는 민정수석실과 사정기관 인선이 진행된 지난 설연휴 즈음해 구체화됐다고 한다.

    바로 이 사례가 ‘추천인’이 기재된 인사기록카드의 위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즉 ‘이상득 불출마 파문’ 당시 청와대 내부의 ‘정두언 직계 인사가 누구인가’를 라이벌 진영에서 알아볼 필요가 있을 때, 인사기록카드를 확인하면 단박에 해당 인사의 출신 성분을 밝혀낼 수 있기 때문이다. 추천인 기재 제도가 파벌싸움의 와중에서는 마치 낙인처럼 작용하게 된 것이다.



    이태규 비서관 사퇴 파문 상징적 사건

    3월28일 외부로 공개된 정두언계 이태규(44) 대통령연설기록비서관의 사퇴 파문은 청와대 내부의 파벌싸움이 얼마나 치열했으며, 이 싸움으로 이른바 3총사 체제가 몰락하고 ‘이상득-박영준’ 라인이 완벽한 승리를 거뒀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으로 회자된다.

    당초 정무2비서관 후보로 거론됐던 이 비서관은 청와대를 나가면서 “업무가 적성에 맞지 않아 사표를 제출했을 뿐 다른 이유는 없다”며 뒤늦게 파문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실상은 정반대라는 게 청와대 주변의 전언이다. 윤여준 전 의원 보좌관 출신으로 지난 대선 당시 선거대책위원회 전략기획팀장을 맡으면서 신MB계로 이름을 올린 그는 대선 직후 만만치 않은 공신으로 분류됐으나 ‘연설기록비서관’이라는 조금은 의외의 자리에 내정됐다.

    또한 이 비서관과 손발을 맞춰온 적잖은 비(非)영남계 인사들이 청와대 비서관으로 내정됐다가 일순간 없던 일이 되기도 했다고 한다. 당시 청와대행이 좌절된 한나라당 한 인사는 “이미 새 정부 출범 당시부터 이 비서관의 손발이 다 잘린 상태에서 연설기록비서관이 됐는데, 그처럼 ‘왕따’를 당하면서 무슨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었겠느냐”고 털어놓기도 했다.

    청와대 내에서 특정 계보가 독주하고 이렇듯 출신성분까지 세세히 따지는 상황이다 보니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는 후문이다. 한 청와대 행정관은 “라인이 다른 인사들끼리는 밥도 같이 먹지 않고, 심지어 담배도 따로 피운다”고 귀띔한다.

    영남권 인사들이 국가정보원장 검찰청장 경찰청장 등 빅3 사정기관장을 모두 장악한 것을 뛰어넘어 하위 사정 담당자들마저 영남권 출신들로 채워진 것도 청와대 안팎에서 “지나친 처사”라는 반응을 낳고 있다. 경찰 출신 한 사정 담당자는 “애초 3~4명을 선발한다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지원할 예정이었는데, 영남권 인사만 선호하는 분위기여서 차마 지원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청와대 내 왕(王)비서라 통하는 P 비서관의 경우 경찰을 넘어 일선 사정기관 과장 인사에까지 관여했다는 말이 흘러나올 정도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반직 공무원들의 상대적 박탈감과 소외감은 매우 크다. “청와대도 정부조직의 일부인데, 내부 분위기가 대선캠프 같다”는 식의 고충이 그것이다. 한나라당 한 관계자는 “따지고 보면 영남인사 득세와 정두언계 몰락은 무관한 얘기가 아니다”고 말한다. 호남 출신인 정두언 의원은 주로 수도권 신진인사들을 규합해 대선에 기여했지만, 파벌경쟁에서 밀리며 자연스레 특정 지역과 계보의 독주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일반직 공무원 상대적 박탈감과 소외감

    일각에선 이 같은 청와대 내 추천인 시스템과 특정 파벌의 독주 현상을 놓고 MB의 후보 시절 표출된 ‘안국포럼 명함사건’을 떠올리기도 한다. 당시 화제가 된 것은 명함에 기재된 ‘AF002~030’이라는 일련번호였다. 부지불식간에 그 번호는 ‘MB와의 정치적 거리’로 인식됐고, 곧장 내부 서열로 작동했다.

    이러한 ‘줄 세우기식 인사’는 2~3개 계보의 경쟁을 독려하는 MB 특유의 용인술로 해석되기도 한다. MB계 모 인사는 대선 직전 MB에게서 “·#52059;·#52059;·#52059; 씨는 세상 공부를 한참 더 해야겠다”는 식의 공개적 질책에 큰 충격을 받고 식음을 전폐했다고 한다. 수년간 MB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했지만 공개적 망신을 당하기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같은 지적이 비슷한 출신 인사들에게도 집중됐다는 것. 이를 극복하기 위해 ‘죽기 살기 식으로’ 대선 승리에 기여한 그 인사는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야 MB의 신임을 회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다시 말해 줄 세우기, 혹은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기 위한 MB의 패키지 인사가 실존하기는 하지만 그 선택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MB의 청와대가 활동을 시작한 지 두 달. 과연 청와대는 MB의 뜻대로 움직이는 것일까, 아니면 특정 계보의 힘에 좌우되는 것일까. 그 열쇠 역시 MB가 쥐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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