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27

2008.03.18

‘쿨’한 후쿠다 총리 눈물 보인 까닭은

  • iam@donga.com

    입력2008-03-12 11: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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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일본 총리는 ‘쿨’하다.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없다.

    하지만 2월29일에는 달랐다. 그는 이날 열린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지도력이 부족하다”는 야당 의원의 지적에 버럭 화를 냈다. 그런가 하면 눈물도 보였다. 해상자위대의 이지스함이 소형 어선을 들이받은 사건을 언급할 때였다.

    ‘쿨’한 후쿠다 총리를 눈물짓게 한 사건은 2월19일 터졌다. 아직 사건 경위가 100% 명확히 드러난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만을 재구성해보면 이렇다.

    2월19일 새벽, 해상자위대의 최신예 이지스함 ‘아타고’(7750t)는 노지마자키(野島崎) 남쪽 40km 해상을 항해하고 있었다. 지난해 11월부터 올 2월 초까지 미국 하와이 해역에서 탄도미사일 요격 실험을 마치고 요코스카(橫須賀)항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오전 3시55분. 망을 보던 한 자위대원이 전방에서 어선 불빛을 발견했다. 기치세이 하루오(吉淸治夫·58) 씨와 데쓰히로(哲大·23) 씨 부자가 타고 있던 7.3t급 참치잡이 어선 ‘세이토쿠마루(淸德丸)’였다. 규정대로라면 아타고는 어선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했지만 10여 분간이나 아무 일 없다는 듯 자동항해를 계속했다.



    이지스함 소형 어선 충돌 사건으로 지도력 시험대에 올라

    4시6분, 비로소 충돌 위기를 감지한 아타고는 자동항해시스템을 수동으로 전환해 전속력으로 후진엔진을 넣었다. 하지만 때늦은 대응이었다. 아타고는 세이토쿠마루의 옆구리를 들이받아 완전히 두 동강 냈다. 겨울바다에 내동댕이쳐진 기치세이 씨 부자의 행방은 실종 2주일이 넘도록 묘연한 상태다.

    아타고가 어떤 배인가. 반경 100km 안에 있는 항공기 200대를 동시에 추적할 수 있고, 대기권 밖으로 날아가는 탄도미사일을 쏘아 떨어뜨리는 능력을 갖췄다는 1400억엔(약 1조2300억원)짜리 최첨단 이지스함이다. 이런 배가 작은 어선을 들이받았을 때의 파장이 걱정스러웠는지, 자위대 측은 사고 직후 “충돌 2분 전 어선을 발견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즉 피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는 변명이었다.

    하지만 자위대의 거짓말은 금방 들통이 났다. 은폐 의혹까지 겹치면서 사건의 파장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급기야 방위상 인책론까지 나오기에 이르렀다.

    후쿠다 내각은 이지스함과 어선의 충돌사고 후유증을 봉합하기 위해 3월3일 방위성 개혁이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골자는 자위대 출신의 ‘제복 그룹’과 문민 출신의 ‘양복 그룹’을 통합하는 방안이다.

    하지만 방위성 개혁이 추락하고 있는 후쿠다 내각의 지지율을 끌어올릴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후쿠다 내각의 지지율 하락 원인은 이지스함 충돌사건뿐 아니라 국정 전반에 걸친 총리의 리더십 부족에 있기 때문이다. 여당의 각 계파, 행정부 각 부처가 모두 다른 소리를 내는데도 총리가 나서서 조정하는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실제 일본인들이 후쿠다 내각을 지지하지 않는 원인으로 가장 많이 꼽는 것은 ‘지도력 부족’이다.

    지금의 일본은 관성과 기계장치에 항해를 맡긴 이지스함과 닮은꼴이다. 후쿠다 총리가 스스로 키를 잡고 항로를 제시하지 않는다면 어떤 충돌사고를 낼지 모른다.

    한국 처지에서 보면 후쿠다 총리는 비교적 과거사 문제에서 자유롭게 미래지향적 양국 관계를 함께 설계해볼 수 있는, 흔치 않은 정치지도자다. 후쿠다 총리가 하루빨리 함장실 침상에서 박차고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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